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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57> 2025. 04. 28.(월)

by 꿈강

딸네 집 현관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고 딸네 집에 들어가는 순간, "할머니!"하고 부르는 손녀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6시 30분이 채 안 된 시간이다. 딸내미에게 들으니 어제 일찍 자서 일찍 깼다고 한다. 어제 일찍 잤다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내미는 이내 출근길에 올랐고 아내는 이것저것 딸네 집안일을 하느라 분주하다. 내가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손녀딸 독서통장과 물통과 수건과 토슈즈를 챙겨 손녀딸 어린이집 가방에 넣어 주었다.


독서통장은 손녀딸이 일주일 동안 읽은 책의 제목을 적는 공책이다. 손녀딸이 아직 글을 모르니, 엄밀히 말해 손녀딸이 읽은 게 아니라 누군가 손녀딸에게 읽어 준 책의 제목을 적는 공책이다. 그걸 월요일에 어린이집에 가져가면 담임 선생님이 책 제목 옆에 일일이 캐릭터 도장을 찍어 준다. 손녀딸은 선생님이 캐릭터 도장 찍어주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월요일마다 꼭 독서통장을 챙겨 넣아 주어야 한다. 물통과 수건은 매일 챙겨 가방에 넣어 주어야 하는 물건이다. 자기가 마실 물은 싸 가지고 다녀야 하고 수건은 땀을 닦거나 엎지른 물을 닦거나 하는 등 여러 용도를 쓰이는 듯하다. 토슈즈는 발레 수업할 때 신는 신발인데 월요일마다 손녀딸은 발레 수업을 받는다. 월요일에는 발레 수업, 수요일에는 방송 댄스 수업을 받느라 손녀딸은 다섯 시에 하원한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네 시에 하원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오늘 손녀딸에 제 엄마에게 다섯 시에 하원하는 게 싫다고 말했다. 그러면 발레 수업과 방송 댄스 수업을 그만두어야 한다. 제 엄마, 아빠와 의논해서 정할 일이기는 하지만 웬만하면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균형 감각을 기르고 몸을 적당히 움직일 수 있는 좋은 활동이지 않겠는가. 물론 손녀딸이 정히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손녀딸이 뭐 하고 있나 보았더니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요즘 손녀딸이 아주 좋아하는 일이다. 손녀딸은 연필을 왼손으로 잡는다. 그것도 연필을 셋째와 넷째 손가락 사이에 끼워 잡는다. 집안에 왼손잡이라곤 외증조할머니뿐인데 말이다. 오른손잡이인 내가 보기에 매우 불편하고 어색해 보인다. 평소에는 타고난 것이려니 여기며 그냥 내버려 두었는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참견을 하고 말았다.


그림 그리기 삼매경인 손녀딸에게 다가가 "순돌아, 이렇게 오른손으로 연필을 잡으면 어때?"하고 말하며 다른 연필을 꺼내 시범을 보여 주었다. 순간 손녀딸의 표정이 슬쩍 안 좋아졌다. 그러더니 "할아버지 싫어. 저리 가."라고 한다. 그러면서 할머니를 부른다. 할머니한테, 할아버지가 자기 연필을 만졌다고 일러바친다. 자기 물건에 아무 말도 없이 손을 대서 기분 나쁘다는 투다. 우리 손녀딸이 즐겨 쓰는 수법이다. 연필을 오른손으로 잡아보라고 말한 것에 마음이 상했을 텐데, 그걸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약간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손녀딸 나름 대로의 전략일까? 좀 더 관찰해 볼 일이다.


그건 그렇고, 손녀딸이 타고난 왼손잡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일 터이다. 살아가면서 조금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만약 그게 본성이라면 억지로 고치려는 시도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을 테이 말이다. 그런데 우리 손녀딸은 타고난 왼손잡이는 아닌 듯도 하다. 가위질은 주로 오른손으로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연습을 통해 얼마든지 연필을 오른손으로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하긴 이것도 오른손잡이로 살아온 나의 편견에 기인한 것이라 하겠다. 오른손잡이로 살아왔으니 왼손을 쓰면 불편하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리라. 오른손을 쓰든 왼손을 쓰든 잘만 쓰면 무슨 상관이랴. 좀 더 지켜보며 우리 손녀딸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게 최선의 방책이리라.


아, 그러고 손녀딸과 나는 금세 화해했다. 어떻게 화해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자연스럽게 화해해서 그런 모양이다. 손녀딸은, 할머니가 골라 온 옷을 한 번 퇴짜 놓고 할머니와 함께 옷을 고르러 가더니 새로 산 원피스를 골라 입고 어린이집으로 갔다. 그 원피스가 한복 같다며 또 길이가 아주 길다며 매우 흡족해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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