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마치고 교무실로 가려고 복도를 지나다 진로진학상담실 게시판을 문득 쳐다보니, 손글씨 대회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손글씨 쓰는 걸 좋아한다. 잘 쓴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번 응모해 볼까 하는 생각이 불뚝, 들었다. 포스터를 자세히 읽어 보니 벌써 아홉 번째 대회였다. 응모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손글씨 대회 예선용 응모 용지를 내려받아, 마음에 드는 문구 50자 이상을 손글씨로 쓴 다음 스캔해서 보내거나 우편으로 보내면 끝이었다.
필기도구는 크게 제한이 없었다. 다만 일상적인 손글씨를 활성화하지는 취지의 대회인 만큼 붓은 권장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멋 부리지 않은, 일상적인 손글씨를 평가하는 대회인 듯싶었다. 그러자 응모하고픈 생각이 더더욱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까짓것, 한번 해 보자는 생각이 온통 뇌리를 감싸고 돌았다.
우선 필기구를 무엇으로 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고심 끝에 만년필로 하기로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만년필 세 개 중 제일 오래된 걸 선택했다. 딸내미가 선물해 준 워터맨 만년필. 손글씨 대회에 응모하려면 최소 50자 이상을 써야 한다고 했다. 적당한 길이의 글을 찾아야 했다.
뭘 써야 할까? 잠깐 동안의 고민 끝에 백석의 시 중, 한 편을 쓰기로 했다. 백석 시집을 뒤져, 마침맞은 시 한 편을 골랐다. <멧새 소리>다.
처마 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손글씨 대회에 응모하기에 아주 적당한 길이의 시다. 두어 번 연습한 다음, 응모지에 후다닥 써서 온라인으로 응모했다. 예선만 통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왕 응모한 거, 상까지 받으면 정말 좋겠지만 거기까지 욕심내지는 말자고 마음을 다독인다.
만년필로 꾹꾹 눌러 시 한 편을 써보니, 손맛이 나쁘지 않다. 괜찮다. 하루에 한 편씩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명퇴하면 시간 많을 텐데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든다. 쓸 만한 공책 하나 장만해야겠다.
손글씨 꾸준히 쓰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될까, 뭐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머리가 지시하고 손이 그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행동을 반복해야 하니 도움이 될 테지, 라는 생각을 하니 손글씨 쓰기가 더 하고 싶어진다.
매일 시 한 편 손글씨로 써서, 어디론가로 배달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그 어느 누가 그 시 한 편으로 작은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다. 매일 한 편씩 쓰려면 꽤 부지런을 떨어야 하겠다. 괜찮은 시도 골라야 하니 시도 열심히 읽어야겠다.
날이 갈수록 글씨가 멋들어져 가는 건 덤이리라. 그래, 한번 써보자. 이 글이 공수표가 되지 않으려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