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1년 남기고 올 8월에 명퇴하기로 작정했다. 애당초에는 그럴 생각이, 전혀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없었다. 정년 하는 그날까지 분필 가루 휘날리며 수업을 하려고 했다. 하긴 요즈음은 분필 질이 좋아져서 가루가 거의 날리지 않는다. 분필 가루 휘날리며 끝까지 수업하다 정년 퇴직하겠다는 꿈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이다.
왜 명퇴를 결심했냐고? 발단은 매우 미약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에 딱 들어맞는 경우라 하겠다. 아주 소소한 것이 발단이 되어, 명퇴라는 내 인생 최대로 창대한 사건을 불러일으켰으니 말이다.
연말이 되면 학교는 업무 분장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다음 해에 어떤 업무를 맡느냐에 따라 1년 동안의 심신의 고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인지라,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은 업무 분장에서 많은 배려를 받는다.
그런데 지난해, 기류가 묘하게 흘러갔다. 내가 속한 학생안전복지부 인원을 1명 줄이기로 했단다. 명목상으로는 학교업무 혁신 TF 팀의 결정이라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교장의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얼마 뒤 올해 업무 분장 안이 발표되었다. 내가 맡고 있던 업무가 다른 업무와 통폐합되면서 사라져 버렸다. 황당했다. 이런 경우가 발생할 예상이 되면 대개 업무 분장 안 발표 전에 교감 또는 교무부장이 미리 사정 이야기를 하고 양해를 구한다. 서운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했다. 학교 최연장자에게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오죽하면 그랬겠냐고 생각하고 스스로 마음을 달랬다. 그러면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학생안전복지부의 한 업무를 하겠다는 희망서를 제출했다.
시간이 흘러 2월 초가 되었다. 교감이 잠깐 보자고 했다. 교감실로 내려갔다. 이 교감실이라는 것도 참 우습다. 원래 음악과 교무실이었는데, 어찌어찌하더니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소회의실이라는 푯말이 붙고 거기에 회의 탁자와 교감 책상을 들여놓았다. 회의하는 시간은 얼마 없고 교감이 앉아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모두 교감실이라 부른다. 음악과 선생님들 각 학년부 사무실로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왜 음악과 교무실을 없애고 교감실을 만들어야 했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아무튼 교감실로 내려갔더니 교감이 이런저런 객쩍은 소리를 하고 난 뒤, 내가 희망한 업무를 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란 말인가. 그 업무를 희망한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왜 나에게 줄 수 없단 말인가. 정말 황당했다.
내 표정을 한참 살피던 교감은, 학교 사정상 내가 희망한 업무를 줄 수 없으니 다른 업무를 골라 보라고 했다. 학교 사정이 어떠하기에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세하게 말하기 곤란하단다. 다만 내가 희망한 업무에 또 다른 업무를 보태, 젊은 여교사에게 맡기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업무 분장 희망서를 다시 받아야 옳지 않냐고 했더니, 시간이 없어서 그럴 수 없노라고 했다. 울화나 울컥 치밀어 올랐다. 이런 식이면 업무 분장 희망서를 받는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냐고 따졌더니,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 달라고 한다. 계속 이야기해 보아야 평행선을 달릴 듯해서, 어차피 관리자들 마음대로 할 것 같으니 내가 양해하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말하고 교감실을 나왔다.
교감실을 나와서 곰곰 생각하니, 이젠 내가 학교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내가 맡고 있던 업무를 아무런 말없이 없애더니, 나만이 희망한 업무를 나에게 맡길 수 없다니... 교직 생활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교직 생활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최초의 순간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8월에 명퇴하면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퇴 이후의 삶을 상상해 보니, 서운함보다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홀가분했다. 그래서 별 고민 없이 명퇴 희망서를 제출하고 명퇴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명퇴할 결심을 하게 해 준 그 교감에게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든다.
현재의 유일한 걱정은 혹시라도 명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다. 여기저기 알아 보니,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는 한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어찌될지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매사에 조심하며 삼가는 마음으로 생활하며 명퇴를 기다리고 있다. 명퇴 이후 나의 쓸모를 어떻게,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말이다.
현재의 유일한 걱정은 혹시라도 명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는 한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어찌될지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매사에 조심하며 삼가는 마음으로 생활하며 명퇴를 기다리고 있다. 명퇴 이후 나의 쓸모를 어떻게,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