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2025. 04. 07.(월)
사위가 감기 몸살이 심해 딸내미와 손녀딸이 토요일에 우리 집에 와서 자고 일요일 오후 3시경까지 우리 부부와 함께 지낸 다음 맞은 월요일이다. 오늘은 딸네 집으로 가져가야 하는 게 제법 많다. 주로 손녀딸 옷가지들이다. 야무지게 챙겨 들고 딸네 집으로 향했다.
6시 30분이 채 안 되어 딸네 집에 도착했는데, 사위는 벌써 출근하고 집에 없었다. 몸 상태가 조금은 나아진 듯하다. 다행이다. 딸내미는 제 점심 도시락을 싸는 등 출근 준비에 여념이 없고 손녀딸을 제 방 침대에서 콜콜 자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손녀딸이 뭐라 옹알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앗, 벌써 깨면 안 된다. 너무 이른 시간이다. 아내가 후다닥 달려가 손녀딸 옆에 누웠다. 나도 뒤따라 들어가 보니 아내가 손녀딸을 토닥이고 있다. 아내를 내보내고 내가 손녀딸 옆에 누워 손녀딸을 토닥토닥했다. 아내가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딸내미가 출근하는 소리를 듣고 깜빡 잠이 든 모양이다. 거실로 나와 시계를 보니 7시 30분쯤 되었다. 아내 말로는, 내가 가볍게 코까지 골며 잤다고 한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데 뭐가 그리 피곤한지 모르겠다.
8시가 다 되었는데도 손녀딸은 일어날 기미가 없다. 깨워야 한다. 텔레비전을 켰다. 손녀딸이 좋아하는 '넘버 블록스'라는 애니메이션을 찾아 틀어놓았다. 문득 일요일에 우리 집에서 손녀딸이 제 엄마와 연산 놀이 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5 더하기 2', '3 더하기 3' 같은 것은 물론이고 '19 빼기 10', '13 빼기 2'와 같은 제법 어려워 보이는 연산도 손녀딸은 막힘없이 척척 해냈다. 물론 아직 '13 빼기 5' 같은 연산은 어려워했지만 말이다. 할아버지 눈에는 신통방통하기만 했다. 우리 나이로 다섯 살인데 이 정도면 매우 놀랍지 않은가. 우리 집안은 거의 문과적 성향이 강하고 사위만 이과인데 손녀딸은 다행히 제 아빠를 닮았나 보다. 그러기를 바란다. 요즘 세상에서 문과적 성향으로 살아가기가 좀 어려운가 말이다. 오죽하면 '문송'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손녀딸이 늦게 일어난 탓에 어린이집 등원을 서둘러야 했다. 아침밥을 먹이려는데, 평소와 달리 좀체 잘 먹지를 않는다. 다른 때와 같이 소고기 미역국에 밥을 말아주었는데 말이다. 맛이 없나 싶어 내가 먹어보았더니 맛이 썩 괜찮았다. 밥을 먹여보려고 계속 시도했지만 한사코 먹지 않겠단다. 내가 먹는 시늉을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평소에 아내나 내가 먹는 시늉을 하면 참새 새끼처럼 입을 벌리며 제가 먹겠다고 했는데 말이다. 오늘은 입맛이 당기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아내가 준비해 준 과일 한 접시는 깨끗이 다 비웠다.
오늘은 발레 수업이 있는 날이라 '샬라라 치마'를 입혔다. 주름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무언가가 풍성한 공주풍의 치마이다. 아내가 가져와 보여주니, 손녀딸을 예쁘다며 단번에 오케이를 했다. 신발은 빨간 구두를 신었다. 아, 머리에는 리본을 매고 무지개색 나비 모양 핀도 꽂았다. 내 눈에는 영락없는 공주님이다.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차에서는 오늘도 혼자 뒷좌석에 앉는다. 할머니와의 역할 놀이도 포기할 만큼 뒤에 혼자 앉는 게 좋은 모양이다. 할머니가 틀어준 '토미와 킥킥 돼지'라는 동화를 들으며 어린이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