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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50> 2025. 03. 27.(목)

by 꿈강

어제 하원 때 일이다. 손녀딸 신발을 갈아 신기려고 신발장을 열었는데 어럽쇼, 손녀딸 실외화가 없다. 이 어린이집에 다닌 지 일 년이 넘었지만 단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참 난감했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멍했다. 실외화로 갈아 신고 어린이집 옆 놀이터에서 놀 생각에 부풀어 있던 손녀딸은 울먹울먹하더니 기어이 울음을 터트렸다.


울음이 터진 손녀딸을 얼른 안아 들고 다독이면서 어린이집 선생님을 찾아 상황을 이야기했다. 얼마 후 손녀딸 담임 선생님이 내려왔다. 그 선생님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그 선생님이라 해서 뾰족한 수가 있을 리는 만무했다. 울고 있는 손녀딸을 한동안 내려다보던 선생님은 다른 반 신발장을 죄다 열어 보자고 했다. 그 외의 어떤 방법도 생각나지 않아 그러자고 했다. 그러나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데 처음으로 바로 옆 반 신발장을 열었을 때, 손녀딸 신발이 떡하니 거기에 있었다. 손녀딸 담임 선생님은, 누군가 무심코 신발을 꺼냈다가 자기 것이 아니니 그냥 아무 데나 넣어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녀딸 신발이 놓여 있던 자리는, 그 자리의 주인공이 다른 반으로 옮긴 터라 늘 비어 있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듣고 보니 그럴 법한 추론이었다.


어쨌거나 신발을 찾아서 다행이었다. 손녀딸도 곧 울음을 뚝 그치고 놀이터로 갔다. 작년부터 같은 반이었던 '하○이'가 같이 놀자며 다가왔다. 둘은 곧잘 어울려 놀았지만, 좀 아슬아슬하기도 했다. 서로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놀이를 하자고 했다. '하○이'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자고 하면 그 놀이를 아주 잠깐 하고 나서 손녀딸이 그 아이에게 '우리 이제 얼음 땡 하자.'라고 하는 식이었다. 그 아이가 손녀딸에게 '술래잡기 하자'라고 말하면 잠시 후 손녀딸이 '달리기 하자.'라고 했다. 둘은 서로의 요구를 잠깐 들어주다가 이내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를 하자고 했다. 저러다가 둘 중 하나가 삐져서 '너랑 안 놀아!'라고 선언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내 걱정과는 달리 둘은 재미있게 잘 놀았다. 어른들은 알 수 없는, 다섯 살 아이들끼리의 암묵적인 약속 같은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와 놀이를 마치고 딸네 집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타러 가면서 사달이 시작되었다. 손녀딸이 간식 뭐 가지고 왔냐고 묻기에, 달고나와 달고나 사탕이 있다고 대답했다. 요즘 손녀딸이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었기에, 대답하는 내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뿌듯함이 묻어 나왔다. 그런데 손녀딸이 느닷없이 "쿠키는 안 가져왔어?"라고 물었다.


방심하고 있다가 결정타를 한 방 맞은 권투 선수처럼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왔다. 요즘 손녀딸이 쿠키를 찾은 적이 없기에 당연히 쿠키를 가져오지 않았다. 네가 쿠키를 가져오라고 하지 않아서, 안 가져왔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손녀딸은 눈물바람이었다. 왜 쿠키를 안 가져왔냐며 울고불고 난리다. 내일 쿠키를 가져다주겠다며 어찌어찌 차에 태웠다.


차에 타고서도 손녀딸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더 심해졌다. 당장 쿠키를 내놓으란다. 할머니 집에 쿠키가 있으니 내일 가져다주겠다니까, 지금 당장 할머니 집으로 가자고 한다. 손녀딸 말을 들어주어야 하나 생각했다가 너무 오냐오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은 안 된다며 내일 가져다주겠다면서 너희 집으로 갈 거라고 말하고 차를 몰았다.


그러자 손녀딸 특유의 떼쓰기가 시작되었다. 젤리 카(내가 타는 경차를 손녀딸이 이렇게 부른다)가 너무 작다, 할아버지는 왜 운전만 하냐, 할아버지하고는 안 놀아 줄 거다, 할아버지 집에는 안 갈 거다,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와도 인사도 안 할 거다, 오늘 할아버지는 내 마음을 몰라 준다, 할아버지가 싫다 등등. 울음을 그치지 않고 이런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게 우리 손녀딸의 전매특허 떼쓰기다.


이럴 때는 무시하는 게 최선의 정책이다. 손녀딸이 뭐라건, '오늘 쿠키는 안 돼, 그렇게 떼쓰면 안 돼.'라고 좀 단호하게 말하고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 달래주려고 하거나 손녀딸의 말에 대꾸를 하면 상황이 더욱 악화일로를 걷는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딸네 집 지하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손녀딸은 잠시도 쉬지 않고 울면서 떼를 썼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서 내가 먼저 차에서 내려 뒤에 있는 손녀딸을 내려주려는데, 찰칵 소리가 나더니 뒷문이 열리지 않는다. 안에서 잠근 것이다. 어이가 없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차 앞문을 열고 손녀딸에게 안 내릴 거냐고 물었다. 최대한 무덤덤하게 물었다. 잠시 가만히 있던 손녀딸은, 앞문으로 내리겠다며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를 낑낑대며 비집고 나왔다. 여전히 눈물바람이다.


가만히 손녀딸을 안았다. 앙앙 울면서도 나에게 안겨 온다. 화가 좀 풀린 게다. 우리 손녀딸은 화가 났을 때,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화를 삭이는 것 같다. 그때는 가만 내버려두는 게,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가만 내버려 두었더니 어느 정도 화를 삭이고 내게 안겨 오지 않는가.


내게 안겨 울면서 계속 엄마를 찾았다. 딸네 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퇴근해 있던 딸내미가 눈이 호동그래져 손녀딸을 받아 안았다. 딸내미가 손녀딸을 달래면서 왜 그렇게 속상하냐고 물었다. 손녀딸이 종알종알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딸내미가 그중에서 제일 너를 속상하게 한 게 무어냐고 재차 묻자, 손녀딸은 '쿠키'를 안 가져온 것이라고 답했다.


그게 진짜 가장 큰 이유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손녀딸은 제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화를 완전히 풀고 안정을 되찾았다. 손녀딸이 왜 그렇게 화를 내며 울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법은 어느 정도 나왔다고 할 수도 있다.


손녀딸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손녀딸이 계속 울면서 뭐라고 종알거릴 때 거기에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달래려고 하거나 그만하라고 윽박지르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 뭐라고 계속 종알거리면서 화를 가라앉힐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좋을 듯하다. '할아버지 싫어. 할아버지는 내 마음을 몰라 줘.'라는 말을 반복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손녀딸을 질책해서는 안 될 듯하다. 마음이 상해 있는 손녀딸이 그 정도 이야기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마음을 풀겠는가.


그날 그 일은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다고 해도 좋을 터이다. 내가 딸네 집을 나오려고 할 때, 딸내미가 손녀딸에게 할아버지한테 인사하라고 하자 손녀딸은 공손하게 배꼽인사를 했다. 또 내가 볼에 뽀뽀해 달라고 하자 냉큼 달려와 나에게 뽀뽀를 해 주었으니 말이다. 이게 다 손녀딸이 울면서 끊임없이 종알댈 때, 그냥 내버려둔 덕분이 아닐까 싶다. 물론 딸내미가 손녀딸을 꼭 안아 주며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도 한몫 단단히 했을 터이지만 말이다.


아, 그리고 '손녀딸 신발 잠시 실종 사건'은 아내가 일으킨 것으로 밝혀졌다. 그날 아침 실내화로 갈아 신은 손녀딸이 빨리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서두르는 바람에 내가 손녀딸을 어린이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러는 사이 아내가 손녀딸 실외화를 신발장에 집어넣었는데, 눈이 침침한 탓에 손녀딸 옆 반 신발장에 신발을 넣은 것이었다. 더욱이 손녀딸의 이름과 그 아이의 이름은 끝 글자 초성만 달랐으니, 그럴 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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