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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강 Oct 28. 2024

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20> 2024. 10. 28.(월)

일곱 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손녀딸이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왔다. 잠투정을 부리는지 할머니에게 생트집을 부린다. 아내가, 순돌이(우리 손녀딸 태명)가 예쁘게 말을 안 해서 집으로 가겠다고 하자, 들릴락 말락 하게 "가지 마세요."라고 한다. 내가 손녀딸에게 "할머니 가까이 가서 할머니한테 직접 말해."라고 했더니 못 들은 척한다. 한동안 손녀딸과 아내 사이에 서먹한 기운이 흘렀다. 할머니와 냉전을 벌여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손녀딸이 모를 리 없다. 할머니와 계속 냉전을 벌이다가는, 어린이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할머니와 하는 그 재미나는 역할 놀이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마 손녀딸은 적절한 계기만 마련되면 할머니에게 기꺼이 사과를 하리라.


  얼마 간 시간이 흐른 뒤, 혼자 놀고 있는 손녀딸에게 "순돌아, 할머니한테 사과하는 건 어때?"라고 내가 말하자, 손녀딸은 멀찍이서 "할머니, 미안해요."라고 한다. 내가 손녀딸을 꼭 끌어안고 아내 쪽으로 좀 더 가서, 다시 사과하라고 하자, 또 손녀딸은 또 사과를 한다. 내 딴에 뭔가 좀 부족한 듯하여 아내 쪽으로 더욱 다가가며, "순돌아, 할머니한테 똑똑히 사과해 봐."라고 했더니 손녀딸이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요."라고 한다. 


  손녀딸의 말과 행동이 하도 귀여워 아내는 더 이상 화난 척할 수 없었다. 아내가 손녀딸을 꼭 끌어안으며 뺨에 뽀뽀를 하는 것으로, 손녀딸과 할머니는 오늘의 냉전을 끝마쳤다. 그때부터 손녀딸은 완전히 할머니 바라기로 돌변했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 소아과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손녀딸과 할머니는 역할 놀이 삼매경에 빠졌다. 할머니와 냉전을 벌이면 이 재미있는 역할 놀이를 포기해야 하니, 손녀딸을 할머니와의 냉전을 오래 끌 수는 없으리라. 차에서 내려 소아과 병원으로 가는 길에, 손녀딸은 내내 할머니 손을 꼭 쥔 채 종종걸음을 쳤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가 읽어 주는 동화책을 듣다가, 할머니 손을 잡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병원에서 나오면서 갑자기, 할아버지 손을 잡고 가겠다고 한다. 내가 '텐텐'이라는 어린이 비타민 사탕을 사 주었기 때문이다. 적절하게 보상을 해줄 줄 아는 우리 손녀딸이다.  


  9시 45분쯤 등원을 마쳤다. 병원에 들르느라, 오늘은 등원이 좀 늦었다. 손녀딸은 어린이집 로비에 혼자 앉아 있다가, 유리문 밖에서 나와 아내가 손을 흔드는 걸 보더니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곧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손녀딸은 폴짝,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손녀딸을 하원시키러 가면서 차를 어린이집 근처 교회 주차장에 주차했다. 어린이집 주차장에 주차할 공간이 없을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교회 주차장에도 주차할 공간이 딱 한 곳밖에 남아 있질 않았다. 우리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많아서일 것이다. 이러다가 교회 주차장에 '○○ 어린이집 학부모 차량 주차 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을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교회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곧 손녀딸이 쫄랑거리며 나왔다. 아내와 내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어린이집 옆 놀이터로 간다. 이제 거의 참새 방앗간 수준이다. 미끄럼틀 몇 번 타고 술래잡기도 몇 번 했다. 손녀딸을 뛰게 하려고 쫓아가서 잡는 시늉을 하니, 깔깔대며 도망간다. 서너 번, 쫓고 쫓기는 놀이를 하고 교회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차에 올라 딸네 집으로 향했다.


  딸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손녀딸은 할머니와 아주 재미있게 역할 놀이를 한다. 그런데 갑자기 손녀딸이 울기 시작했다. 손녀딸이 비타민 사탕인가 뭔가를 까 달래서, 아내가 까 주었는데 아뿔싸, 그 사탕이 약간 부서져 있었던 탓이다. 웬일인지 몰라도 우리 손녀딸은 그걸 못 견뎌 한다. 형태가 고스란히 그대로 있어야 만족한다. 완벽주의 성향인가? 그러면 살아가면서 피곤한 일이 많을 텐데 걱정이다. 이제 겨우 네 살이니 크면 괜찮아지리라고 믿는다.

  

  손녀딸은, 할머니가 사탕 껍질을 너무 세게 까다가 사탕이 부서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자꾸 할머니 탓을 한다. 아내가 아무리 원래 깨져 있었던 것이라고 해도 당최 믿으려 하지 않는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아내가 손녀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아내 입장에서야 말 그래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지만, 손녀딸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니 어쩌겠는가. 억울해도 미안하다고 할밖에. 할머니의 사과를 듣고서야 손녀딸은 울음을 그쳤다. 할머니에게 미안하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일부러 그랬나 싶기도 하다. 아침에 손녀딸이 할머니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적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네 살배기가 그런 고단수 책략을 썼을 리야 만무하겠지만, 한번 그런 쪽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니 왠지 그럴 것만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할머니에게 사과를 받은 손녀딸은 이제 애착 인형 보노가 보고 싶다고 한다. 다행히 딸네 집에 거의 다 도착한 시점이다. 서둘러 주차를 하고, 나는 손녀딸을 안고 아내는 손녀딸 어린이집 가방과 간식 가방 따위를 들고 딸네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간 손녀딸은 일단 보노에게로 달려가 보노 꼬리를 쪽쪽 빤다. 그러면서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아무튼 보노는 우리 손녀딸에게 무한한 위로와 평안을 주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준비해 간 간식을 먹이고 휴대폰으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해서, 전래 동화를 찾아서 들려주고 있는데 딸내미가 퇴근해서 왔다. 딸내미가 씻고 나오는 동안, 손녀딸과 좀 더 놀아 주다가 집으로 왔다. 퇴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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