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 사는 / 살아갈 이야기
삶터를 옮긴다
올 7월, 삶의 터전을 옮기기로 했다. 지금 사는 곳에서 35년을 살았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고향이라 할 만하다.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아내를 만났고 딸이 태어났다. 아내도 이곳 사람이 아니다. 둘 다의 고향이 아닌 낯선 곳에서 터를 잡고 참 오래도 살았다.
8월에 명퇴할 예정이라, 7월에 이사하기로 한 터이다. 고향이나 다름없는 데서 그냥 계속 살지 왜 이사하냐고? 그래도 안 될 건 없지만, 이사해서 손녀딸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 손녀딸 봐 주러 이사한다고 하니, 주위에서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한다. 아이는 부모가 알아서 키우면 되는 거라며.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곁에서 도와주면 딸네 부부에게 크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이사하기로 했다. 또 손녀딸 돌보기가 너무 힘들지 않겠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손녀딸 돌보기는 물론 힘들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다. 가장 재미있는 일이다. 옆자리 동료가 손녀딸이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바이바이하려고 할 거라고 한다. 알고 있다. 모르는 바가 아니다. 애 봐 준 공은 없다는 사실도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러면 어떠랴. 지금 딸네 부부에게 우리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고 또 우리가 딸네를 도와줄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니, 이 아니 축복인가. 또 앞서에서도 말했듯이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은 손녀딸과 놀기이다.
그래서 7월에 삶의 터전을 옮긴다. 옮겨가는 곳은, 지금 사는 곳보다 약간 더 규모가 큰 지방 도시이다. 이사하기로 마음먹기 전부터 그곳이 마음에 들었는데, 마음먹은 뒤로 더더욱 마음에 든다. 가급적 그곳의 좋은 점만을 보려는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 좋은 점을 읊어 보자.
무엇보다 이사해서 지내기로 한 아파트 단지 환경이 마음에 쏙 든다. 숲세권 아파트다. 숲세권이라는 말은 도시 외곽이란 말과 동의어이다. 젊은이들이 생활하기에 좀 불편하겠으나 은퇴하고 지내기엔 더할 나위 없다. 식당, 병원, 편의점 등이 있는 상가 건물과는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지만, 아파트 현관을 나서서 10미터만 걸어가면 숲속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을 바로 만날 수 있다. 아직 그 길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왕복 약 40분의 숲속 산책길이 있다고 한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요소라 아니할 수 없다. 아내와 함께 느릿느릿 유유자적하게 걷는 풍경을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도로 환경도 마음에 든다. 자동차로 도시 여기저기를 다니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다. 제한 속도가 30km 미만이 지점이 곳곳에 있고, 좌회전을 하면 바로 갈 수 있다 싶은 곳에서는 좌회전이 되지 않아 한참을 돌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동료 한 명이 그곳에 다녀와서는 '사람 살 데가 못 된다.'라고 하기에, 내가 '사람 살기는 좋은데, 자동차가 살 데가 못 되겠지.'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또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어 자전거로 도시 이곳저곳으로 이동하기에도 아주 좋다. 이사 가면, 자전거를 장만할 생각이다. 유럽의 최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을 터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어떤 도시와 견주어도 자동차 아니라 사람을 배려하는 도시라 할 수 있을 성싶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호수도 마음에 드는 요소이다. 자연 호수인 줄 알았는데, 인공 호수라고 한다. 자연 호수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뭐 이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니,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호수를 중심으로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해 놓았다. 아이들이 모래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 아이들의 놀이터, 음악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 등을 잘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안성맞춤이다. 다만 어느 때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하다. 또 다른 콘셉트의 시민 휴식 공간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또 하나, 농산물 직거래 장터가 활성화되어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듯한데,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 직거래 장터를 운영하려고 시도는 했으나, 실패한 듯하다. 그런데 옮겨 가는 곳에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가 아주 활성화되어 있다. 싱싱한 농산물을 싼 값에 사 먹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참 좋은 점이라 하겠다. 생각해 보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지역 방송에서 옮겨 가는 곳의 농산물 직거래 성공 사례를 소개하면서, 우리 지역의 분발을 촉구하는 내용의 방송을 본 기억이 난다. 그만큼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35년을 살던 곳을 떠나려니 아쉽지 않냐고? 물론 아쉽다. 정든 곳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떠나기로 결정했으니, 정을 떼야 한다. 옮겨가기로 한 곳의 좋은 점을 자꾸 찾아서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곳에서 또 다른, 새로운 멋진 인생행로를 펼쳐나가야만 한다. 손녀딸과 딸네 부부와 아내와 내가 따로 또 같이 함께 그려 나갈 행복한 삶의 지도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