시를 가르쳐도 될까요?
3년 만에 문학 과목 수업을 맡게 되었다. 첫 단원이 시다. 어떻게 가르치지? 오랜만에 문학 수업을 하려니 좀, 낯설다. ‘뭐 하던 대로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하던 대로 해 보았다. 최악의 결과는 아니었다. 좋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고 말은 하지 않지만 ‘이 건 뭐지?’라는 표정의 아이들도 있다. 수업 핵심은 교사의 설명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3년 만에 한, 시 수업을 날것 그대로 써 보려 한다. 좀 부끄럽기는 하지만…….
다음은 수업한 시의 원문이다.
봄눈 오는 밤
황인숙
길 건너 숲속,
봄눈 맞는 나무들.
마른풀들이 가볍게 눈을 떠받쳐 들어
발치가 하얗다.
나무들은 눈을 감고 있을 것이다.
너의 예쁜 감은 눈.
너, 아니?
네 감은 눈이 얼마나 예쁜지.
눈송이들이 줄달음쳐 온다.
네 감은 눈에 입 맞추려고.
나라도 그럴 것이다!
오, 네 예쁜, 감은 눈,
에 퍼붓는 봄눈!
시 전체를 소리 내어 함께 읽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시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서너 번 낭송한다. 아이들이 맑고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는 것을 들어보라. 귀가 매우 즐겁다.
시 낭송이 끝나면 각자 다시 시를 읽으며 시에 관한 질문을 두 개 만들게 한다. 시의 내용에 관한 것도 좋고 형식에 관한 것도 괜찮다. 가급적 질문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질문에 대한 대답도 생각해 보도록 한다. 이때 다른 학생들이 만든 질문을 예로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물론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
두 개의 질문을 다 만들었으면 4명이 모여 모둠을 만들게 한다. 세 명도 괜찮고 다섯 명도 무방하다. 자신이 만든 질문을 모둠원들에게 보여주게 한 다음, 가장 좋은 질문을 뽑도록 한다. 이때 자신이 만들 질문이 모둠 대표 질문에 뽑힐 수 있도록 모둠원들을 설득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다. 교실이 시끌시끌해지는 순간이다. 교사는 학생들 사이를 슬슬 돌아다닌다. 아이들 이야기를 슬쩍 들어보기도 하고 아이들이 질문을 하면 질문을 받기도 한다.
모둠 대표 질문이 선정되면 그 질문에 대한 그럴듯한 답을 만들어 보도록 한다. 이때 반드시 모둠원들 모두가 의견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모둠 대표 질문에 대한 답을 완성한 모둠은 칠판에 자신의 모둠의 대표 질문을 적게 한다. 질문만을 적게 한다. 모둠 대표 질문에 대한 답은 적지 않도록 한다.
모든 모둠이 대표 질문을 칠판에 적으면, 자신의 모둠이 만든 질문이 아닌 것 중 하나를 선택해서 답을 만들어 보게 한다. 모둠원들 사이의 의견 교환은 필수이다.
그런 다음 맨 처음에 적혀 있는 질문부터 대답을 만든 모둠이 있는지 물어본다. 만일 있다면 어떤 대답을 만들었는지 들어본다. 만일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단 한 모둠도 만들지 않았다면 그 질문을 적은 모둠의 답을 들어보면 된다. 이때 대답하는 내용을 잘 들으며 궁금한 점이 있으면 대답하는 학생에게 질문하라고 요구한다. 대개의 경우 질문이 없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계속 진행하면 결국 질문이 나온다. 그러면 성공적인 수업이라 할 만하다.
다음은 시 ‘봄눈 오는 밤’을 공부하며 학생들이 만든 모둠 대표 질문들이다. 칠판에 적힌 순서대로 적었다. 이런 수업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이니만큼 질문의 수준이 엄청 높지는 않다, 하지만 수업을 하면 할수록 질문의 질이 점점 좋아진다.
‘오, 네 예쁜, 감은 눈 / 에 퍼붓는 봄눈!’은 같은 문장이지만 행을 달리하는데,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작가의 의도는?)
눈송이들이 ‘포송포송 내린다’라고 할 수도 있는데 ‘줄달음쳐 온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화자는 왜 나무들이 눈을 감았다고 표현했을까?
화자가 말할 ‘감은 눈’에 입을 맞춘다는 것은 어떤 행동에 비유한 걸까?
나무에게 봄눈은 어떤 존재일까?
화자는 나무의 감은 눈과 뜬 눈 중 어느 것을 더 예쁘다고 생각할까?
학생들의 선택을 받은 질문도 있고 그렇지 못한 질문도 있다. 수업을 계속하면 학생들은 어떤 형태의 질문들이 선택받는지 알게 되고, 또 그런 질문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애쓰는 과정에서 공부가 많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교사가 질문할 차례이다. 묻고 싶은 내용을 미리 질문으로 만들어 놓았다가 모둠 대표 질문과 중복되는 것은 빼고 질문을 던지면 된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이 작품을 어떤 면에서 ‘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시의 시적 화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시의 시적 화자처럼,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한 대상이나 광경이 있는가?
마지막 질문은 내가 하는 수업이 학생들의 삶과 조금이라도 연결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만든 질문이다. 가끔씩 자신의 삶을, 생활을 돌이켜보면 살아가는 데 쉼표가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가능하면 숙제로 낸다. 집에 가서 찬찬히 글로 써 보게 한다. 그래야 삶을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하고 수업을 끝내면 참 좋겠다. 하지만 아이들은 중간고사 기말고사와 같은 시험을 치러야 한다. 혼자 한 학년 모든 학급을 담당하면 문제가 없을 터이지만, 현실을 여러 명 교사가 한 학년을 나누어 가르친다. 시험에 대비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참고서에서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뽑아 워드 프로세서로 작업을 한 다음 인쇄해서 나누어 주었다. 그것을 따로 설명은 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았다. 질문을 받고 필요하면 전체에게 설명을 해주고 아니면 개인적으로 대답해 주었다. 이렇게 교과서 첫 단원 시 수업을 마쳤다.
5, 6년 전부터 이렇게 수업을 해 왔다. 학생들의 성적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계속하려고 한다. 가르침을 최소화하여 학생들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확장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시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한 걸음 더 나아가, 학생들이 자신들의 경험에 바탕한 시를 창작할 수 있는 수업으로 이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