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네와 2박 3일 주말여행을 다녀온 뒤 맞이하는 월요일이다. 딸네 집에 들어가서 손녀딸 방을 들여다보니, 손녀딸이 곤히 잠들어 있다. 손녀딸이 5시쯤 깨어 엄마 출근 준비하는 모습을 보겠다고 하는 걸 아직 시간이 이르니 좀 더 자라고 했더니 이내 잠들었다는 말을, 출근 준비를 마친 딸내미가 우리 부부에게 해 주었다.
바로 그때, 손녀딸이 "엄마!" 하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딸내미가 후다닥 달려가 손녀딸을 안고 안방 침대에 누였다. 그러면서 출근 준비를 하는 척했다. 그러고 나서 딸내미가 손녀딸에게, 이제 엄마 출근하겠다고 했더니 손녀딸이 울먹이며 책 한 권 읽어 주고 출근하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손녀딸이 안쓰러운데, 제 어미가 보기에는 오죽하랴 싶다. 딸내미가 손녀딸에게 책 한 권을 아주 재미있게 읽어 주고 출근길에 올랐다. 손녀딸도 별말 없이 제 엄마에게 바이바이를 했다.
딸내미와 사위가 출근한 뒤, 아내가 손녀딸을 데리고 손녀딸 방으로 갔다. 좀 더 재울 심산이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약간 졸면서 아내와 손녀딸의 소리를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하여간 무슨 대화가 줄곧 오갔다. 잠시 후 내가 손녀딸 방으로 가 보았더니, 아내가 손녀딸에게 목티셔츠를 입히려고 하고 손녀딸은 한사코 입지 않으려고 하고 있는 중이었다. 손녀딸이 거실로 나오려고 하자, 아내는 손녀딸이 추울까 봐 옷을 입히려는 것이었고 손녀딸은 그 옷이 불편하다며 입지 않으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손녀딸이 "이불로 꽁꽁 싸서 나가면 되잖아."라고 하길래 내가 손녀딸을 이불로 꽁꽁 싸서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이제 슬슬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하면 된다. 손녀딸이 책을 한 권 읽어 달라고 한다. 새로 산 독서대에 책을 올려놓고 책을 읽어 주었다. 손녀딸이 이 독서대에 책을 올려놓고 읽는 걸 아주 좋아한다는 딸내미의 전언대로,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녀딸은 제 손으로 책장 고정 장치로 책을 고정하며 내가 읽어 주는 책을 집중해서 들었다.
책 한 권을 다 읽었을 때, 아내가 손녀딸 아침밥을 가지고 왔다. 손녀딸이 주문한 '온통 바나나'와 소고기 뭇국에 만 밥이다. 바나나가 문제였다. 바나나 자체가 아니라 바나나의 양이 문제였다. 아내 말로는 바나나 세 개를 잘라 접시에 담았다는데, 손녀딸은, 바나나 틈새로 빈 곳이 보인다며 바나나를 더 달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바나나 양이 제법 많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빈 곳이 보인다며 바나나를 더 내놓으라고 야단이다. 뭐, 더 줄밖에. 바나나 하나를 더 잘라 접시에 담아 가져다주었다. 바나나가 접시 위로 수북하다. 그제야 손녀딸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나나를 포크로 찍어 먹기 시작했다. 소고기 뭇국에 만 밥의 양도 제법 많았는데 그걸 다 먹었다. 밥은 손녀딸이 직접 먹지 않고, 내가 먹여 주는데 손녀딸에게 먹으라고 하면 언제 다 먹을지 몰라 어쩔 수 없이 먹여 준다. 그런데 44개월이 지난 손녀딸에게 이렇게 밥을 먹여 주는 게 잘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어린이집 등원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더 달라고 한 바나나는, 딱 더 달라고 한 그 정도의 양을 남겼다. 하긴 밥을 그렇게 먹었으니 배가 부를 만도 하다. 요즘 손녀딸이 제법 잘 먹는다. 크려나 보다. 손녀딸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세상 그 어떤 광경도 이보다 더 나를 흐뭇하게 할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등원 준비가 퍽 수월하다. 손녀딸이 그만큼 컸다는 이야기이리라. 어린이집에서 신는 실내화가 낡아 '엘사' 실내화를 사서 가져왔다고 했더니 손녀딸은 구두도 '엘사' 구두를 신겠다며 평소에 잘 신었던 빨간 구두를 마다했다. 치마도 손녀딸이 좋아하는 '롱롱(long long)' 치마를 입어서인지 오늘 손녀딸의 등원 컨디션은 100점 만점에 100점이다. 9시 15분쯤 어린이집에 도착했는데, 주차장도 텅 비어 있다. 만사형통이다.
손녀딸을 하원시키러 혼자 어린이집에 왔다. 아내의 체력 안배를 위해서다. 3시 20분쯤이다. 손녀딸이 3시 55분쯤 어린이집 로비로 내려오니까 시간이 좀 있다. 어린이집 옆에 있는 제천 변을 걷기로 했다. 나이 들수록 다리 힘이 중요하다고 하니 틈만 나면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 맞춰 어린이집 앞으로 갔다.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들 한 무리가 쏟아져 나왔다. 우리 손녀딸도 있다. 나를 보더니 "할아버지~~"라고 외치며 달려 나왔다. 나와서는 내 품에 쏙 안긴다.
곧장 어린이집 옆으로 갔다. 손녀딸이 미끄럼을 한 번 타고 내려오니 같은 반 친구 '윤ㅇ'가 엄마 손을 잡고 놀이터로 들어왔다. 우리 손녀딸의 눈이 반짝였다. 재미있게 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리라.
손녀딸은 그 아이와 미끄럼도 타고 철봉에 매달리기도 하고 잡기 놀이도 하고 솔방울도 주우면서25분 정도를 참 재미있게 놀았다. 역시 아이들은 친구가 있어야 한다. 재미있게 놀던 손녀딸이 갑자기 집에 가겠다고 한다. 친구에게 바이바이를 하고 차로 향했다.
간식으로 준비해 간 솜사탕을 먹으며 집으로 향했다. 딸네 집 주차장에 도착해 내리라고 했더니 안아 달란다. 짐이 많아서 안 된다고 했더니, 힘이 없다며 한사코 안아 달란다. 손녀딸이 이렇게 나오면 안아줄 수밖에 없다. 손녀딸에게, 짐이 많으니 할아버지 목을 꼭 끌어안으라고 했더니 아주 꼭 끌어안는다. 또 할아버지 힘나게 뽀뽀해 달랬더니, 아주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이제 그만하라고 해도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뽀뽀를 퍼부어 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손을 씻고 나온 손녀딸은 곧장 애착 인형 보노를 끌어안고 거실 매트에 눕는다. 손녀딸이 심심해 보여, 책을 읽어 주겠다고 했더니 아침에 읽었던 책을 가지고 온다. 그 책을 다 읽었을 무렵, 딸내미가 퇴근했다. 손녀딸이 "엄마~~'를 외치며 달려간다. 매일 반복되는 모녀의 행복한 재회 풍경이다.
딸내미가 씻고 나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좀 더 손녀딸과 놀아 주다가 집으로 향한다. 6시가 다 되었다. 퇴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