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2025. 03. 24.(월)
나흘 만에 손녀딸을 보러 간다. 지난 금요일은 사위가 쉬는 날이었고 주말은 딸네와 따로 지냈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하다. 딸네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사위가 내린다. 손녀딸이 벌써 깨어 있단다. 아직 여섯 시 반이 채 되지 않았는데……. 어제 일찍 잠이 든 모양이다.
부리나케 아내와 함께 딸네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내미는 출근 준비를 하고 있고 손녀딸은 안방 침대에 있다. 아내가 손녀딸을 부르니, 손녀딸은 안방 침대에서 자는 척한다. 아내가 다가가 뽀뽀를 하며 안고 나왔다. 딸내미도 이내 출근길에 올랐다. 손녀딸은 제 엄마에게 아주 쿨하게 바이바이를 하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장난감 반지 중 하나를 건넸다. 제 엄마에게 자기의 마음을 담아 건네는 듯했다.
오늘은 아내가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에 가는 날이다. 늦어도 8시 10분쯤에는 딸네 집을 나서야 한다. 이럴 때 내가 제일 걱정하는 문제는 손녀딸 머리 땋는 일이다. 오늘은 손녀딸이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그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었다. 아내가 손녀딸 머리를 땋아 주고 가면 되기 때문이다. 나도 손녀딸 머리 땋기를 연습해야 할까 보다. 아니, 머리를 땋지는 못하더라도 묶기라도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마저도 자신이 없다. 할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해 내려면, 아내에게 개인 과외라도 받아야 할 형편이다.
손녀딸 아침밥 다 먹이고 세수와 양치질, 옷 입히기까지 다 마치고 아내는 딸네 집을 나섰다. 손녀딸은 할머니를 쿨하게 배웅했다. 이윽고 손녀딸과 나만 딸네 집에 남았다. 손녀딸이 일찍 일어난 탓에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다 마쳤는데도 시간이 여유롭다.
보고 있던 애니메이션을 마저 보여주고 있는데 손녀딸이 "나 오늘 꿀잼이야?"라고 묻는다. 손녀딸은, 월요일과 수요일 네 시에서 다섯 시까지 어린이집 보육이 끝나고 어린이집과 같은 건물에서 발레와 방송 댄스를 배운다. 어린이집과 연계한 활동인데 이를 '꿀잼 프로그램'이라고 부른다. 오늘 발레 하는 날이라고 했더니, 손녀딸은 "그럼 다섯 시에 데리라 와."라고 하더니 "나 다섯 살인데."라고 한다. '다섯 시'와 '다섯 살'에 똑같은 말이 들어있는 게 신기했나 보다.
그러는 사이 어린이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되어 딸네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손녀딸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한동안 부끄럽다며 인사를 안 하더니, 이제 제법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그 아주머니가 "어린이집 가니? 옷차림이 봄이네. 참 예쁘다."라고 하자 손녀딸은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손녀딸이 한층 자란 듯해서 마음이 흐뭇했다.
어린이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손녀딸은 잠시도 쉬지 않고 뭐라고 종알종알했다. 운전을 하느라 뭐라고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제 할머니와 차 안에서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던 '개굴 폴짝이'에 관한 이야기인 듯했다. 할머니가 있었으면 손녀딸이 더 재미있었을 테지만, 할머니가 없어도 나름 대로의 재미를 찾아내는 우리 손녀딸이다.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실내화를 갈아 신는데, 한사코 실외화를 벗지 않고 실내화를 꺼내려한다. 신발장 앞, 마루를 깔아놓은 곳에서 실외화를 벗고 실내화를 꺼내 신은 다음 실외화를 신발장에 넣어야 하는데 우리 손녀딸은 그러기 싫은 모양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실외화를 신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지라, 실외화를 신은 채 무릎걸음으로 총총 가서 실내화를 꺼내 신는다. 그게 재미있나 보다. 그렇게 실내화 갈아 신기에 성공한 손녀딸은 내 볼에 뽀뽀를 하고 나서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