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강 Oct 21. 2024

교사로 보낸 한평생

프랑스 교사들이 부러웠던 순간

어디에선가 우리나라의 대학수학능력시험 격인 프랑스 바칼로레아(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 철학 시험 채점 과정에 관해 읽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깜짝 놀랐다. '정말 그렇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내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게 떠오른 의구심이었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 채점 과정에 있었다. 그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우선 각 지역 철학 교사들(30명~40명)이 한 고등학교에 소집되어 각자 답안지를 채점한다. 그런 다음 수차례 소그룹 조정회의와 토론을 거쳐 채점 기준에 합의하고 채점 공동 원칙 세운다. 최종적으로 교사당 100여 개씩의 답안지를 할당받고 그것을 교사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 열흘 동안 채점한다. 답안지 하나를 채점하는 평균 30분이 소요되고, 모든 답안지에 그렇게 채점한 이유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채점에 관여하는 교사들에게 어떤 수당도 지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교사의 당연한 의무로 여긴다는 것이다.


  두 가지 사실 때문에 놀랐다. 하나는 그 중요한 채점 과정에 관여한 교사들에게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교사들이 그 중요한 100여 개의 답안지를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 채점한다는 사실이다. 전자도 물론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후자이다. 교사들이 그 중요한 답안지를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 채점하다니!


  이게 대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우리나라에서 30년 넘게 일반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한 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광역 교육청마다 규정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내가 근무한 지역의 교육청에서 해마다 내려보내는 학업성적관리 지침에 '서술형 답안지는 수행평가 답안지를 채점 등을 이유로 학교 밖으로 유출할 수 없다'라는 규정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의 답안지를 학교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은 답안지를 '유출'하는 행위인 것이다.


  학생 시험 답안지를 학교 밖으로 가져가 채점하는 행위가,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데 프랑스에서는 가능한 이유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는 건 오직 나뿐일까? 우리나라에서는 학생 답안지를 학교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교사를 믿지 못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교사가 학생 답안지에 손을 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사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게 우리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여기엔 분명 교사들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 고등학교에 재직할 당시, 서술형 문항을 채점하던 교무실 풍경을 떠올려 본다. 서술형 문항 채점 매뉴얼에는, 채점 교사가 여려 명일 경우 가채점과 교사 간의 토의를 통해 서술형 문항 채점 기준을 세우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규정을 지키는 경우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두 명의 교사가 여섯 반의 서술형 문항을 채점한다고 가정할 때 대개의 경우, 한 교사가 1반에서 3반까지의 모든 서술형 문항을 채점하고 다른 교사가 4반에서 6반까지의 모든 서술형 문항을 채점한다. 이때 문항 출제 교사가 이미 세워 놓은 채점 기준을 바탕으로 한다. 


  채점을 하기 전에 교사 간의 토론을 통해 채점 기준에 세우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출제 교사가 세워 놓은 채점 기준을 적용하는 관점이 조금씩 달라지게 되어, 비슷한 답안에 부여하는 점수가 채점 교사에 따라 상이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비슷한 답안에 서로 다른 점수를 부여받으니 당연히 볼멘소리를 하게 된다. 여기에 대응하는 교사들의 행태도 천차만별이다. 학생들의 불만에 차근차근 답하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들은 척도 안 하고 무시하는 교사도 있고, 듣기는 하지만 자신은 무결점 교사이니 자신의 채점이 잘못되었을 리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교사도 있다.


  고등학교 재직 당시, 서술형 문항을 같이 채점하게 된 교사들에게 가채점을 한 다음 토의를 통해 서술형 문항 채점 기준을 세워보자고 얘기하곤 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꼭 그래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토록 귀찮은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해오던 대로 해도 별 문제가 없지 않냐는 투였다. 그때, 원칙대로 하자고 좀 더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다. 그러질 못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갔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회한만 가득 남는다. 


  서술형 문항 채점에 대한 교사들이 태도 때문만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사회의 고등학교 교사들에 대한 신뢰는 크게 추락했다고 보아야 한다. 학생들은 학교가 아니라 학원에서 수능 대비 공부를 하고 교사가 대학 진학을 위한 로드맵을 짜 주면, 이를 학교 밖에서 확인한다. 이런 지경에서는 고등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고등학교는 학생들이 그저 친구를 사귀고 점심을 해결하러 오는 장소가 되고 말았다. 


  고등학교 교사들의 분발이 필요하다. 물론 교사 개인의 노력으로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다. 교육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여러 시스템이 동시에 노력해야 해결될 문제이다. 그렇다고 그 탓만 하며 교사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현재 상태에서 그 어느 하나도 나아지지 않을 터이다.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자신의 수업에 몰두하게 할 수 있을지, 어떤 문제를 출제해야 학생들의 성취 수준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지, 어떤 수업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생활기록부 기록을 풍성하게 할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겨야 한다.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고등학교 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사회의 고등학교 교사에 대한 신뢰 지수는 높아질 것이다. 고등학교 교사에 대한 신뢰가 없이 고등학교 교육에 대한 믿음을 기대하는 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사실,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 채점 과정에 대한 글을 읽기 전까지는 서술형 문항 답안지를 학교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지금 현직에 있는 교사들 대부분도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믿느냐 못 믿느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믿을 수 없는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맡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교사들이 우리 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나 혼자 노력한다고 뭐가 바뀌겠냐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신뢰 회복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학생 시험 답안지를 교사의 집으로 가지고 가 열흘 동안 채점을 해도, 교사가 그 어떤 요상한 행위도 하지 않으리라고 믿는 프랑스 사회가 부럽다. 그런 신뢰를 받고 있는 프랑스 교사들이 몹시 부럽다. 

작가의 이전글 살아온 / 사는 / 살아갈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