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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01> 2024. 9. 19.(목)

by 꿈강

추석 연휴가 무더위 속에서 끝났다. 손녀딸 돌보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오늘부터 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의 일상을 기록하기로 했다. 아내가 강력하게 요청했다. 손녀딸과의 일상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록해 보련다.



6시 30분경, 아내와 함께 딸네 아파트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사위가 나오며 인사한다. 오늘은 사위가 딸보다 먼저 출근길에 나섰나 보다.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을 하고 딸네집으로 올라갔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손녀딸은 자기 방 침대에서 콜콜 자고 있고, 딸은 출근 준비를 마치고 아내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손녀딸이 새벽 2시 반에 깨서 5시에 잠들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전한 뒤 딸은, 아내가 준비해 온 도시락 가방과 함께 출근길에 올랐다.


아내와 나는, 손녀딸을 푹 재워야겠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린이집에 조금 늦게 가더라도 말이다. 그러고 나는 곧장 딸네 집 소파에 몸을 뉘었다. 잠을 푹 잤는데도, 오늘따라 이상하게 잠이 몰려왔다. 까무룩 잠이 든 상태에서도, 아내가 분주히 움직이는 걸 느꼈다.


딸네가 미처 개 놓지 않은 빨래를 개고, 바닥을 물걸레 포로 닦는다. 그 정도는 딸네가 퇴근해서 해도 될 듯한데, 아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눈에 보이는 대로 딸네 집안일을 한다. 아무리 말려도 되지 않는다. 좀 도와주어야지 라는 생각을 하는데도, 몸이 좀체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러고 있는데 손녀딸이 깨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아내가 손녀딸을 안고 거실로 나온다. 시계를 보니 8시 5분이다. 새벽에 잠을 설친 것치고 너무 일찍 일어났다. 좀 더 자야 어린이집에 가서 잘 놀 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깬 걸 어쩌겠는가.


내가 벌떡 일어나 손녀딸을 받아 았다. 아내는 곧장 손녀딸 아침 준비에 돌입한다. 손녀딸은 호박죽을 먹겠다고 한다. 호박죽을 꽤나 좋아한다. 호박죽, 쇠고기 뭇국에 만 밥, 사과. 그리고 따끈한 물. 아내가 준비한 오늘 손녀딸 아침 밥상이다.


아침을 먹으며 평소와 마찬가지로 동영상을 본다. 오늘은 '넘버 블록스(Number Blocks)'를 보겠단다. 아침밥은 주로 내가 먹여 준다. 어떤 때는 "내가 아기야? 먹여주지 마." 하면서 자기가 먹겠다고 하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다. 잘 먹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 세상에서 가장 흐뭇한 풍경이라고 하지 않는가.


밥을 먹으면서 아내가 손녀딸 머리를 땋는다. 오늘은 라푼젤 스타일로 해 달란다. 아내의 머리 땋는 솜씨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아, 그리고 어린이집에 입고 갈 옷을 결정해야 한다. 손녀딸은 아무 옷이나 입고 가지 않는다. 손녀딸이 옷 고르는 기준이 뭔지 아직도 모르겠으나, 손녀딸은 자기 마음에 꼭 드는 옷이 아니면 절대 입지 않는다.


아내가 처음 가지고 온, 노란 원피스는 단박에 퇴짜를 맞았다. 이번에는 아내가 다른 원피스 두 개를 가져왔다. 빨간 물방울무늬 원피스와 흰색 원피스. 손녀딸의 오늘 선택은 흰색 원피스다. 밥을 다 먹고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해님의 공격으로부터 피부를 지켜줄 로션과 선 크림을 꼼꼼하게 발라 준 다음, 이제 어린이집에 가자고 했더니 조금 더 놀겠단다.


아내와 나는 일순 긴장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투정 부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다행히 약 5분 뒤 순순히 어린이집에 가겠다고 나섰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9시 20분 경이다. 특별한 행사가 없어 10시까지만 등원하면 되는 날이다. 행사가 있는 날은 9시 30분까지 등원을 마쳐야 한다.


새로 산 빨간 구두를 신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아내가 손녀딸에게, 엄마하고 아빠한테 인사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 아빠 생일 축하해요. 힘내세요."라고 한다. 제 엄마, 아빠의 생일이 지난 지 꽤 되었는데도 요즘 꼭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한다. 왜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런 식으로 인사하는 게 제 나름으로 엄청 재미있나 보다.


차에 올라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6~7분이면 어린이집에 도착한다. 어린이집에 도착할 때까지, 차 뒷좌석에서 손녀딸은 할머니와 역할 놀이에 여념이 없다.


어린이집에 도착하기만 하면 안심이다.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손녀딸이 어린이집에 안 들어가겠다고 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런 적도 종종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나름대로 적응을 완료한 모양이다.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실내화로 갈아 신고, 어린이집 로비로 들어선다. 손녀딸의 교실은 4층이라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친구들과 함께 앉아 있는 손녀딸을 유리문 밖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며 손을 흔든다. 손녀딸은 우리를 잘 쳐다보지 않는다. 이윽고 손녀딸이 엘리베이터를 탄다. 아내와 나의 손녀딸 등원시키기가 무사히 끝났다.


오늘은 사위가 일찍 퇴근한단다. 오늘 하원 담당은 사위다. 아내와 나의 오후는 한결 여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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