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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보낸 한평생

우리나라 교육을 바꾸기 위해 지금 당장 교사가 할 수 있는 일

by 꿈강

우연히 유튜브에서 어느 대학 교수의 강연을 보게 되었다. 그 교수의 이야기는 대략 이러했다. 경쟁 교육은 야만이고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고도의 경쟁 교육을 하는 곳은 없다. 12년 동안 우리나라 교육을 받으면 잠재적 파시스트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교육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그러면서 대학 입시를 없애고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석차를 매기는 행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쟁 교육은 야만이니 교육에서 경쟁을 없애야 한다는 말로 읽혔다.


30년 넘게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에 근무하다 퇴직했다. '경쟁 교육은 야만이고 12년 동안 우리나라 교육을 받으면 잠재적 파시스트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그 교수의 말에 백 퍼센트 동의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교육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는 말에는 백 퍼센트 동의한다. 고등학교에만 근무한 탓에 초등학교 교육과 중학교 교육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으니, 고등학교 교육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는 말에 백 퍼센트 동의한다고 해야 좀 더 마땅하리라 생각한다.


그 교수는 대학 입시를 없애자고 했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의 유럽식 모델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 나라에는 대학 입시라는 건 없고 고등학교 졸업 시험만 있다고 했다. 독일에는 '아비투어'라는 졸업 시험이 있는데 대략 응시생의 90% 정도가 합격하는 그 시험에 합격하면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학과에, 원하는 때에 진학할 수가 있다고 했다. 독일의 대학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서열이 없기 때문에 졸업 시험에 합격만 하면 아무 대학, 아무 학과에 진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대학 입시를 없애고 독일과 같은 제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대학 평준화가 선행되어야 할 터이다. 그러지 않은 상태에서 독일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면 우리나라 모든 학생들은 일단 서울대에 진학하겠다고 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평준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당장 논의를 시작한다 하더라고 반세기는 족히 걸릴 성싶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대학 입시를 지금 당장 없앨 수는 없는 일이다.


또 대학 평준화나 대학 입시 없애기 등은 고등학교 교사가 어찌해 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는 고등학교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대학 평준화나 대학 입시 없애기 등은 거시적이고 제도적인 문제이니 교사 개인이 관여할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러니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을 바꾸기 위해 교사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교사 개인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수업을 바꾸는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 교실에서는 대부분 '강의식 일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자신들의 자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고득점을 올려 명문대에 진학하기를 바라고 있고 대부분의 고등학교들은 이런 학부모의 열망을 외면하지 못한다. 학생들이 수능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하기 위해서 강의식 일제 수업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강의식 일제 수업이 수능이 효과적인지는 따지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일반계 고등학교가 학생들의 수능 고득점을 위해 그런 형태의 수업을 하는 건 정말 쓸데없는 짓이다. 수능에서 고득점을 올린 다음 정시 전형을 통해 명문대에 진학하는 경우는 주로 특목고나 서울 강남 소재의 일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고등학교에서 최근 5년 동안 수능 고득점을 발판으로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고등학교에서도 한 해에 열 명 안팎의 학생들이 명문대에 진학했다. 그들은 모두 수능 성적과 아무 상관이 없는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했다. 그런데도 그 학교의 수업 방식은 강의식 일제 수업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누구나 두루 알다시피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이 매우 중요하다. 강의식 일제 수업을 하면서 생활기록부의 기록을 알차게 하기는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니 생활기록부의 기록이 왜곡되고 부풀려지기 일쑤이다. 같이 근무했던 어떤 교사가 생활기록부 기록을 끝낸 후 '우리는 모두 위대한 소설가야.'라고 자조적으로 내뱉은 말이 아직도 귀에서 맴돈다.


왜곡과 과장 없이 생활기록부의 기록을 알차게 하기 위해서는 수업을 바꾸어야 한다. 강의식 일제 수업에서 학생 활동 중심 수업으로 변화해야 한다. 교실 수업 현장에서 교사는 말을 아끼고 학생들이 말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교사들이 수업을 바꾸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한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의 경우에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수능 고득점을 발판으로 명문대에 진학하는 학생이 없으니 말이다. 또 내가 근무했던 학교의 경우와 유사한 일반계 고등학교가 전국적으로 절반은 될 터이다. 아무리 낮추어 잡아도 말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느 대학 교수의 진단처럼, 잠재적 파시스트를 길러 내는 교육이라고 생각지는 않겠지만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을 바꾸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터이다. 그 교수의 일갈처럼 궁극적으로는 대학 입시를 없애고 고등학교에서 석차를 매기는 행위를 없애 야만적인 경쟁 교육을 없애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고등학교 교사들이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을 바꾸기 위해 고등학교 교사들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수업을 바꾸는 일이다. 강의식 일제 수업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 또한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할 수는 있다. 교사 개인 개인이, 수업을 바꾸자고 마음먹는 순간 수업을 바꿀 수 있다.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수업을 바꾸어야 교육을 바꿀 수 있다. 수업을 바꾸지 않으면, 다른 그 어떤 것을 바꾸어도 교육이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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