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2025. 04. 21.(월)
딸내미한테 들으니, 손녀딸은 어제 호수공원에서 아주 신나게 놀았단다. 그래서인지 단잠에 빠져 있다. 천사가 따로 없다. 딸내미는 이내 출근길에 오르고, 아내와 거실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데 손녀딸이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 7시 30분이다. 내가 후다닥 달려가 옆에 누웠다. 손녀딸이 좀 더 잤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손녀딸은 눈도 뜨지 않은 채, 등을 긁어 달라고 했다. 손녀딸의 작은 등을 살살 긁어 주는 것도 흐뭇한 일이다. 손녀딸이 얼마나 시원해할까를 생각해 보면 그렇다.
잠시 후 손녀딸은 갑자기 '이제 나가자.'라고 하며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나도 뒤따라 나갔다. 어느 틈엔가 아내가 손녀딸 아침 밥상을 떡하니 차려 놓았다. 얼른 텔레비전을 켠 다음 밥을 먹이기 시작했다. 손녀딸에게 묻지도 않고 '페파 피그(Peppa Pig)'라는 애니메이션을 틀었는데 군말 없이 잘 본다. 다행이다. 어떤 날은 자기가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꼭 찍기도 하는데, 오늘은 별말이 없다. 영어 버전을 틀어 주는데, 얼마나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지만 키득키득 웃기도 하면서 곧잘 본다. 아마 이 할아버지보다도 더 많이 알아들을 성싶다.
손녀딸이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내가 떠먹여 준 밥을 한 입 가득 물고서 말이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보통은 내가 재빨리 손녀딸 입을 가려 대참사를 모면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전조 현상 없이 곧바로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미처 그럴 새가 없었다. 재채기할 때 입을 가리라고 손녀딸에게 여러 차례 이야기했는데도 아직은 재채기할 때마다 입을 가리지는 않는다. 가릴 때도 있고 그러지 않을 때도 있다. 계속해서 이야기해 주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손녀딸이 밥을 먹다 말고 응가를 하겠다며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간다. 내가 뒤따라가서 혼자 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나더러 옆에 있으라고 한다. 이 또한 종잡을 수가 없다. 어떤 때는 나더러 나가라고 하고, 어떤 때는 옆에 있으라고 한다. 기준이 뭔지 몹시 궁금하다.
손녀딸이 응가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어린이집에 갈 때 입을 옷을 가져와 보여 주었다. 손녀딸은 오케이를 하면서도 다만 치마는 파란색 치마를 입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뿔싸, 파란색 치마는 우리 집에 있다. 아내가 다른 치마를 가지고 와, 오늘은 이 치마를 입고 파란색 치마는 내일 입으면 어떻겠냐고 했다. 손녀딸은 거의 울상이 되어 한사코 파란색 치마를 입겠다고 했다. 그 치마는 할머니 집에 놓고 왔다고 했더니, '왜 놓고 왔어? 챙겨 왔어야지.'란다.
이쯤 되면 어쩔 도리가 없다. 집에 가서 가져오는 수밖에. 차를 몰고 집으로 가 세탁해 놓은 파란색 치마를 가지고 다시 딸네 집으로 왔다. 파란색 치마를 본 손녀딸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파란색 치마를 입은 손녀딸은 "나, 신데렐라 같아?"라고 물었다. 아, 오늘 우리 손녀딸의 등원 의상 콘셉트는 신데렐라였구나. 그러고 보니 손녀딸이 보는 애니메이션의 신데렐라는 파란색 원피스를 입었던 것도 같다.
파란색 치마를 입고 신데렐라가 된 우리 손녀딸은, 어린이집 앞에서 만난 같은 반 아이의 손을 잡고 행복하게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