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생기부 세특을 AI를 활용해서 써도 괜찮을까?

by 꿈강

일반계 고등학교 교사들이 정말로 힘들어하는 일 중 하나는 생활기록부 특기사항을 쓰는 일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특기사항 쓰기 힘들어 선생 노릇 못하겠다고 하는 동료 교사 여럿을 보았다.


얼마 전 중학교 교사인 딸내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학기 말이라 생활기록부 특기사항 쓰느라 바쁘지 않냐고 딸내미에게 물었다. 딸내미는 이미 다 썼노라고 대답했다. 부지런하다고 칭찬했더니, 요즘은 생활기록부 특기사항 쓰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고 했다. AI의 도움을 받아 뚝딱 쓸 수 있다나 뭐라나.


누군가 커다란 망치로 내 머리를 내리친 듯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고등학교 재직 시절, 담당 과목의 특기사항을 쓰기 위해 한 학기 내내 노심초사했던 내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는 '한 학기 내내' 썼는데 딸내미는 '뚝딱' 썼단다. '뚝딱'이 얼마나 짧은 기간을 의미하는지 묻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한 학기'를 가리키지는 않을 것은 명백하지 않겠는가. 교직에서 은퇴한 지 채 두 해가 지나지 않았는데 학교 현장은 이다지도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딸내미가 근무하고 있는 중학교 사정과 고등학교 사정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후배 여럿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사들이 생활기록부를 쓸 때 AI를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딸내미가 이야기한 중학교 상황과 비슷하게 교사 대부분이 AI를 활용하여 생활기록부 특기사항을 작성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자신이 AI를 활용하여 생기부 특기사항을 작성한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교사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르지는 않는다. 공공연하게 이야기하지 않을 뿐 그렇다고 꽁꽁 숨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30년 넘은 고등학교 근무 경험을 통해서 볼 때, 누가 얼마큼 AI를 활용하여 생기부 특기사항을 작성하는지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생활기록부 특기사항 작성 시 교사들의 AI 활용 양상에 대해 물어보았다. 후배 교사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교사들의 AI 활용 양상을 크게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AI를 전혀 활용하지 않는 교사들이다. 훌륭한 교사들이다. 생활기록부 특기사항을 작성할 때 AI를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개인 신념에 따라 AI를 활용하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학생들이 제출한 보고서 등의 요약에 AI를 활용한 뒤 그것을 바탕으로 교사 자신이 특기사항을 작성하는 교사들이다. 세 번째는 생활기록부 특기사항 작성을 오롯이 AI에게 맡기는 교사들이다.


첫 번째 부류의 교사들의 수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교사 대부분이 두 번째나 세 번째 부류에 속할 듯싶다. 두 번째 부류는 그나마 괜찮다고 할 수 있겠으나 세 번째 부류는 문제가 심각하다. 그런데 특기사항 작성을 오롯이 AI에게 맡기는 게 가능할까? 내가 사용하고 있는 무료 버전 챗 지피티를 활용해 보니 얼마든지 가능했다.


챗 지피티에게 '고2 문학 과목, 서울 상위권 대학 진학 가능 학생,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채만식의 태평천하, 허균의 허생전 등 공부했음.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써 줘.'라고 했더니 챗 지피티는 불과 5~6초 만에 특기사항을 그야말로 '뚝딱' 써냈다. 이어 '이 학생이 경제학과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여기에 맞춰 수정해 주.'라고 했더니 챗 지피티는 '문학 과목 세특에 경제학적 사고나 사회 문제 인식 능력이 드러나도록 수정해' 주겠다면서 역시 5~6초 만에 '뚝딱' 특기사항을 수정했다.


사람이 하면 몇십 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을 AI는 불과 몇 초만에 해낸다. 이런 달콤한 유혹을 이기기는 결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학생 한 명의 세특을 쓰기 위해 거의 한 학기 내내 애면글면했던 일을 떠올리면 나 또한 그러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생활기록부 세특을 학생의 수업 활동과는 하등 연관 없이 작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교사가 오롯이 세특을 작성하는 경우에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경우는 맨땅에 헤딩하며 완전히 소설을 써야 하므로 학생 수업 활동에 바탕하여 세특을 작성하는 일보다 오히려 버거울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생 수업 활동에 바탕하여 세특을 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AI는 그렇지 않다. 학생 수업 활동에 바탕하여 세특을 쓰든, 그것과 연관 없이 세특을 쓰든 뚝딱 5~6초 만에 세특을 써낼 수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어떤 세특이 AI가 썼는지 교사가 썼는지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학생 수업 활동에 근거했는지 학생 수업 활동과 연관 없이 썼는지 검증할 수 있는 수단도 없다. 중학교 세특이라면 크게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으나 고등학교 세특은 문제가 다르다. 대학 입시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세특이 중요한 전형 요소로 작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교육부나 대학에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특기사항의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알고 있을까? 알고도 모른 체하고 있다면 무책임한 것이고 모르고 있다면 무능력한 것이다. 또 고등학교에서는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생활기록부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과문한 탓일 수는 있겠지만, 고등학교 차원에서 그 어떤 의미 있는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학생부 종합 전형을 이대로 두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AI가 썼는지 교사가 썼는지 알 도리가 없고, 학생 수업 활동을 바탕으로 썼는지 그것과 관계없이 썼는지도 알 방법이 없는 생활기록부 특기사항을 주요한 전형 요소로 삼고 있는 학생부 종합 전형을 그대로 두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학생부 종합 전형을 대체할 대입 전형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만일 학생부 종합 전형을 손댈 수 없다면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특기사항에 대한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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