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61> 2025. 05. 22.(목)

by 꿈강

요 며칠 아주 순조로웠다. 손녀딸이 그야말로 '착한 아이 모드'를 발동했기 때문이다. 아침밥도 잘 먹고 할머니가 골라 온, 어린이집에 갈 때 입을 옷도 웬만하면 손가락으로 오케이 신호를 만들어 보이곤 했다. 어린이집 등원 시간이 되어 이제 텔레비전을 끄자고 하면 순순히 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리모컨의 빨간 단추를 꾹 눌러 텔레비전을 껐다. 요즘 들어 손녀딸이 보인 가장 큰 저항은, 할머니가 가져온 파란색 양말을 보라색 양말로 바꿔 신겠다고 한 것뿐이었다. 나는 몰랐는데, 아내의 말을 들어 보니 손녀딸이 신고 갈 신발과 양말의 색깔을 맞춘 것이라고 한다. 우리 손녀딸은 자신만의 확고한 패션 철학이 있다.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 말이다.


어제도 당연히 그런 순조로움에 대한 기대를 안고 딸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출근 준비에 바빠야 할 딸내미가 소파에 누워 있었다. 속이 울렁거린단다. 손녀딸은 제 방 침대가 아니라 안방 엄마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다가가서 잠든 손녀딸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날개 없는 작은 천사가 몸을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다. 딸내미는 여전히 소파 위에 누워 속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콩콩콩하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손녀딸이 애착 인형 '보노'를 안고 거실로 나왔다. 아내가 부랴부랴 손녀딸 아침을 차려 왔다. 늘 하던 대로 내가 손녀딸 아침을 먹였다. 소고기 뭇국에 만 밥 한 숟가락 떠 먹이고 바나나 한 조각 먹이고 딸기 한 조각 먹이고 사과 한 조각 먹이고…….


그러다가 사달이 났다. 내가 실수로 손녀딸 밥상을 건드리는 바람에 밥상 위에 놓은 물컵에서 물이 조금 쏟아졌다. 그랬더니 손녀딸이 컵에 물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고 짜증을 내면서 울기 시작했다. 물을 더 떠다 주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딸내미가 손녀딸을 혼냈지만 별무신통이었다. 손녀딸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물컵을 들고 정수기로 달려갔다. 달려가서는 물컵을 정수기 아래 놓고 "아무도 방해하지 마. 내가 할 거야."라면서 물을 받았다. 이쯤이면 손녀딸은 제 엄마에게 참교육을 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제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딸내미가 출근길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속이 어느 정도 진정된 딸내미는 출근길에 올랐다.


딸내미를 현관에서 배웅하고 거실로 돌아오니 손녀딸 밥상 다리 한쪽이 꺾여 있고 거실 바닥에 손녀딸이 먹던 과일이 흩어져 있었다. 손녀딸이 일부러 그런 건지 실수로 그런 건지 나로서는 알 수는 없었는데, 손녀딸과 할머니 사이에 싸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나를 본 손녀딸은 울음을 터뜨리면서 이 밥상은 아기들 거라 싫다고 했다. 자기는 아기가 아니라면서 앙앙 울었다. 아내가, 그러면 어떤 밥상을 원하냐고 손녀딸에게 물었다. 토끼 그림이 있는 밥상을 찾는다. 아내가 인터넷에서 그 밥상을 찾아 사 주겠노라고 하자 그제서야 울음을 그쳤다.


울음을 그친 손녀딸에게 아내가, 네가 잘못한 게 있지 않냐고 했는데 손녀딸은 내 품에 안겨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가, 네가 이러이러한 행동을 한 것은 잘못 아니냐고 말했는데도 손녀딸은 묵묵부답이다. 내가, 어서 할머니한테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라고 하자 그제서야 잘못했단다. 손녀딸과 아내와 나는 곧 평정을 되찾았다.


이렇게 이 사달은 그런대로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내 고민은 이렇다. 손녀딸이 생떼를 쓸 때, 정색을 하고 혼을 내야 할지 말지가 고민이다. 손녀딸이 생떼를 쓰면 제 엄마, 아빠는 손녀딸을 단호하게 야단친다. 아내도, 딸네 부부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시시비비를 가려 손녀딸에게 일러주는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까지 생떼 쓰는 손녀딸을 정색하고 나무라야 하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손녀딸이 아무리 심한 잘못이나 실수를 해도 늘 자기를 달래주며 제 편이 되어 주는 사람이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손녀딸 버릇이 아주 나빠질까 봐 가끔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제 엄마, 아빠가 중심을 잘 잡고 있으니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손녀딸은 지혜롭고 바르고 예쁘게 쑥쑥 자라리라고 굳게 믿는다. 우리 손녀딸이 그렇게 자라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제 엄마,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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