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브루타 수업하면 이런 일도 생깁니다
이 질문을 보고, 처음에는 '아, 틀림없이 0표 클럽이겠네.'라고 생각했다. 그 어떤 모둠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질문이라는 의미이다. 그런 질문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대개 질문이 너무 어려워서 답을 할 수가 없거나 아니면 질문이 너무 쉬워 대답이 뻔한 경우가 0표 클럽으로 향하게 된다. 당연히, 이 질문은 너무 어려워서 아이들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만들어 본 모둠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입을 뗐다. 그러나 그런 모둠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침 이 질문은 1번 칸에 쓰여 있었다.
"1번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만들어 본 모둠 있나요?"
'역시 0표 클럽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한 모둠에서 한 학생이 서서히,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더욱이 그 학생은 평소에 발표를 활발하게 하지는 않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얼른, 모둠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말해 보라고 했다.
대답 또한 놀라웠다. 자신이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그 시간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대답을 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불성(佛性)이니 자타불이(自他不二)니 용어를 써 가며 인간 존재를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다른 과목에서 배운 내용을 접목하여 대답을 만들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융합 수업 아니겠는가. 요즘 우리 학교에서, 아니 대부분의 학교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기말고사 이후의 이른바 수업량 유연화 주간에 이루어지는 교과 융합 수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너무 설레발치는 것 같아 좀 낯간지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한 말을 거두어들이진 않으련다. 그만큼 너무나도 좋았다. 흐뭇했다.
다른 모둠 학생들도 놀라는 듯했다. 아, 저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이제 질문을 만든 모둠의 생각을 들어볼 차례이다. 어느 모둠이 만든 질문인지 확인한 다음, 생각을 이야기해 보라 했더니 쭈뼛거린다. 다른 모둠의 대답이 너무 멋들어져 좀 주눅 든 듯했다. 괜찮다고, 어떠냐고, 모둠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말하면 된다고 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랬더니 잘못을 저지른 인간은 따끔한 가르침을 통해 깨우쳐 주어야 하는 미미한 존재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는, 앞서 모둠과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았다.
뭐는 맞고 뭐는 틀리랴. 어차피 정답이 있는 질문도 아니지 않은가. 그 질문은 가지고 모둠원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름 대로의 결론을 냈다는 게 얼마나 기특한가. 그 어떤 참고서나 자습서에 <구운몽>을 공부하면서 '인간 존재의 해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겠는가.
내가 만약 전통적인 교사 주도의 강의식 수업을 했다면 이런 상황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터이다. 생각하고, 질문하고, 대답하는 능력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이다. 하브루타 수업을 하면 이런 멋진 광경이 교실 안에서 펼쳐진다. 명퇴가 받아들여진다면 교직 생활이 두 달 정도 남게 된다. 이런 장면이 한두 번 더 벌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