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국어 교사이다. 국어는 언어의 일종이므로 국어 교육을 할 때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네 가지 영역의 능력이 골고루 발달할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함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등학교 국어 교육에서 학습자들의 이 네 가지 영역의 능력을 균형 있게 발달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는지 좀 의심스럽다.
나는 197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당시의 국어 수업은 교사가 열심히 설명하면 학생은 열심히 받아 적는 게 일반적이었다. 요령 있게 설명을 잘하면 능력 있는, 뛰어난 교사로 평가받는 시대였다. '밑줄 쫙'을 외치던 학원 강사가 일세를 풍미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의 고등학교 국어 수업 풍경은 어떨까?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내가 보기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40여 년 전에 비해 조금 학생들이 학습 활동을 할 여지가 늘어났지만, 큰 틀에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교사가 주도하는 설명 위주의 수업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 교육이 입시 종속적이기 때문이다. 입시라는 거대한 블랙홀이 40여 년 전의 교실 풍경을 지금까지 유지시키고 있고, 교사들 또한 입시를 핑계로 변화를 꾀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교사 주도 설명 위주의 수업은 언어의 네 가지 기능 중 어떤 기능을 발달시킬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네 가지 중 그 어떤 기능도 발달시키기 매우 어렵다. 교사가 설명하고 학생들은 열심히 들으니, 듣기 능력은 향상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듣기는 말하기와 불가분의 관계라 할 수 있다. 들었으면 말을 해야 하고 말을 했으면 들어야 한다. 교사 설명 위주의 수업에서는 말할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교사의 설명을 일방적으로 듣다가, 교사가 "알겠죠?"라고 물으면 "네."하고 대답하는 게 고작이다.
교사가 주도하는 설명 위주의 수업은 입시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교육의 본질에 다가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나도 5~6년 전까지 교사 주도의 수업을 했다. 그러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국어 교사들은 어떻게 수업하는지 찾아보았다. 참신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제대로 된 수업을 하는 교사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중에서 내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방법은 '쓰기' 수업이었다. '읽기'는 특별히 강조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지문 읽고 문제 풀기를 통해서 늘 연마하고 있는 영역이라 할 수 있고, '말하기', '듣기'는 내가 접근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쓰기' 수업을 한번 해 보자고 마음먹고, 시작해 보았다. 2018년의 일이다.
쓰기 수업을 하기 위해 맨 먼저, 함께 학년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의 양해를 구해야 했다. 그 당시 1학년 국어 수업을 나를 포함해서 3명의 교사가 맡았다. 일주일 5시간의 수업 중, 쓰기 수업을 위해 1시간을 할애해야 했기에 교과 진도를 나가는 데 4시간만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함께 수업하는 교사들의 동의를 얻어 가르칠 단원을 조정해야만 했다. 다행히 함께 수업하는 교사들이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쓰기 수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어떤 종류의 쓰기 수업이 있는지 찾아보았더니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쓰기 수업이 있었다. 크게 문학적 글쓰기(시, 소설, 수필 등)와 비문학적 글쓰기(논리적 글쓰기, 건의문 쓰기, 토론 대본 쓰기 등)로 나눌 수 있었다. 비문학적 글쓰기 가르치기에 좀더 자신이 있었던 터라, 비문학적 글쓰기 수업을 하기로 하고 자료를 찾아보던 중, '서평 쓰기'라는 쓰기 수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로 이거다 싶어, 여기저기에서 자료를 뒤지며 서평 쓰기 수업을 준비했다. 서평을 쓰려면 우선 책을 읽어야 하고 책을 읽는 과정에서 학급 구성원들과 의견을 주고받을 수도 있으며 최종적으로 글을 써야 하기에 '읽기', '말하기', '듣기', '쓰기'의 4가지 영역의 기능을 골고루 향상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쓰기 수업은 그 주의 맨 마지막 시간에 하기로 했다.
어느 학급의 첫 쓰기 수업 시간. 서평 쓰기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설명을 했다. 책을 읽고 토론한 다음 그 책에 대한 평을 쓰는 수업이라고 설명하며 매주 1시간, 한 학기 내내 진행한다고 했더니, 아이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들에게 그런 시간이 온전히 주어진 적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내 말을 듣고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을 성싶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내가 안내하는 대로 잘 따라오면 큰 문제없이 서평 쓰기 수업에 성공적으로 임할 수 있으리라고 독려하며 수업을 진행했다.
우선 아이들에게 주제를 제시하고 마음에 드는 주제를 선택하라고 했다. 환경, 인권, 여성, 교육, 의료, IT 등의 주제를 제시했다. 하나의 주제당, 3~5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같은 주제를 선택한 학생들에게 함께 읽을 책을 선정해 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인터넷 검색도 하고 나에게 질문도 하면서 함께 읽고 토론할 책을 선정했다. 읽을 책을 선정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4월부터 매주 1시간 수업 시간에 책을 읽혔다. 모르는 구절이 나오면 모둠원에게 묻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나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모둠끼리 빙 둘러앉아 함께 책을 읽었다. 학생들이 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나누는 경우도 없지 않고 잘 나가다가 갑자기 안드로메다로 빠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4월에 함께 읽기를 마무리했다. 그래야 중간고사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읽지 못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읽도록 안내하고 독려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5월 둘째 주부터 서평 쓰기 준비를 시작했다. 서평을 쓰는 기본 틀을 제공해 주고 다른 학교 학생들이 쓴 서평을 인쇄해서 나누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끊임없이 독려해야 했다. 아니 닦달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학생들이 글을 쓰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부 과목별 세부능력란에 서평 쓰기 관련 활동을 기록해 줄 예정이라는 말도 빼먹지 않는다. 학생들의 글쓰기를 추동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6월 둘째 주까지 서평 쓰기 준비를 시킨 다음 잠시 숨을 골랐다. 7월 초에 기말고사가 있기 때문이다. 기말고사 끝나고 여름방학까지 약 2주 정도의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을 이용해서 서평을 완성하도록 해야 한다. 이때는 매주 1시간만 서평 쓰기를 하는 게 아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서평의 질을 담보할 수 있다. 학생들이 쓴 서평을 읽고 몇 번이고 피드백을 해 주었다. 이때 중요한 건 학생들이 쓴 글을 평가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급적 학생들이 쓴 그대로 인정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글을 썼는지 학생들의 생각을 물어보는 게 피드백의 핵심이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한번 자신이 쓴 글을 읽어 보고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고치라고 했다. 그러면 꽤 괜찮은 서평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책 한 권을 읽고 서평을 쓰는 데 한 학기가 오롯이 필요했다. 그런데 요즈음 염려되는 게 있다. 교과를 막론하고 독후감 수행평가를 하는 걸 종종 본다. 교과와 관련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게 하고, 수행평가로 점수를 준 다음 과세특에 적어 준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문제는 독후감을 쓰는 과정을 관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담당 교사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련만, 자꾸 걱정이 되는 건 아마 나이 탓이리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한발 한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