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고등학교 수업을 바꾸자
30년 넘게 몸 담았던 교직에서 퇴임한 지도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접하는 교육 관련 소식과 가끔 통화를 하는 후배 교사들이 전해오는 소식을 들어보면, 교직 생활은 나날이 힘들어지는 듯하다. 학생들은 점점 더 말을 안 듣고 학부모들의 민원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수업 이외에 해야 할 업무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교사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며 교직 생활을 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리라.
이런 상황에서 교사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교사의 기본 또는 본질은 무엇일까? 누구나 동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가르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제대로 가르치면, 다시 말해 수업을 제대로 하면 교사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수업을 제대로 하려면 준비를 제대로 해야 한다. 1시간짜리 수업을 제대로 하려면 최소한 3~4시간을 착실히 준비해야만 한다. 교직 생활 경험을 통해서 볼 때 이렇게 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각종 업무와 학생 상담, 학부모 민원 대응 등으로 교사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이다. 또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해서 제대로 된 수업을 했다고 해서 달리 어떤 보상이 주어지지도 않는다. 이런 실정이니 수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교사를 찾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 되리라. 갈수록 팍팍해지는 교직 생활에서 교사로서의 자존감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남으려면 수업을 제대로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니 하는 말이다. 교직 생활 대부분을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한 터라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사정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하여, 앞으로의 논의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초점을 맞춰진 사실이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그러면 일반계 고등학교 수업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해에 수십 억을 번다는 인터넷 일타 강사처럼 수업을 하면 될까? 일타 강사들의 수업은 제대로 된 고등학교 수업이라고 하기 어렵다. 일타 강사들의 수업은 대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수업은 오로지 수능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능은 결코 고등학교 교육의 목표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수업은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할까? 예전에는 지식의 많음이 매우 중요했다. 지식을 얻기가 쉽지 않았으니 힘들게 노력해서 지식을 많이 쌓으면 생존에 유리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떠한가? 필요한 지식은 필요할 때마다 AI에게 물으면 된다. 쌓아 놓을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AI에게 어떻게 묻느냐다. 질문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이제부터의 고등학교 수업은 질문하는 힘을 길러주는 수업이어야 한다.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수업을 떠올려 보라.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해 본 적이 있는가? 197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당시 수업 중 질문은 일종의 죄악으로 치부되었다. 질문을 하면, 진도 나가는 데 방해된다는 핀잔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몇 번 그런 일을 당하면 입 꾹 다물고 교사의 말을 받아 쓰기에만 전념할밖에 다른 도리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고등학교 수업 장면도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일 년 전 고등학교에서 퇴직할 때까지, 내가 근무했던 고등학교들의 수업 풍경은 1970년대 후반의 그것과 근본적인 측면에서 볼 때 다르지 않았다. 주로 교사가 떠들고 학생들은 받아 쓰는, 그 풍경 말이다. 물론 1970년대 후반에 비해서는 학생들의 발표를 격려하고 장려하며 학생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려는 시도는 훨씬 많아졌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이다. 학생들은 수행평가 점수를 위해 인터넷에서 긁어온 자료로 발표에 임할 뿐이다. 내가 퇴직할 즈음에도 고등학교 수업 활동에서 학생들이 질문하는 모습은 매우 희귀한 풍경이었다. 질문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지금의 고등학교 수업 풍경과 1970년대 후반의 그것과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AI가 답을 찾아주는 지금 이 시대에는 고등학교 수업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질문이 수업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해야 한다. 이때 질문은 교사의 질문이 아니다. 학생의 질문이다. 학생의 질문으로 수업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말이다. 학생의 질문으로 수업의 문을 열고 학생의 답으로 수업이 마무리되어야 한다. 가능하냐고?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하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교사들의 대오각성이다. 질문의 중요성을 깨닫고 수업을 혁신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대학 입시 핑계 대지 말고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 때문이라고 운운하지 말고 지금 당장 수업의 틀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학생들의 질문과 학생들의 대답이 이끌어 가는, 아름다운 수업 풍경을 만들어야 한다.
인터넷을 뒤져 보면 그런 수업에 대한 방법론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터이다. 본인이 직접 찾기 어려우면 AI에게 시키면 된다. AI가 척척 찾아줄 터이다.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은,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대오각성이다. 수업을 바꾸겠다는 결심이다. 꾸물꾸물하다 보면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은 점점 더 회복 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교사들이여! 지금 당장 수업을 바꾸자. 수업을 바꾸어야 교육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