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학교의 의사결정 구조에는 예나 지금이나 '민주'가 없다

by 꿈강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할 학교의 의사결정 구조에 민주주의 원리가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1989년 교직에 발을 들인 이후,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예를 본 기억이 없다. 학교에서는 교장이 마음먹고 밀어붙이면 못할 일이 없다. 바꾸어 말하면, 교장이 '안 돼!'라고 하는 순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교사들의 회의를 거쳐 결정된 사항도 교장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교장은 학교에서 거의 제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15년쯤 된 이야기 하나 해 보자. 그때 나는 그 학교의 연구 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연구부의 업무 중에 공동 연수라는 업무가 있다. 주로 방학식을 하고 나서, 당일 또는 1박 2일로 직원 연수를 갖는다. 말이 연수지 사실상 직원 친목 도모 행사에 가깝다. 연수라는 명목을 갖추었으니, 당연히 학교 예산이 들어간다.


그 학교의 공동 연수는 대체로 연수 추진에 대한 교사 동의, 당일 또는 1박 2일에 대한 교사 동의를 통한 연수 일정 결정, 연수 장소 선택 순으로 이루어져 왔다. 문제는 그해 교장이 새로 부임해 왔다는 사실이었다.


여름방학 한 달 전쯤, 교장이 불러서 교장실로 갔다. 공동 연수를 추진해야 하지 않냐고 했다. 공동 연수 실시 여부에 대해 교사들의 의견을 묻자고 했다. 그걸 왜 묻느냐고 반문했다. 몇 년 전부터 교사들의 의견을 물어 실시했다고 했다. 교장은, 공동 연수처럼 직원 화합에 좋은 일은 일단 추진하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담당자로서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교사들의 의견을 묻자고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랬더니, 공동 연수를 추진할 때, 교사들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는 근거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나는, 물으면 안 된다는 근거는 어디 있느냐고 했다. 교장은, 그러면 연구 부장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래서 그걸 왜 연구 부장 마음대로 하느냐고, 교사들의 의견을 물어서 해야 마땅한 일이라는 말을 남기고 교장실을 나왔다.


그래서 그 공동 연수는 어떻게 됐냐고? 교장의 생각대로, 교사들의 실시 여부에 대한 동의를 묻지 않고 추진되었다. 담당 부장인 내가 못하겠다고 버티니까, 다른 부서 부장에게 업무를 넘겨 추진했다. 끝까지 교장하고 싸우지 않고 뭐했냐고? 내가 그렇게 대가 센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만 나는 그 공동 연수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교장이 마음먹으면, 웬만한 일을 교장 마음대로 이루어진다.


하나 더. 한 10년쯤 된 이야기이다. 지역 내 어떤 학교로 전근 갔더니, 정기고사 문제가 잘못 출제되면 그 학교에서는 무조건 재시험을 봤다. 업무 담당 부장 교사에게 왜 그래야 하느냐고 했더니 교장 지시사항이란다. 학교 내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어 복수 정답을 인정해 주는 걸로 충분한 경우가 많다. 무조건 재시험을 보는 건 비합리적이다. 다른 학교에서도 복수 정답을 인정해 주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교장에게 건의를 해 보려고 마음먹었다.

교장에게 이야기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했다. 교육청 평가 담당 장학사에게 질의하여 복수 정답을 인정해 주어도 아무 문제나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교장실에 들어가 장학사의 회신을 보여주며 얘기했다. 그 교장은, 그건 평가 담당 장학사의 생각일 뿐이고 성적 감사를 나오면 복수 정답을 인정해 주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재시험을 치르면 징계를 면할 수 있지만. 듣느니 처음이라고 했더니 본인이 감사 보고서 자료를 찾아 보여 주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어, 교장실로 갔더니 어딘가에 근거가 있기는 할 텐데 도통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험 문제가 잘못 출제되었을 때 재시험을 보는 게 큰 문제가 없으니 그대로 하자고 했다. 교내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어 논의해 보면 어떠냐고 했더니, 뭘 그런 걸로 위원회까지 여냐며 반대했다. 이러면 어쩔 도리가 없다. 주위 교사들과 이야기해 보면, 무조건 재시험 보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저 그뿐이다. 교사들의 이런 생각을 공식화할 통로가 없다. 학업성적관리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하는데, 교장이 이를 거부하면 방법이 없게 된다.


3~4년쯤 된 이야기 하나 더. 앞서 이야기한 두 학교와는 다른 학교의 경우이다. 그 당시 그 학교의 금요일 오후 시간표는 이랬다. 5교시 창의적 체험활동(동아리 활동), 6교시 자습, 7교시 교과 수업. 요상하다. 5교시 교과 수업, 6교시 창의적 체험활동(동아리 활동), 7교시 자습. 이런 순서가 일반적일 터이다. 훨씬 자연스럽지 않은가. 지난해 시간표는 이랬다. 그해 요상하게 바뀌었다.


문제는 왜 이렇게 시간표를 바꾸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냥 이런 시간표를 통보받았다. 도대체 누구 생각인지 궁금했다. 우연한 기회에 교장 생각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교장이 새로 부임하지도 않았다. 지난해와 동일한 인물이다.


어떤 부장 교사에게서 들었다. 그해 금요일 오후 시간표가 좀 이상하니 바꾸자는 얘기가 부장 회의에서 나왔다고 한다. 여러 부장 교사들이 찬성했고 그해 새로 부임한 교감도 그게 더 낫겠다고 동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회의에 교장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얼마 후 교감이 부장 교사들에게 금요일 오후 시간표 변경은 어렵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교감도 동의한 부장 회의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지는 지나가는 개미도 알 수 있을 듯하다.


그걸로 끝이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장 회의의 결정을 왜 뒤집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고 한다. 시간표를 이렇게 운영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며 부장 회의의 결정을 뒤집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의 의사결정 구조가 이제껏 말한 학교의 의사결정 구조를 닮았다. 국회에서 법안을 의결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서 그 법안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의 권위주의적 의사결정 구조를 학교에서 답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학교만큼은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3~4년쯤 전까지의 사례를 살펴보고, 그렇다면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의사결정 구조에는 '민주'가 들어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서 서글프다. 여전히 학교의 의사결정 구조에는 '민주'가 보이지 않는다. 오호통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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