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강 Nov 21. 2024

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32>  2024. 11. 20.(수)

평소와 같이 6시 30분에 딸네 집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오늘은 손녀딸이 제 침대에서 콜콜 자고 있다. 이불을 차내고 자고 있길래 이불을 살포시 덮어 주고 방을 나왔다. 할머니가 제 마음을 몰라 주었다며 흐느끼던 어제의 한바탕 소동이 떠올라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얼마 후 딸내미와 사위는 출근길에 올랐고 나와 아내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7시가 좀 못 되어, 손녀딸 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내가 후다닥 달려가 손녀딸을 침대에서 안아 올려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손녀딸은 울면서 "엄마가 보고 싶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엄마가 화장하는 걸 보고 싶어."라고 하면서 울고 있었다. 제 엄마가 출근하지 전에 잠이 깨어, 엄마의 출근 준비를 며칠 보더니 그 모습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어제의 서러운 흐느낌이 여전히 약간 남아 있는 듯한 울음이어서, 나와 아내는 약간 걱정이 되었다. 일단 내가 손녀딸을 옮겨 안고, 나와 아내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손녀딸에게 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지금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여튼 나와 아내가 끊임없이 손녀딸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종당에는 고구마튀김과 바나나를 먹자고 하여 손녀딸의 울음을 잦아들게 했다. 울음소리를 듣고 처음에 걱정했던 것에 비해서는 손녀딸은 손쉽게 울음을 그쳤다.


  그러고 나서는 일사천리로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밥 먹다 말고 보고 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멈추라고 하더니, 응가가 마렵다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어제 아침에도 제법 많은 양의 응가를 배출했는데 오늘도 그랬다. 손녀딸 속이 시원할 것 같아, 내 속도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거실로 와서 밥을 마저 먹고 바나나도 몽땅 다 먹었다. 밥을 다 먹고 옷을 입히려는데, 바지 입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은 우리 손녀딸이 웬일로 청바지를 입겠다고 해서 옷 입는 문제도 아무 탈 없이 해결되었다. 양치질하고 얼굴 보습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8시 3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시간이 꽤 남았다. 오늘은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병원에 들러야 하는 날인데 병원 진료가 9시 20분에 시작되니 말이다.


  그런데 나와 아내가 딸네 집을 정리하는 동안, 손녀딸이 텔레비전을 끄더니 공주 인형을 가지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뭘 하는가 싶어 따라가 봤더니, 손녀딸은 공주 인형 머리를 빗기려고 하고 있었다. 문제는, 손녀딸이 공주 인형 머리를 세면대를 가득 채운 물속에 넣고 빗기려고 하는 데 있었다. 손녀딸 말로는 그래야 공주 인형 머리가 잘 빗긴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것은 거의 물장난이었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물장난을 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잘못하면 옷이 다 젖어 옷을 갈아입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청바지 단을 위로 접고 맨투맨 티셔츠의 소매를 걷어 젖히고 그 위에 수건을 두르고 물장난을 하게 했지만 물장난이 끝났을 무렵 손녀딸의 티셔츠 소매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또 공주 인형의 머리는, 물속에 담근 채 빗질을 했지만 손녀딸이 원하는 만큼 곱게 빗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내가 공주 인형 머리를 계속 빗겨 주어 어느 정도 손녀딸이 원하는 수준을 맞출 수 있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공주 인형의 머리와 손녀딸의 옷소매가 축축하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아주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었다. 아내 왈, 헤어드라이어로 말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평소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지 않는 터라 반신반의했는데 요즘 헤어드라이어의 성능이 탁월한 탓인지 생각보다 빨리 말랐다.


  이제 병원에 들러 어린이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병원에 가자고 하니 손녀딸이 별안간 서두르기 시작했다. 늦겠다며, 빨리 가자고 성화다. 병원 옆 약국에서 티니핑 비타민 사탕 한 줄을 사는 것을 할머니가 허락했기 때문이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손녀딸과 아내의 역할 놀이 극장은 오늘도 예외 없이 막을 올렸다. 진료를 마치고 약국으로 간 손녀딸은 아주 당당하게 티니핑 비타민 사탕 한 줄을 집어 들더니 나에게 주었다. 계산을 해 달라는 이야기이다. 계산을 마치고 비타민 사탕을 주었더니 손녀딸은 그걸 자기 외투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하나 까서 먹을 줄 알았더니 그러질 않는다. 티니핑 비타민 사탕은 수집용인가?


  9시 50분쯤 어린이집에 도착했더니, 어린이집 주창장이 만원사례다. 진입할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주차장 입구에 손녀딸과 아내를 내려주고, 한 바퀴 돌았다. 한 바퀴 돌아오니, 손녀딸은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고 아내가 그 자리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를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등원 완료다.




   스쿠터를 가지고 데리러 오라는 손녀딸의 요청에 따라 스쿠터를 몰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날씨가 좀 맵찬지라 손녀딸 장갑과 마스크는 미리 어린이집 가방에 넣어 놓은 터다. 어린이집에서 나오자마자 손녀딸은 옆 놀이터로 갔다.


  어제 같이 놀지 못했던 '소ㅇ이'와 놀이터에서 함께 놀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아이는 놀이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손녀딸과 어린이집 쪽으로 가 보았지만 거기에도 그 아이의 모습은 역시 보이지 않았다.


  손녀딸에게 그 아이가 집으로 갔나 보다 라고 말하며 우리도 그냥 집으로 가자고 했다. 손녀딸은 순순히 그러겠다고 했다. 고집부리지 않고 너무 순순히 말을 들어서  놀랄 정도였다. 스쿠터를 세워 놓은 놀이터로 다시 가서 스쿠터에 올라타려는 순간, 그 아이가 언니와 엄마와 함께 놀이터로 들어왔다. 눈물 한 방울을 눈 밑에 매단 채. 그 아이 엄마 말로는, 그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가겠다고 하도 떼를 써서 집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손녀딸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그랬던 것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손녀딸은 그 아이 이름을 부르며 매우 반가워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한두 번 같이 논 두 아이는 그다음부터는 각자 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 손녀딸이 이제 그만 놀고 집에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인사를 하게 하고 스쿠터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어제 그 아이와 함께 놀지 못했다고 그렇게 속상해 한 건 도대체 무엇인가. 네 살배기 손녀딸의 속마음은 참 알 수가 없다.


  딸네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먼저 와 있었다. 손녀딸은 할머니를 보고 매우 반가워했다. 그러더니 얼마 후 할머니와 역할 놀이를 시작했다. 우리 손녀딸은 역할 놀이를 참 좋아하고 잘한다. 손녀딸이 아내와 역할 놀이 하는 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딸내미가 퇴근했다. 손녀딸이 좋아하는 호두과자를 가지고 왔다. 호두과자에 있는 버터를 빼 달라고 한 손녀딸은 호두과자 두 개를 순식간에 먹었다. 이제 수학 놀이터에 갈 시간이다. 평소대로 뒤에서 밀 수 있는 봉이 달린 세발자전거로 수학 놀이터로 향했다. 아내는 그림 그리러 갔다. 딸내미와 손녀딸이 수학 놀이터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딸네 집으로 향했다. 스쿠터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딸네 집 자전거 거치대에 있는 스쿠터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차가운 바람이 뺨에 스친다. 기분이 상쾌하다. 퇴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