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시험 중에 '대기'해 본 적 있나요?

by 꿈강

혹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볼 때, '대기'해 본 적이 있는가? 시험 중에 대기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듯싶다. '대기'의 의미를 사전에서 뒤져 보니, '때나 기회를 기다림'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대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라 할 수 있다.


2년 전에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로 옮겨 왔다. 전에 근무하던 학교와 같은 지역 내에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이다. 예전에는 인문계 고등학교라 불렀는데, 언제부터인지 공식적인 명칭이 일반계 고등학교로 바뀌었다. 그해 2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1학기 중간고사가 가까워지자 평가 담당 교사가 담임교사들에게 '중간고사 학급별 대기 인원 현황'이라는 파일을 보내고 확인을 요청했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로 옮겨 오기 직전 해에, 평가 업무를 담당했던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고사 시험을 치르는 중에 대기하는 인원이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파일을 열어 보았다. 날짜별로 해당 교시에 시험을 치르는 학생, 자습을 하는 학생, 대기를 하는 학생이 구분되어 있었다. 찬찬히 파일을 살펴보고 나서 '대기'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랬다.


1교시에 수학, 2교시에 정치와 법, 3교시에 확률과 통계, 점심 먹고 4교시에 화법과 작문 시험이 있다고 가정하자. 또 A 학생은 수학, 화법과 작문을 선택했고 B 학생은 수학만, C 학생은 수학, 정치와 법을 선택했다고 가정하자.


1교시에는 세 학생 모두 수학 시험을 치르면 되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2교시. A 학생은 4교시 화법과 작문 시험을 치러야 하기에, 2교시와 3교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학생이 바로 '대기' 인원이다. B 학생은 수학만 선택했으므로 그날 시험이 없다. 이 학생은 2교시부터 다음 날 시험공부를 할 수 있다. '자습' 인원이다. C 학생은 2교시 정치와 법을 선택했으므로 2교시에 정치와 법 시험을 치른다. 3교시에 A 학생은 여전히 아무것도 못하고 '대기'해야 하고, 그날 시험이 없는 B 학생과 C 학생은 다음 날 시험공부를 위한 '자습'을 할 수 있다.


이렇게 같은 교실 안에 시험을 치르는 학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대기' 학생, 다음 날 시험공부를 위해 자습하는 학생이 혼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험 감독을 하는 일도 매우 어렵다. 시험 응시 학생과 대기 학생과 자습 학생이 그룹별로 모여 앉아 있지도 않고, 교실 안 여기저기에 흩어져 앉아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러했다.


평가 담당 교사와 담당 부장 교사에게 물었다. 왜 시험 중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대기'를 하게 하냐고. 그랬더니 '형평성'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만일 D 학생이 수학, 정치와 법, 확률과 통계, 화법과 작문을 모두 선택했다면, A 학생과 D 학생 사이의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였다. A 학생이 '대기'를 하지 않고 2시간 동안 화법과 작문 시험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르면 D 학생이 불리하다는 논리였다.


만일 다음 날 문학 시험을 A, B 학생 모두가 선택했을 경우 아무것도 하지 못한 A 학생과 2시간 동안 문학 시험공부를 할 수 있는 B 학생 사이의 형평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랬더니 하루 지난 뒤의 일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나는 도무지 뭐가 다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시험을 치르는 학생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었다.


지역 내 다른 고등학교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했다. 지역 내 일반계 고등학교 두 곳의 상황을 알아보았더니, '대기'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되물었다. 다시 평가 담당 교사와 담당 부장 교사에게 가서, 다른 학교의 상황을 전하고 우리 학교도 '대기'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했다.


2년 전 이야기이다. 지금 현재 상황은 어떠냐고?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여전히 '학급별 대기 인원 현황'이라는 파일이 담임교사들에게 배포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은, 내가 이런 문제 제기를 한 다음 소위 시험 중 '대기'에 관한 논의를 학교 차원에서 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모든 고등학교에는 '학업성적관리위원회'라는 조직이 있다. 학생들의 평가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을 논의하는 조직이다. 지역 내 다른 학교의 상황까지 전하며 문제 제기를 했다면 한번쯤 학업성적관리위원회에서 논의를 하는 게 상식에 들어맞지 않을까 싶다. 그냥 관행적으로 '대기'를 했으니 '대기'하는 게 옳다며 아무런 논의도 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는 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중간고사에서도, 기말고사에서도 우리 학교 학생들 중에는 여전히 '대기' 인원이 있다. 운 좋게, 단 1시간도 '대기'하지 않는 학생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런 상황이 '형평성'에 부합하는지도 몹시 궁금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궁금한 점은 시험 중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며 그냥 '대기'하라고 하는 게 마땅한가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학교처럼 '대기'를 하도록 하는 게 옳고, 지역 내 다른 학교들이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이런 상황을 접하고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학교가 이처럼 요지부동인 걸 보니 무언가 내가 알지 못하는 확고한 근거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제는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다른 학교에서 옮겨온 교사들이 이 상황을 접하고 처음에 좀 갸우뚱하다가 아무런 말이 없는 걸 보면, 우리 학교가 잘못하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른 학교도 옳고 우리 학교도 옳은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다른 지역의 학교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한데,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답답할 뿐이다.


다만, 시험을 치르고 있는 학생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고, 다음 시험 볼 때까지 얌전히 '대기'하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는 생각의 불뚝거림은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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