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 사는 / 살아갈 이야기

나의 통풍 발병기

by 꿈강

푹 잘 자고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오른쪽 발로 방바닥을 딛는 순간, 칼로 쓱 베는 듯하기도 하고 날카로운 바늘로 찌르기도 하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악 소리와 함께 방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먼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던 아내가 놀라 달려왔다.

"모르겠어.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너무 아파."


일단 출근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나 왼발을 디뎌보니 다행히 괜찮았다. 지팡이 비슷한 걸 구해서 간신히 출근해서 어찌어찌 근무를 마치고 내가 살고 있는 지방 소도시의 병원으로 향했다.

내과 병원이었다. 발가락이 아픈데 왜 내과 병원으로 갔냐고? 모르겠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차를 몰고 가다가 맨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곳일 수도 있다.


진찰을 마친 의사가 감기 몸살이라고 했다. 감기 몸살 증세가 있기는 했다. 그래도 뭔가 좀 이상했다. 의사한테 물었다.

"감기 몸살인데 발가락이 이렇게 아플 수도 있나요?"

의사 말했다.

"감기는 증상이 하도 다양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사 한 방 맞고 3일 치인지 5일 치인지 약 처방받아, 약을 복용했다. 그랬더니 감기 증상과 함께 발가락 통증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2년 정도 지난 즈음, 똑같은 통증이 똑같은 부위에 찾아왔다. 아무래도 감기는 아닌 듯했다. 하여, 내가 사는 지역-나는 지방 소도시에 살고 있다-의 병원급 의료 시설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의사는 진찰을 마친 후 통풍이 의심된다며 피검사를 통해 정확히 진단해 보자고 했다. 시키는 대로 할밖에. 피를 뽑고 나니 결과 보러 일주일 후에 오라고 했다. 처방받은 약을 먹으니 통증은 괜찮아졌고 일주일 뒤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핏속 요산 수치가 나와 있는 검사 결과를 컴퓨터 화면에 띄워 보여 주며 통풍이 틀림없다고 했다. 어떡해야 하냐고 했더니, 평소처럼 생활하다가 아프면 내원해서 약 먹으라고 했다. 다만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며 여러 가지 주의할 음식에 대해 안내해 주었다. 술 특히 맥주는 절대 금물이라고 했다. 이건 뭐 거의 먹을 게 없는 수준이었다. 좀 보태서 이야기하면 물과 공기만 섭취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어쩌리. 시키는 대로 할밖에. 통풍이라지 않는가.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통증의 왕이라는 바로 그 통풍이라지 않는가.


그런데 의사가 시킨 대로 음식을 조심해도-그렇다고 의사 말을 완벽하게 지키지는 않았다. 술도 좀 먹고 그랬다. 맥주도. 대한민국 술자리에 소맥이 빠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던가.- 거의 6개월에서 1년 주기로 통풍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그 병윈에 내원하여 약을 타 먹으며 지냈다. 그러던 중 2009년에 통풍이 다시 찾아왔는데, 상황이 자못 심각했다. 오른쪽 엄지발가락 안쪽이 발갛게 부어오르고 뼈 마디도 약간 튀어나온 듯했다.


아내가 여기저기 수소문하더니, 서울로 가야 한다고 했다. 서울 상급병원으로 가야 한단다. 연줄에 연줄을 동원해서 우리나라 5대 메이저 병원 중 한 곳의, 통풍의 권위자에게 특진 신청을 했다. 그리고 내가 다니던 병원에서 진료 의뢰서를 발급받아 서울의 메이저 병원으로 향했다.

이름도 생소한 류마티스 내과에서 치료를 받았다. 흰 가운을 단정하게 입은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은 사람이, 주삿바늘을 퉁퉁 부은 내 엄지발가락에 솜씨 좋게 찔러 넣더니 무언가를 빼냈다. 흰색의, 가루 같기도 하고, 액체 같기도 한 물질이었다. 요산 결정체가 관절 뼈 마디에 침착한 것이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통증이 사그러드는 게 고마울 뿐이었다.


그가 3번 진료실로 들어가라고 안내해 주었다. 그곳에 내가 특진 신청을 한 통풍의 권위자가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내 엉덩이를 아주 얌전하게 얹었다. 나는 내가 다녔던 지방 소도시 병원에서 처방한 약들을 본, 그 권위자가 가볍게 내는 한숨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나는 그가 '아, 이 약을 쓰면 안 되는데...'라고 말한 거라고 생각했다.


권위자는 내 쪽으로 몸을 약간 돌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의사한테서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통풍 발병 원인부터 알아봐야 합니다. 통풍을 유발하는 퓨린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을 많이 드시는지 아니면 요산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대사 기능이 문제인지 알아봐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간호사가 준비해 드리는 용기에 24시간 소변을 받아 오세요."

나는 속으로 '음, 역시 뭔가 다르긴 다르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병의 원인부터 알아보는 건, 매우 상식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지금까지 내가 다니던 병원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그러나 이런 얘기를 그 권위자에게 감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그 권위자에게 고작 다음과 같이 물었다.

"24시간 소변은 어떻게 받는 거죠?"

그는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흘리며,

"밖으로 나가시면 간호사가 자세히 설명해 줄 겁니다."라고 말했다.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이 세상 어느 권위자가 24시간 소변 받는 방법을 설명하겠는가. 나는 권위자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간호사는 매우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24시간 소변받는 방법을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혹시 내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중요한 포인트는 두세 번 이야기했다. 간호사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간호사가 준비해 준 용기를 들고, 내가 사는 지방 소도시로 내려왔다. 그 다음날 출근해서 안내받은 매뉴얼대로 24시간 소변을 받아, 그 다음날 서울로 올라 가서, 그 메이저 병원에 제출하고, 다시 내가 사는 지방 소도시로 내려왔다. 권위자와의 만남은 일주일 뒤였다. 지방에서 서울을 왔다갔다하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라 올라간 김에 권위자를 만나보고 싶었으나, 그건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일주일 뒤, 서울로 올라가서 진료실에서 그 권위자와 마주 앉았다.

"선생님의 경우는 몸속의 요산이 잘 배출되지 않는 케이스입니다. 대사 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처방해 드리는 약 꼬박꼬박 잘 드시면 큰 문제없이 일상생활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술은 드시면 안 됩니다."

"소주는 괜찮지 않나요? 통풍엔 맥주가 안 좋다던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들 알고 있지요. 맥주가 특히 안 좋다는 겁니다. 모든 술은 종류에 상관없이 통풍에 좋지 않습니다."

"단 한 잔도 안 되나요?"

"정 드시고 싶으면 딱 한 잔만 드십시오. 소주든 맥주든."

먹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의사가 계속해서 주의사항을 얘기했다.

"약을, 매일, 죽을 때까지 드셔야 합니다."

"매일, 죽을때까지 먹어야 한다고요? 완치가 안 되나요?"

"고혈압과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혈압 환자도 매일 약을 먹지 않습니까? 자, 그럼 3개월 후에 뵙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후로부터 지금까지 흰색 알약 세 알을 매일 삼키고 있다. 그 덕분이리라.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통풍 발작은 딱 한 번뿐이었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냐고? 그럴 리가. 술을 먹던 사람이, 일순간에 술을 딱 끊고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사회생활을 영위한단 말인가? 사회적 생매장을 자처하는 일 아니던가? 물론 술을 먹는 횟수와 양을 대폭 줄였다.


그 권위자(나는 그를 주치의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나를 진료할 때마다 "술은 안 드시지요?"라고 묻곤 한다. 나는 단 1초의 망설일도 없이 "아, 그럼요."라고 대답한다.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뉘앙스가 최대한 묻어나는 말투로, 약간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주치의를 만나러 갈 때마다 피검사를 통해 요산 수치 등을 확인한다. 이제까지, 한두 번을 제외하고 모두 요산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었다. 비결이 뭐냐고? 주치의 처방대로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게 가장 큰 비결일 터이다. 또 하나. 진료 2주일 전부터 시작하는 철저한 금주 생활도 분명 한몫했으리라.


이쯤에서 의문점을 가질 만한 한 가지는, 그만 한 병으로 꼭 서울 상급병원까지 가서, 업계의 권위자를 만났어야 했냐는 점일 것이다. 그 까닭은, 내가 살고 있는 지방 소도시의 의료 체계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각종 흉흉한 소문이 들려온다. 지역 병원에 갔다가는 병을 더 얻어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 의료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말은 서울에 국한한 이야기이지 싶다.


지방에서 살아간다는 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은데 특히 의료 체계가 그러하다. 수도권이 너무 과밀한 상태라 수도권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할 텐데, 지금 이 정부는 도통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 답답하기만 하다. 표로 심판할 수밖에 없는데 총선도 아직 꽤 남았다. 헉, 헌데 총선에서 여당이 이기면 어떡하지. 지금 야당이 하는 꼴을 보면 어찌 될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 누가 누가 못하나 게임을 하는 듯하다.


에라, 그건 그렇고 나는 약이나 잘 챙겨 먹고 아프지나 말자. 그게 세상에 한 부조하는 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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