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프로젝트', 제대로만 하면 참 좋은데……
2021년 근무 학교를 옮겼다.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였다. 2학년 담임을 맡았다. 담임을 맡으면 으레 담임 반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출력하여 꼼꼼히 읽는다. 그래야 학생부 종합 전형에 대비하여 학생 활동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반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읽던 중 눈에 번쩍 띄는 기록이 있었다.
창의적 체험활동 자율활동란에 기재된 '독서 프로젝트'에 관한 기록이었다. 기록의 골자는 대략 이랬다. 3~4월에 읽을 책을 선정하여 4명이 한 모둠을 이뤄 9월까지 같은 책을 읽으며 토론한 다음 10~11월에 읽은 바에 바탕하여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파악하여 그에 대한 모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생이 이렇게 전략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니! 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한 게 못내 안타까웠다. 개별 학생들의 기록 내용을 읽어 보니 나도 모르게 감탄이 새어 나왔다. 고등학생의 바람직한 독서는 무릇 이러해야 한다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고개가 약간 갸웃해진 건 학생들과 개별 면담을 하면서부터이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독서 프로젝트'에 관해 물어보았더니 대부분 우물쭈물하며 말끝을 흐렸다. 우리 반에서 성적이 가장 뛰어나 서울 소재 최상위권 대학으로 진학이 유력시되는 학생에게 꼬치꼬치 캐 물었다.
그 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이야기는 부풀려질 대로 부풀려진 것이었다. 함께 모여 책을 읽으며 토론한 적이 없다고 했다. 각자 책을 읽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이라 할 만한 것을 몇 개 추려낸 다음 모둠원들과 논의하여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정하고 그에 대해 해결책을 찾아보았다고 했다. 그것도 모둠원들끼리 치열한 토론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인터넷 검색을 활용했다고 했다. 그 과정에 담당 선생님들이 임장하여 관찰하고 평가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경우는 그야말로 가물에 콩 나듯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생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부실하기 짝이 없는 기록이었다. 아니 거짓에 가까운 기록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라 하겠다. 어찌 이런 기록이 버젓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될 수 있다는 말인가? 비록 거짓된 기록일지라도 함부로 지울 수는 없다. 일단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사항은, 학년이 바뀐 후에는 객관적 증거가 없는 한 정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독서 프로젝트'의 기록을 바꾸려면 그 기록이 잘못되었다는 객관적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학년이 바뀐 다음 어떻게 그 증거를 제시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미 기록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문제는 그해 진행되는 독서 프로젝트였다. 독서 프로젝트는 각 학년부에서 추진하는 업무였는데 2학년 업무 담당자가 바로 나였다. 지난해처럼 설렁설렁 일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3월 중순쯤 학년 부장 교사와 상의하여 독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모집하고 네 명씩 묶어 모둠을 편성했다. 그런 다음 학생들을 불러 모아 모둠별로 읽을 책을 선정하여 알려달라고 했다. 독서 프로젝트에 활용되는 책들은 학교 예산으로 구입하여 학생들에게 배부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4월이 가고 5월이 지나도록 독서 프로젝트에 활용할 책들은 학생들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학년 부장 교사에게 문의하니 코로나 시국인지라 교육청에서 관련 예산이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고 했다. 코로나와 독서 프로젝트용 책 구입 예산 미집행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
6월이 다 가도록 예산은 감감무소식이었다.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책을 구입해 독서 프로젝트를 진행하자고 학년 부장 교사에게 제안했다. 학년 부장 교사는 다른 학년부와 논의해 보겠다고 했다. 며칠 뒤 학년 부장 교사는, 관련 예산이 곧 내려올 듯하니 좀 가다려보자고 했다.
곧 내려온다던 예산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9월 중순이 되어서야 내려왔다. 12월까지 모든 활동을 끝내야 하므로 독서 프로젝트 활동을 진행할 수 있는 기간은, 산술적으로 3개월 남짓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끼어 있다. 학생들은 대개 3주에서 4주 정도 시험공부를 한다. 그러므로 실제로 독서 프로젝트 활동을 진행할 수 있는 기간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2개월이 안 된다.
게다가 학생들이 그 기간 동안 독서 프로젝트 활동만 할 수는 없다. 동아리 활동도 해야 하고 자율 활동이나 진로 활동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독서 프로젝트 활동이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10개월 정도의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단 2개월 만에 독서 프로젝트 활동을 진행해야 한다면 그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지 않겠는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그해 독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10개월 동안 해도 제대로 진행하기 쉽지 않은 활동을 2개월 만에 해치워야 한다면 그야말로 얼렁뚱땅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부실한 활동에 바탕하여 그토록 찬란한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을 만들어내야 하는 사실이 심히 부당해 보였기 때문에 그해 독서 프로젝트를 엎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년 부장 교사에게 가서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학년 부장 교사는, 예산이 책정되어 내려왔으므로 안 된다고 했다. 활동을 진행하지 말고 예산을 반납하자고 했더니,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학년 부장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내려온 예산을 쓰지 않고 반납한 교사를 바보처럼 생각하는 관행이 있었다. 예산을 남김없이 써야 유능한 교사로 여기는 풍토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사안은 그런 차원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활동을 하지 말고 예산을 반납해야 마땅했다. 대충대충 허접하게 활동하고 찬란한 거짓말로 도배된 생활기록부를 쓰는 데 일조할 수는 없었다. 학년 부장 교사는 내가 일하기 귀찮아서 그러는 게 아닌가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학년 부장 교사에게 계속해서 독서 프로젝트 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학년 부장 교사는, 나에게 그 일에 손을 떼라면서 본인이 맡아서 활동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것까지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해, 내가 근무했던 그 학교의 독서 프로젝트 활동은 어찌어찌 마무리되었다. 그 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꽤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생활기록부의 기록을 얻어냈다. 학생들의 실제 활동에 비해 지나치게 부풀려지고 과대하게 포장된 기록이지만 대학 측에서 그런 사실을 알 수는 없을 테니 대입 전형 과정에서 문제될 여지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교직을 은퇴한 지금도 마음이 불편하다. '그때 좀 더 적극적으로 말렸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곤 한다. 그러나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러지 못할 듯싶다. 내가 끝까지 말려 그 독서 프로젝트 활동이 엎어졌을 때 그 활동에 참여하려고 했던 학생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고 학부모들 또한 나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릴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료 교사들이나 교장, 교감의 눈초리도 결코 곱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견뎌낼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내가 근무했던 그 학교에서는, 올해도 아마 독서 프로젝트 활동을 진행했을 터이다. 올해는 그 활동을 제대로 진행했기를 간절히 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