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명예퇴직 신청서를 제출하고서 생긴 일
정년을 1년 앞두고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퇴직 신청이 받아들여졌을 때,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몇 가지 있다. 학생들을 모아 놓고 하는 퇴임식, 퇴임하면 정부에서 으레껏 주는 훈장 수령, 동료 직원들과 함께하는 회식 등이 그것이다. 하기 싫은 이유는 간단하고도 명백하다.
학생들을 모아 놓고 하는 퇴임식이 하기 싫은 까닭은 괜히 학생들을 동원하기 싫어서이다. 8월 31일 목요일이 퇴임 날짜다. 만약 퇴임식을 한다면 학생들의 수업 시간을 빼서 해야 한다. 학생들의 수업 시간을 빼앗는 것도 싫지만 더 싫은 것은 나를 잘 모르는 학생들까지 멀뚱히 나와 서 있어야 하는 부분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도 교육의 일부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럴 수도 있을 터이다. 그렇지만 내 생각도 아주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틀리지 않는다면 당사자의 바람대로 해 주는 게 마땅하지 않겠는가.
학생들을 모아 놓고 퇴임하는 선배 교사들의 퇴임식 진행을 여러 번 해 보았다. 퇴임하는 교사에게 직접 배웠거나 어떤 관계를 형성한 학생이라면 퇴임식에 참석하는 게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일인 듯 싶었다. 퇴임식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표정을 살펴 보면, '도대체 나는 왜 이 자리에 서 있지?'라는 표정인 학생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이런 지경이라면 퇴임하는 교사에게도 좋을 게 뭐 있겠는가. 그래서 학생들을 모아 놓고 하는 퇴임식이 하기 싫다.
퇴임하는 교사에게 정부에서 훈장을 준다. 근무 연수에 따라 청조근정훈장에서 옥조근정훈장까지 있다고 한다. 훈장은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 단순히 근무 연수를 채웠다고 훈장을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냥 관행이니까 훈장을 주고 관행이라 훈장을 받는다. 이런 풍토는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훈장을 받지 않으려면 사유서 비슷한 것을 써야 한다고 들었다. 어느 대학 교수가 퇴임하면서 현재의 대통령이 주는 훈장을 받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는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 들었다. 대통령이 누구든 나같이 특별한 공적 없이 퇴임하는 교사에게 훈장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유서에 무어라고 써야 할지 고민이기는 하다. 하긴, 훈장을 받으려면 공적 조서라는 걸 써야 한다. 우리 학교의 경우 퇴임하는 당사자가 자기 자신의 공적 조서를 써서 업무 담당 교사에게 보내야 한다고 한다. 이 또한 우습다. 자신이 훈장을 받을 만한 공적이 있다고 스스로 써야 하다니 말이다. 공적 조서 내용이 부실하다고 훈장을 안 줄 것도 아닌 데 말이다. 그냥 주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고 싶다. 마찬가지로 훈장을 받고 싶지 않은 경우도 사유서 따위 필요 없이 그냥 안 주면 안 되는지 묻고 싶다. 꼭 사유서를 써야 훈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인가.
동료 직원들과 함께하는 회식도 하고 싶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뭘 그런 것까지 안 하려고 하느냐고, 좀 유난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무리도 아니다. 그동안 함께 지낸 동료들과 저녁 먹으며 가볍게 술 한잔하는 것도 의미가 없진 않으리라. 하지만 우리 학교 직원 중에는 나와 한마디 말도 섞지 않은 사람도 꽤 있다. 혹시 그 사람들이 나로 인해 억지로 회식에 참석해야 하는 부담감을 가질 수도 있겠기에 직원 회식도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나 또한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직원 전체 회식에는 참여하지를 않았다. 대개 직원 전체 회식에서는 술 마시고 큰 소리로 떠들며 되지도 않는 소리를 마구 지껄이는 사람들이 많아서이다. 그러니 내 퇴임에 즈음하여 직원 전체 회식을 하는 게 달갑기만 하겠는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학교 친목회장을 맡고 있는 교사가 나에게 왔다. 오더니, 8월 31일에 퇴임식을 하고, 전체 직원이 사진을 함께 찍고, 직원 회식을 한다고 한다. 누가 그렇게 정했냐고 물으니 교감, 교무부장과 이야기를 했는데 교감 왈,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단다. 또 교무부장은 이미 나하고 다 이야기가 되었다고 했단다. 교감 말은 그렇다고 치고, 교무부장 말은 웬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란 말인가.
곰곰 생각해 보니, 한 달 전쯤 남교사 여남은 명이 모인 술자리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술이 몇 순배 돌자, 교무부장이 내 옆자리로 왔다. 와서는, 퇴임식을 어떻게 하면 좋겠냔다. 퇴임식 자체를 하지 말자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교내 소통 메신저를 이용해 직원들에게 간단히 한마디 남기고 표표히 사라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어찌 그렇게 하느냐며 퇴임식은 학생들은 빼고 직원들만 모여 간단하게 하고 단체 사진 한 장 찍고 저녁에 회식하자고 했다. 계속 이야기하기에, 술자리인 데다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나와 관련한 이야기를 교무부장과 둘이 속닥이는 게 마뜩지 않아서 대충 알았다고 하며 다음에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고 했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 이 사달이 났다. 퇴임식은 강당에서 학생들 모아 놓고 하고, 직원들 하고 단체 사진 찍고, 저녁에 직원 전체 회식을 하겠다고 한다. 이 또한 친목회장을 맡은 교사의 전언이지 교무부장이나 교감이 와서 한 이야기가 아니다. 퇴임이라고 하는 매우 공식적인 행사의 절차를 몇몇이 모인 지극히 개인적인 술자리에서 몇 마디 나눈 말에 근거하여 추진하려고 하는 게 매우 이상했다. 친목회장을 맡은 교사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퇴임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단체 사진 찍는 것도 직원 전체 회식도 생략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전했다. 친목회장을 맡은 교사가 알았다며, 내 생각을 교무부장과 교감에게 전달하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났건만, 학교 측에서 아무런 말이 없다.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알 도리가 없다. 학교 측이 방침을 정했으니 그대로 따르라는 압박인가? 퇴임하는 당사자가 교무부장이나 교감을 찾아가 먼저 말을 꺼내야 하는 건가?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속절없이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마음이 좀 언짢다. 내 생각대로 하고 싶은데, 그랬다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학교에서 하자는 대로 하자니, 퇴임을 앞두고 내가 하기 싫은 일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생각하지도 못한 암초를 만난 기분이다. 학교에서 좋은 해결방안을 제시하리라 믿고 속절없이 기다리기로 했다. 뭐 어쩌겠는가. 처분을 기다릴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