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겉보기에 좋으면 만사형통?

by 꿈강

30년 넘게 교편을 잡다 은퇴한 지 일 년이 조금 넘었다. 지방 소도시에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주로 근무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일 중 왜 그렇게 하는지 납득수 없는 일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최고봉은 '공동 연수(共同硏修)'라는 것이었다.


'연수'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학문 따위를 연구하고 닦음.'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공동 연수'는 '여럿이 함께 학문 따위를 연구하고 닦'는다는 의미가 될 터이다. 내가 근무했던 지역의 고등학교에서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시작할 때 당일 혹은 1박 2일 일정으로 공동 연수를 실시했다. 방학을 시작하면서 공동 연수를 실시하지 않은 경우는 다섯 번을 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1989년 교직에 첫발을 들인 때부터 2024년 교직에서 발을 거둘 때까지, '연수'라는 이름에 걸맞은 공동 연수를 경험한 적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나친 과장이 아니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단 한 줌의 과장도 없이 그렇다. 학문을 연구하고 닦지는 못하더라도 지난 학기 각종 교육 활동을 면밀하게 성찰했거나 새 학기 교육 활동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했다면 '연수'라고 칭할 만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적이 없는 것이다.


물론 그런 부분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준이었다. 공동 연수 담당 부장 교사가 교육 관련 주제의 A4 한 장짜리 인쇄물을 돌리거나 30~40분 정도 주제 발표를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면 공동 연수에서는 주로 무엇을 했을까? 교직 생활 초기에는 밥 먹고 술 마시는 데 거의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교직 생활 후반부에는, 이런 행태에 대한 교사들의 비판이 제기되자 연극이나 뮤지컬 등의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공동 연수라기보다는 직원 회식이나 직원 교양 증진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러니 '연수'가 아니라 직원 '친목 도모'라는 명칭이, 누가 보아도 합당했다.


그런데 왜 굳이 '연수'라는 이름을 고집했을까? 명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두 가지 이유를 추정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첫 번째 이유는 '공동 연수'에 꽤 많은 학교 예산이 사용되기 때문에 명칭을 '직원 회식'이라고 하기에 좀 껄끄러웠으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학교 예산 항목에 '연수'라는 명목으로 쓸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직원 회식'이라는 명목으로 쓸 수 있는 부분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학교 예산 항목을 꼼꼼히 살펴본 적이 없어서 정확한 사실을 적시했는지 확신은 없지만 '연수'라는 이름에 그토록 집착한 것을 보면 충분히 의심이 간다.


두 번째 이유는 교사들을 '공동 연수'에 참여하도록 강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공동 연수'라고 하면 공식적인 느낌이 드는데 '직원 회식'이라고 하면 사적인 느낌이 드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 공식적인 행사에 빠지기는 결코 쉽지 않다. 또 공동 연수에 빠지려고 하는 교사들에게 담당 부장 교사나 교감이 말하는 걸 보면 교사들을 '강제'하기 위해서라는, 이 두 번째 이유가 꽤 그럴듯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리라 생각한다.


2007년의 일이다. 그 당시 내가 근무했던 고등학교의 교감은 한마디로 '호랑이 교감'이었다. 교사들은 그 교감 앞에서 자기 의견 말하기를 매우 어려워했다. 그 교감은 학교 공식 행사에 빠지지 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다. 개인 사정으로 공동 연수에 빠지겠다는 교사에게, 그 교감은 사적인 일보다 공적인 일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말을 훈계조로 이야기하며 연수 불참을 불허했다. 끝내 공동 연수에 빠지겠다고 하는 교사는 공보다 사를 앞세우는 사람이 되기에 대부분 교사는 하릴없이 연수에 참여하고 말았다. 이 행상의 명칭이 '공동 연수'가 아니라 '직원 회식'이었다면 그 교감이 연수에 빠지겠다는 교사에게 그렇게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웠으리라 짐작한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2019년이다. 그 당시 근무학교를 옮기자마자 고등학교 3학년 부장 교사를 맡고 있었는데 여름방학을 이 주일 정도 앞두고 한 3학년 담임교사(교직 입문 3년 차의 저경력 교사)가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방학하자마자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하려고 하는데 공동 연수가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그때 내가 근무했던 지역의 고등학교에서는 공동 연수 참가 여부에 대해 교사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조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큰 문제는 없어 보이니 예정대로 여행을 추진하라고 말해 주었다.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그 담임교사가 나에게 와서 여행을 포기하고 공동 연수에 참여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자초지종을 물었다. 공동 연수 불참 의사를 담당 부장 교사에게 밝혔더니 그 부장 교사가 불렀다고 했다. 그 담임교사와 같은 저경력 교사가 학교의 공식 행사인 공동 연수에 불참하면 주위의 시선이 곱지 않을 테니 신중히 결정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고민에 빠진 그 담임교사는 부모님과 상의한 끝에, 모든 예약을 취소하고 공동 연수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여기서도 공동 연수가 학교 공식 행사임을 내세워 개인 일정을 취소하라고 종용했다.


2007년의 그 교감과 2019년의 그 부장 교사 모두 공동 연수가 학교의 공식 행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개인의 일정을 앞세우지 말라고 압박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학문을 연구하고 닦는, 그것도 공동으로 닦는 행사에 개인 일정을 취소하고 참여하는 게 공동체 일원이 취해야 할 마땅한 자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말만 연수지 실상은 연수가 아니라는 데 있다. 먹고 마시는 회식이거나 공연 관람이 소위 말하는 연수의 본질이었다. 이런 데까지 개인 일정을 취소하고 반드시 참여해야 강압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그런데 학교는 왜 이런 행태를 보일까? 30년 넘는 교직 생활에 바탕하여 추론해 보건대, '겉보기만 좋으면 다 괜찮다.'라는 학교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생각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방학을 맞아 모든 직원들이 '공동 연수'를 한다면 겉보기에는 그럴듯하지 않은가? 겉보기에 좋으면 그 실제가 회식이든 공연 관람이든 아무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듯하다. 현직에 있을 때, '공동 연수'의 명칭을 '직원 회식' 또는 '직원 친목회'로 바꾸자고 제안한 적이 몇 번 있다.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하지 말라는 핀잔만 돌아왔다.


'공동 연수'와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학생들의 진로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진로 체험 학습', 학생들의 자율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야간 자율 학습', 뭘 연구하는지 알쏭달쏭한 '연구학교' 운영, 동료의 수업을 보지도 않고 진행되는 '동료 장학' 등 기표(記標)와 기의(記意)가 동떨어져 진행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에서, 겉과 속이 일치하기를 바란다. 완벽하게 일치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겉과 속이 일치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내가 근무했던 그 고등학교들에서는 그러한 노력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문제의식조차 없었다. 그러니 내가 퇴직할 때까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학교에서 추진하는 일들의 명칭과 내용이 일치하도록 노력하기를 빈다. 그래야만 학교가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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