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 사는 / 살아갈 이야기

옳은 결정만을 하는 대통령이 있다고?

by 꿈강

'대통령이 하는 결정은 다 옳다.' 요즘 들어 들은 말 중, 가장 충격적인 말이다. 최근 단행된 소위 친윤 검사의 고위직 인사 발령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집권 당 대표 후보 중 한 사람이 한 대답이다.


기자 질문에 대한 답이라면 공식 석상에서의 발언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집권 여당의 당 대표가 되겠다는 사람이 공식 석상에서 어찌 이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대통령이 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민주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말 아닌가? 대통령을 절대 왕정 시대의 절대 군주라고 착각하지 않는 한,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어떤 조직 수장의 생각이나 결정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라 하겠다. 30년 넘게 몸 담았던 교직 사회도 그랬다. 누구나 두루 알다시피 단위 학교의 우두머리는 교장이다.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교장의 생각이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민주적인 의사 결정 과정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읽고 '학교가 정말 그 지경이라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사실이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같은 시험 문제를 잘못 출제한 경우 두 가지 처리 방법이 있다. 하나는 잘못 출제한 문제를 다시 출제해서 그 문제만 다시 시험을 보는 방법(재시험)이고, 다른 하나는 애초 정답 선택지 이외에 다른 선택지도 정답으로 인정(복수 정답 인정)하는 방법이다. 출제된 문항의 잘못 정도를 판단하여 두 방법 중 하나를 택하게 되어 있다.


2013년으로 기억한다. 근무 학교를 옮겼다. 그런데 옮겨 간 그 학교의 교장은 시험 문제를 잘못 출제한 경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재시험'을 보라고 했다. 전에 근무한 학교에서는 상황에 따라 '재시험'과 '복수 정답 인정'을 선택했던 터라, 왜 꼭 '재시험'을 보아야 하는지 이의를 제기했지만 그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듬해 교장이 바뀌었다. 바뀐 교장은 시험 문제가 잘못 출제된 경우 웬만하면 '복수 정답 인정' 쪽으로 처리하라고 했다. 출제를 잘못한 어떤 교사가 '재시험'을 보고 싶다고 했으나, 그 교장은 그냥 복수 정답을 인정하라고 했다. 교장의 결정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므로,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살펴본 바와 같이, 학교 사회에서 교장의 결정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열한 논의 과정을 거친 다음 교장이 결정을 내린다면 그나마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근무했던 여러 학교에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논의 과정을 거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적절한 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교장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경우 이를 고칠 방법이 없다면 내가 근무했던 학교에는 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야 마땅할 터이다.


그런 상황이니 교사들은 '교장이 하는 결정은 모두 다 옳다.'라는 자조 섞인 말을 내뱉곤 했다. 그런데 앞에서 인용한 어느 정치인의 '대통령이 하는 결정은 다 옳다.'라는 말에는, 맥락을 살펴볼 때 그런 '자조'가 섞여 있지 않았다. 정색하고 한 말이다. 집권 당 대표 후보의 생각이 그렇다면 집권 당 내부에 그런 기류가 강하다는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또는 그 후보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마음 놓고 드러낼 수 없는 분위기이리라 짐작한다.


걱정이 된다. 단위 학교에 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가 없는 경우 그 단위 학교에만 문제가 발생할 터이다. 그러나 집권 당 내부에 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가 없다면 그 영향은 집권 당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터이다.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큰 영향력을 가진 조직일수록 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이다.


그런데 당 대표 후보가 '대통령이 하는 결정은 다 옳다.'라고 한 말을 비판하는 집권 당 내부의 목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는다. 또한 그 어떤 언론 매체에서도 이 말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 당 대표 후보의 말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언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말을 비판하는 논평을 찾아볼 수가 없다. 비판적 논평은커녕 그 말은 화젯거리조차 되지 않는 듯하다.


정녕 그 말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어도 괜찮을까? 절대 왕정 시대에나 가능할 듯싶은 이야기를 공식 석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어도 될까? 언론에서 벌떼처럼 일어나 그 당 대표의 말을 비판해야 마땅한 텐데 그 말이 주목의 대상조차 되지 않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대통령이 워낙 현인이라 그 당 대표의 말이 옳다고 여기는 걸까?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 대표의 말에 이토록 무관심한 현실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이 하는 결정이 다 옳을 수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신이다. 지금 대통령이 신은 아닐 터이니 그의 결정이 다 옳을 수 없다는 말은 지극히 상식에 부합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하면 그 결정을 비판적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 사회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게 된다. '대통령이 하는 결정은 모두 다 옳다.'라는 말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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