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2025. 04. 22.(화)
오늘은 아내가 서울 병원에 가는 날이다. 나 혼자 손녀딸을 등하원시켜야 한다. 아내가 8시 버스로 서울로 가니, 아침에는 아내가 손녀딸 아침밥과 등원할 때 입을 옷 등을 챙겨줄 수 있을 터이다. 이럴 때 가장 큰 문제는 손녀딸 머리 묶기이다. 다른 건 어찌어찌할 수 있어도 머리 묶기는 몹시도 어렵다. 물론 이 또한 연습하면 될 테지만, 유려한 머리 묶기 솜씨를 자랑하는 아내가 있는데 고작 일 년에 한두 번밖에 써먹지 못할 손녀딸 머리 묶기 연습은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제 손녀딸에게 슬쩍 말했었다. 내일 할머니가 서울 병원에 가야 해서 할아버지 혼자 너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어야 한다고. 그러면서 머리는 어떻게 하고 갈 거냐는 말을 덧붙였다. 손녀딸이 일거에 내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내 말을 들은 손녀딸은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머리 풀고 가지, 뭐."라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자기 머리를 예쁘게 묶어 주기란 애저녁에 그른 일이라는 걸 알고 머리를 묶지 않고 어린이집에 가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한시름 놓게 되었다.
오늘 6시 30분이 채 안 되어 딸네 집에 도착했는데 손녀딸은 벌써 깨어 거실에서 놀고 있었다. 어제 일찍 잤나 보다. 아내가 손녀딸에게, 오늘 머리를 어떻게 묶어 줄까 라고 묻자 손녀딸은 어제 내게 공언한 대로 묶지 않고 풀고 가겠다고 대답했다. 아내가 재차 머리를 풀고 가면 지저분해 보이니 묶고 가자고 해도 손녀딸은 한사코 머리를 풀고 가겠단다. 그래서 머리를 풀고 머리핀을 두 개 꽂고 가기로 했다. 손녀딸 말로는, 오늘은 언니처럼 하고 가고 싶다나 뭐라나. 그러고 보니 머리를 풀어헤친 손녀딸이 조금 어른스러워 보이는 듯도 하다.
딸내미가 출근길에 오르고 아내도 딸내미 집을 나섰다. 손녀딸과 나만 남았다. 아침밥 먹고 양치질하고 얼굴에 보습까지 끝내는 등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는데도 시계는 이제 8시를 가리키고 있다. 손녀딸이 일찍 일어난 덕분이다. 다행히 손녀딸은 그림 그리기 삼매경이다. 토끼도 그리고 자기 자신도 그린다. 그런 다음 자신이 그린 그림을 가위로 싹둑싹둑 오린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어린이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손녀딸에게 이제 어린이집에 가자고 하니, 아주 순순히 앞장을 선다. 그러더니 갑자기 '헬로 키티 가방'을 찾는다. 그런데 손녀딸이 찾는 그 가방이 어디에도 없다. 순간 낭패감이 몰려왔다. 손녀딸이 짜증을 내며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 몹시 불안했다. 그런데, 웬걸, 놀이방으로 들어간 손녀딸은 헬로 키티 가방 대신 캐릭터 인형 두 개를 들고 나왔다. 헬로 키티 가방을 찾을 수 없으니, 인형을 데리고 가겠다며.
할머니가 없이 할아버지 혼자 자기를 등원시킨다고, 우리 손녀딸이 이 할아버지를 많이 봐 준 듯하다. 신통방통한 우리 손녀딸이다. 손녀딸은 새로 장착한 민트색 '캐치 티니핑' 카시트에 얌전히 앉아, '한글쌤의 동화책 읽어주기' 중 '고래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이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