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2025. 06. 26.(목)
보통 때와 같은 시간인 6시 30분경에 딸네 집에 도착했다. 손녀딸 방을 빼꼼 들여다보았다. 손녀딸은 콜콜 자고 있었다. 일찍 깨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제 엄마가 출근하는 기척을 알아채고는 침대에 누운 채 잘 갔다 오라는 인사를 했다. 손 뽀뽀를 날리면서 제가 어린이집에서 접어 온 종이배를 꼭 가져가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렇게 딸내미가 출근한 뒤 손녀딸을 좀 더 재우려고 손녀딸 옆에 누우려니 "혼자 있고 싶어."라고 한다.
하릴없이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있었다. 2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손녀딸이 방에서 나오는 기척이 들렸다. 달려가 보니 손녀딸이 방문 가에 애착 인형 '보노'를 안고 누워 있었다. 손녀딸은 나를 보더니, 자기를 질질 끌고 가 달라고 했다. 그래서 누워 있는 손녀딸 발목을 잡은 다음 손녀딸을 끌고 거실로 데려왔다.
아내가 10시에 근력 운동을 하러 가야 해서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좀 서둘러야 했다. 아내가 재빨리 손녀딸 아침밥을 차려 왔다. 그런데 손녀딸이 갑자기 과자를 찾았다. 팬트리에 들어간 손녀딸이 과자 한 봉지를 꺼내 들고 와서 밥상 앞에 앉았다. 내가 아침밥 다 먹고 과자를 먹으라고 했더니, 그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사달이 났다. 주방에서 정리를 하고 있던 아내가 손녀딸에게 "엄마가 너 과자 많이 먹는다고 걱정하더라."라고 했다. 잠깐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손녀딸은 "나 밥 안 먹을래."라고 선언하더니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할머니 말을 듣고 삐진 게 분명하다. 내가 방으로 따라 들어가니, 혼자 있겠다며 나가란다. 더울 것 같아 선풍기를 틀어주려고 하니까, 춥다며 선풍기 틀지 말라고 짜증을 냈다.
이럴 땐 손녀딸 혼자 있게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상수 중의 상수다.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손녀딸이 뭐라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쏜살같이 손녀딸한테 달려갔다. 이내 아내가 나를 불렀다. 손녀딸은 제 침대에 누워, 아까처럼 자기를 질질 끌어 거실로 데려달란다. 침대에 길게 누워 있는 손녀딸 발목을 잡고 조심조심 손녀딸을 거실로 끌고 왔다.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녀딸 사이의 갈등은 금세 누그러졌다.
예전엔 손녀딸이 한번 짜증을 내면 지속 기간이 제법 길었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많이 짧아졌다. 우리 손녀딸이 그만큼 자란 것이리라 생각한다. 손녀딸 마음속에서 어떤 메커니즘이 작동하는지 알 길은 없으나 할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손녀딸이 마냥 기특하기만 하다. 어쨌든 자기 나름대로 제 마음을 다스리고 있지 않은가. 물론 오늘 같은 상황에서 짜증을 내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손녀딸은 이제 겨우 다섯 살. 다섯 살배기가 그러기는 쉽지 않을 터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한 손녀딸은 아침밥과 과일을 다 먹고 제가 골라 온 과자 한 봉지도 다 먹고 아주 즐겁게 어린이집으로 갔다. 비가 오니 장화를 신고 가면 좋겠다고 할머니가 권유하자, 손녀딸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장화를 멋지게 신고, 그 어느 때보다 발랄하게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