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서 동사와 형용사를 용언이라 부른다. '먹다'와 '좋다'를 예로 들 수 있다. 용언은 어간과 어미로 분석할 수 있다. 용언에서 '-다'를 제외한 부분을 어간이라 하고 '-다'를 어미라 한다. 즉, '먹-'과 '좋-'이 어간이다. 마찬가지로 '아름답다'라는 용언은 '아름답-'이 어간이다. 용언 어간에 '-다'가 결합한 형태를 용언의 기본형이라고 하는데, 용언이 문장에서 쓰일 때에는 '-다'의 자리에 다양한 형태의 어미가 결합하게 된다.
대표적인 어미가 '-아/-어'이다. '먹다'와 '보다'를 연결해 보라고 하면 '먹어 보다'라고, '좋다'와 '보이다'를 연결해 보라고 하면 '좋아 보이다'라고 연결할 것이다. 우리말 문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일반적인 한국어 화자라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어미 '-아/-어'가 선택되는 양상을 정확히 알면 좀 더 어법에 맞는 언어생활을 할 수 있을 터이다. 사실 아주 간단하다. 한글 맞춤법 제16항에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제16항 어간의 끝음절 모음이 ‘ㅏ, ㅗ’ 일 때에는 어미를 ‘-아’로 적고, 그 밖의 모음일 때에는 ‘-어’로 적는다.
그래서 '막아, 돌아', '되어, 겪어'와 같이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얇다'의 경우 '얇아'가 되는 것은 왜일까? '얇다'의 경우 어간의 끝음절 모음이 'ㅑ'인데, 'ㅑ'는 'ㅣ'와 'ㅏ'가 결합이 이중 모음이므로 '-아'로 적는 것이다.
어간의 끝음절 모음이 'ㅡ'인 단어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치르다', '담그다', '잠그다' 같은 단어들 말이다. 제16항의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세 단어 모두 '-어'로 적어야 한다. 하지만 어간의 끝음절 모음이 'ㅡ'인 단어의 경우 'ㅡ' 바로 앞에 있는 모음을 기준으로 '-아' 또는 '-어'를 선택하여 적는다. 그래서 '치르다'에는 '-어'가, '담그다'와 '잠그다'에는 '-아'가 선택되어 '치르어', '담그아', '잠그아'의 형태가 되는데, 우리말에서 모음 'ㅡ'는 다른 모음 앞에서 필연적으로 탈락하므로 '치러', '담가', '잠가'로 적게 된다. 즉 시험은 '치러'야 하고 김치는 '담가'야 하고 대문은 '잠가'야 한다.
또 하나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불규칙 용언이다. 어간에 '-아/-어'가 결합할 때 어간이 변하거나 어미가 변하는 용언들이 있는데, 이들을 불규칙 용언이라 한다. 먼저 '공부하다'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어간의 끝음절 모음이 'ㅏ'이므로 '-아'로 적는다. 즉 '공부하아'가 된다. 그런데 이런 말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터이다. '-하-'에 '-아'가 붙으면 언제나 '-아'가 '-여'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하여'라는 단어만 보게 되는 것이다.
'공부하다'를 과거형으로 표현해 보라고 하면 단 일 초도 걸리지 않고 '공부했다'라는 단어를 떠올릴 터이다. 우리말에서 과거형을 만들 때는 용언 어간에 '-았-' 또는 '-었'이라는 말(문법 용어로는 과거 시제 선어말 어미)을 붙인다. '먹다'의 과거형은 '먹었다'이고, '보다'의 과거형은 '보았다'이다. 그러므로 '공부하다'를 과거형으로 만들려면 '-았-', '-었-' 중에서 '-았-'을 선택하여 '공부하았다'라고 해야 한다. '-하-' 뒤에 '-아'가 왔으므로 '-아'는 '-여'로 바뀐다. 그래서 '공부하였다'가 된다. '하여'는 흔히 '해'로 줄여 쓰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적으로 '공부했다'라는 단어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하다'가 붙는 모든 단어는 이러하다. '깨끗하다', '불쌍하다', '팽팽하다', '뻔뻔하다' 등 모든 '-하다'가 붙는 단어는 다 똑같다.
'ㅂ'을 어간 끝음으로 가지고 있는 단어들이 '-아/-어'와 결합하는 양상을 살펴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좁다'라는 단어는 어간 끝모음이 'ㅗ'이므로 '-아/-어' 중, '-아'와 결합하여 '좁아'가 된다. 어간과 어미 중 그 어는 것에도 변화가 없다. 이런 용언을 규칙 용언이라 한다. '잡다'도 규칙 용언이다. 이번에는 '돕다'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아/-어' 중, 당연히 '-아'와 결합한다. 어간 끝모음이 'ㅗ'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돕아'라는 말은 본 적이 없을 터.
'ㅂ'을 어간 끝음으로 가지고 있는 단어 중,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말이 결합하면 'ㅂ'이 변화하는 단어들이 있다. 이런 단어들을 'ㅂ' 불규칙 용언이라 한다. 'ㅂ' 불규칙 용언은 두 가지 양상을 보인다. 즉, 양성 모음(아, 오 등)이 결합하면 'ㅂ'은 'ㅗ'로 변하고, 음성 모음(어, 우, 으 등)이 결합하면 'ㅂ'은 'ㅜ'로 바뀐다. '돕아'의 경우 양성 모음이 결합했으므로 'ㅂ'이 'ㅗ'로 바뀌어 '도오아'로 되었다가 최종적으로 '도와'라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춥다'의 경우에는 '-어'와 결합하여 '춥어'가 되었다가 'ㅂ'이 음성 모음 '어' 앞에서 '우'로 변해 '추우어'가 되었다가 최종적으로 '추워'의 형태가 된다.
'ㅂ'을 어간 끝음으로 가지고 있는 단어들이 '-은'과 결합하는 양상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좁다'의 경우는 '좁은'의 형태가 되어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규칙 용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규칙 용언에서는 변화가 일어난다. '곱다'에 '-은'을 붙이면 '곱은'이 되는데 '곱다'가 불규칙 용언이므로 'ㅂ'이 '우'로 변한다. 'ㅂ' 받침 다음에 '-은'이 결합했을 때 'ㅂ'이 '오'로 변하는 경우는 없느냐고? 없다. '-은'의 '으'가 음성 모음이기 때문이다. 'ㅂ' 불규칙 용언의 'ㅂ'은 양성 모음 앞에서는 '오'로, 음성 모음 앞에서는 '우'로 변한다. 그래서 '곱은'은 '고우은'이 되었다가 최종적으로 '고운'의 형태가 된다. '아름다운'도 '고운'과 마찬가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고등학교에 근무할 당시 학생들에게 이런 내용의 수업을 하면 대개의 학생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누가 이렇게 복잡한 문법 규정을 만들었냐고 툴툴대곤 했다. 그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말[言] 나고 문법 났지, 문법 나고 말[言]이 난 것이 아니라고. 사람들이 복잡다단하게 말하는 양상을 잘 살펴 규칙화한 것이 문법이라고. 우리말 문법을 속속들이 알 필요까지는 없지만 기본적인 사항은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그래야 개인 블로그 등의 SNS에 글을 쓸 때 우리말 어법에 맞는 깔끔한 글을 쓸 수 있지 않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