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과학자(본인 주장에 따르면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21세기를 과학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과학의 시대에는 수학, 과학뿐만 아니라 문학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문학은 '글쓰기'이다. 인공지능을 적수가 아니라 조수로 사용하려면 정확하게 부탁하고 명령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때 필요한 능력이 바로 '글쓰기'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 과학자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절대다수라고 가정해 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 대부분이 글쓰기 능력을 키우러 학원으로 달려갈 듯싶다. 또 고등학생 자녀를 둔 사람들은 앞다투어 자녀들을 글쓰기 학원으로 내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학원으로 몰려가는 거야 당연한 일일 수 있지만 고등학생들이 학원에서 글쓰기 능력을 키우려고 하는 행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내가 보기에 이 또한 당연지사이다. 자,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라. 학교에서 글쓰기를 배운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교내 백일장이나 독후감 쓰기 행사 등에서 글을 써 본 적은 있을 터이나 체계적으로 글쓰기를 배운 적은 없으리라 짐작한다. 만일 고등학교에서 체계적으로 글쓰기를 배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는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없다. 국어 교과를 통해 글쓰기를 배울 수 있을 터인데, 현행 우리나라 고교 국어 과목에 글쓰기를 가르치는 독립된 과목이 없다. 말하기와 쓰기가 묶인 '화법과 작문' 과목에서 글쓰기를 배울 수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 과목은 선택 과목이기 때문에 이 과목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은 글쓰기를 배울 기회가 아예 없다.
설령 이 과목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배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한 학기밖에 배울 수 없는 데다가 그 절반은 말하기를 배워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과목 담당 교사가 화법과 작문 교과서에 있는 말하기와 쓰기 이론에 관심이 있는 경우라면 글쓰기를 제대로 배울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해도 무방할 터이다. 또 만약 이 과목이 3학년 1학기에 편성되어 있다면 그 시간은 수능 국어 영역 문제 풀이 수업으로 활용되었으리라 짐작한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할 당시, 글쓰기의 중요성을 익히 인식하고 있던 터라 어떻게 해서든 수업 시간을 활용하여 쓰기 수업을 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학생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글쓰기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쓰기가 수능 국어 영역에 출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쓰기 영역'이 수능 국어 영역에 서너 문제 출제되기는 하나, 이는 글쓰기 교육을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풀 수 있는, 오지선다형 문제로 출제된다. 그러니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글쓰기에 대해 그 어떤 관심도 없는 상황이었다.
수업 중, 글쓰기 수업을 하려면 어떻게든 글쓰기를 대학 입시와 관련을 지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학생들이 글쓰기에 조금이라도 귀를 쫑긋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 수업의 과정을 생활기록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 사항에 기록해 주겠노라고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다.
'화법과 작문'이라는 과목 수업을 담당했을 때 본격적인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다. 과목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과목에서는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게 마땅하고도 옳은 일이다. 하지만 당위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글쓰기 수업과 생활기록부의 기록을 연계하려는 생각은, 그런 어려움을 돌파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그 당시 내가 맡은 '화법과 작문' 과목의 주당 시수는 3시간이었다. 3월부터 중간고사 전까지, 그 3시간 동안 오롯이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다. 찬반이 뚜렷이 갈릴 수 있는 특정 주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정한 다음, 그 이유(논거)를 제시하는 글쓰기 수업이었다. 예를 들어, '사형 제도를 유지해야 하는가?', '원자력 발전을 계속해야 하는가"와 같은 것들이다. 중간고사 이후부터 기말고사 이전까지는 화법, 즉 말하기 수업을 해야 했기에 글쓰기 수업은 중간고사 전까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글쓰기 수업의 핵심은, 특정 주제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이유(논거)를 찾는 것이다. 찬성 또는 반대의 이유(논거)를 3개 이상 찾아 제시하도록 했다. 타당한 논거를 찾기 위해 학생들에게 신문 기사, 전문 인터넷 자료, 논문, 관련 서적 등을 참고하도록 했다. 또한 모둠을 지어 학생들끼리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 주었다. 나아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학생들이 찾은 찬반의 이유(논거)가 적절한지를 나에게 검토를 받도록 했다. 그래야 찬반의 이유(논거) 수준이 고등학생 수준으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어떤 이유(논거)를 제시하며 찬성 또는 반대의 주장을 펼쳤는지를 중심축으로 하여 생활기록부에 기록을 했다. 한 번은 내가 근무했던 학교에서 어느 대학의 입학사정관을 초청하여 교사들을 대상으로 대학 입시에 관한 설명회를 연 적이 있다.
그 입학사정관이 생활기록부 기재 사항의 좋은 예로 제시한 사례 중에 내가 쓴 글쓰기 수업의 기록도 있었다. 이유(논거)를 제시하며 주장을 펼쳤다는 내용이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경우를 많이 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 입학사정관의 말은,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체계적인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글쓰기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각이 차고 넘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힘이 있어야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떠올릴 수 있다. 이런 능력을 학교에서 길러 줄 수 있다면 그 아니 좋은 일인가.
그러므로 이제 고등학교에서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나에게 글쓰기 교육을 받았던 학생들처럼 단 한 학기 동안만 글쓰기 교육을 받아서는 안 된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글쓰기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글쓰기 능력이 함양되지 않겠는가.
고등학교에서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을 하기 어려운 까닭은 무엇일까? 고등학교에서 글쓰기 교육을 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은 글쓰기와 대학 입시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리라 생각한다. 글쓰기 교육을 한다 한들, 그것이 학생들의 대학 진학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으니 학교도 학생도 글쓰기 교육에 크게 관심이 없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 입시의 영향에서 초연해지거나, 글쓰기가 대학수학능력 시험의 한 과목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면 고등학교에서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이 가능하겠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건 그야말로 백년하청이리라.
그러므로 그런 상황이 도래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어느 과학자의 말마따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인공 지능을 조수처럼 활용할 수 있는 글쓰기 능력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던가. '글쓰기'라는 과목을 새롭게 개설하여 글쓰기를 가르치면 좋겠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다.
지금으로서 고등학교에서 글쓰기 교육을 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은 국어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현행 교육과정상, 고등학교 3년 동안 학생들은 매 학기 한 과목 이상의 국어 수업을 받게 되어 있다. 그 시간 중 1~2 시간을 글쓰기 수업에 활용하면 기본적인 글쓰기 교육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이때 반드시 글쓰기 교육의 과정을, 생활기록부에 충실하게 기록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가 된다. 또 학교에서는 글쓰기 교육 계획을 촘촘하게 세워야 한다. 그래야 내실 있고 의미 있는 글쓰기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글쓰기 교육이 3년 내내 잘 이루어지면, 글쓰기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생각이 성장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도 있다. 한 학기 또는 한 학년 단위로 과목이 분절되는 지금의 고등학교 교육과정 안에, 단일한 주제로 3년 내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터이다.
생각이 차고 넘쳐야 글을 쓸 수 있다. 글쓰기를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요즘 학생들의 문해력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글쓰기 교육을 통해 이러한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글쓰기 교육,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교육이다. 학교에서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을 하는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