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수능 킬러 문항에 대한 왈가왈부가 공교육 정상화 논의의 계기가 되기를..

by 꿈강

대통령이 수능 킬러 문항을 없애라고 하자, 수능에 킬러 문항이 없다던 교육부가 부랴부랴 킬러 문항을 찾아내어 발표했다. 애당초 함께 발표하기로 했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별다른 게 없었다. 수능 킬러 문항을 핀셋 제거하면 사교육비가 저절로 경감되리라 생각하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대통령이 촉발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이번 일이 공교육 정상화 논의의 계기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통령이나 교육부가 이야기하는 대로 수능 킬러 문항을 없앤다고 해서 사교육비가 경감될 리 만무하다는 사실을 삼척동자도 알 터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사교육에 목을 매는 것은 사교육을 통해야만 대학 진학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대학 진학에 더 유리하다는 믿음을 학생들에게 줄 수 있다면 사교육비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터이다.


그러기 위해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선 수능을 자격고사화 하거나 아예 없애버리야 한다. 또한 논술, 면접 등과 같은 대학별 고사도 없애야 한다. 수능을 잘 보려고, 논술을 잘 보려고, 면접을 잘 보려고 엄청난 사교육비가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학생부교과전형 또는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에 갈 수밖에 없다. 학생부교과전형은 5지 선다형 지필고사 성적에 의해 산출되는 내신성적이 대입 전형의 핵심 요소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이 내신성적에다 학교생활기록부의 각종 기록을 고려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이다.


물론 내신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 사교육을 받는 경우도 제법 많다. 이런 상황은 고등학교의 평가 방식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꾸면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듯싶다. 2025학년도에 모든 고등학교에 고교학점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면 1학년 공통 과목을 제외한, 2학년과 3학년에서 배우는 선택 과목들은 모두 절대평가 방식이 적용된다. 그렇게 되면 내신성적을 잘 받기 위해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대부분 1학년 학생들일 것이다. 1학년 때 배우는 공통 과목들도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하면, 사교육을 받으려는 1학년 학생들의 숫자는 현저하게 줄어들 터이다.


그러면 학생부종합전형이 대입 전형의 핵심이 된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해 사교육을 받는 경우는 없을까?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사교육 업계가 어떤 곳인가? 어떻게든 자신들의 먹거리를 창출하려고 하는 곳이고 지금까지 아주 훌륭하게 성공적으로 먹거리를 창출해 왔다.


학생부종합전형이 도입된 초기에는 상도 많이 받아야 했고, 봉사활동도 많이 다녀야 했고, 책도 많이 읽어야 했고, 자기소개서도 써야 했다. 이 모든 게 사교육 업계의 먹거리였다. 상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 소개, 효과적인 봉사활동 방법 소개, 독후감 쓰기 지도, 자기소개서 쓰기 지도 등을 통해 사교육이 번창했다.


그러나 지금 앞에서 말한 이런 요소들은 학생부종합전형의 전형 요소에서 제외되었다. 수업에서의 활동을 관찰하고 평가하여 적는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각종 학교 내 활동을 관찰하고 평가하여 적는 창의적 체험활동(자율, 동아리, 진로활동) 특기사항, 담임교사가 학생들을 1년 동안 관찰하고 평가하여 적는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 학생부종합전형의 핵심 전형 요소이다. 물론 이런 것들을 잘하기 위해 사교육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사교육 시장의 축소는 불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학생부종합전형이 대입 전형의 주류가 되면 사교육비가 경감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학생부종합전형은 소위 '깜깜이 전형'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선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개인적으로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학 나름대로의 기준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교육부에서 마음먹고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을 담보하려고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 과정을 예의주시한다면 얼마든지 공정성을 확보하리라 믿는다.


내가 걱정하는 부분은, 고등학교에서 학교생활기록부를 기록하는 과정과 방식이다. 요즈음 학생부종합전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과세특)을 예로 들어 보겠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에, 과세특은 "학생참여형 수업 및 수업과 연계된 수행평가 등에서 관찰한 내용을 입력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학생참여형 수업을 하고 그 수업과 연계된 수행평가를 통해서 관찰한 내용을 과세특에 기록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눈에 띈다. 교사 주도의 강의식 수업을 하고 과세특을 기록하거나 수업과 연계되지 않은 수행평가를 실시하고 과세특에 기록하는 경우이다.


현재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여전히 교사 주도의 강의식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과목의 특성 때문에 학생참여형 수업을 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고 교사가 학생참여형 수업에 별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다. 또 수능을 대비하는 수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사는 학생참여형 수업에 관심이 있더라도 교사 주도의 강의식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어쨌든 교사 주도의 강의식 수업을 했다 하더라도 과세특을 기록하기는 해야 하는데, 사실 이런 식의 수업을 했다면 과세특에 기록할 만한 내용이 없게 된다. 그러면 하는 수 없이, 좋은 말을 주욱 늘어놓는 아무 말 대잔치를 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런 사례도 있었다. 내가 목격한 최악의 사례라 할 만하다. 최상위권 두 학생의 특정 과목 과세특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았다. 복사해서 붙여 넣은 것이다. 그 두 학생 모두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서울의 상위권 대학에 무난히 합격했다. 서로 다른 대학에 지원했기에 걸러낼 방법이 없었을 터이다.


또 다른 경우를 살펴보자. 어떤 교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역 내 남자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이다. 수업에 들어가면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엎어져 자고 있는데,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까지도 글자 제한 수까지 꽉꽉 채워서 과세특을 써주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이런 점이 학교생활기록부 기록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다. 그런 학생들의 경우라면, 과세특을 기록하지 말아야 옳다. 그런데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에는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록을 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교사들 중에는 그런 학생들까지도 꾸역꾸역 써주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수업 중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할 만한 활동을 한 학생에 한해서 특기사항을 적도록 기재 요령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학생의 특기사항을 교사가 머리를 쥐어짜내 쓴다고 한들, 대학에서 이를 가려낼 방법이 전혀 없지 않겠는가.


수업과 연계되지 않은 수행평가를 통해 과세특을 기록하는 것도 문제이다. 교과 관련 책을 읽고 독후감 쓰기를 수행평가를 실시하는 교과가 여럿 있다. 국어 교과가 아니라면, 수업과 연계하기기 만만치 않다. 그러니 수업과는 아무 상관없이, 교과 관련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게 한 다음 그것을 요약해서 과세특에 적는 경우가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 독후감을 썼는지 관찰할 방법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심지어 제대로 읽지 않고 독후감만 어디서 베껴내도 알 도리가 없다. 당연히 이런 과세특을 신뢰할 수 없을 텐데, 이 역시 대학에서 가려낼 방법은 없지 않은가. 물론 이렇게 독후감을 쓰면 독후감 수준이 썩 뛰어나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1 만큼의 활동을 했는데 10 만큼 했다고 과세특을 적어 주는 경우이다. 수업과 관련한 주제탐구 발표를 수행평가에 포함한 교과가 있었다.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 중에서 탐구 주제를 설정하고, 탐구 보고서를 작성한 다음 발표하는 수행평가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발표는 하지 않았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과세특을 적을 때 발표를 멋지게 했다고 적어주는 것이다. 하지도 않은 활동을, 했다고 적어주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 또한 대학에서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다면 학생부종합전형은 사교육비를 경감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매우 아프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교사들의 대오각성이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에 명시된 대로 학생참여형 수업을 하고 그 수업과 연계된 수행평가를 실시하고, 그것을 통해 관찰한 내용을 입력하면 된다. 교사들의 대오각성을 이끌어내어야 하는데 그 수많은, 생각이 다양한 교사들의 대오각성을 이끌어낼 방법이 딱히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오늘 어떤 동료 교사가 과세특 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그냥 수능으로 대학 신입생을 뽑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끔 나도 그런 생각을 하가도 한다. 그러면 교사 개개인이 편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만약 그랬다가는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는 다 죽고, 공교육은 설 자리를 완전히 잃고 말 것이다. 그 교사도 답답한 마음에 내뱉은 말이리라 생각한다.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생각하니 정말 답답하기만 하다.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대통령과 교육부가 수능 킬러 문항 없애기에 나선 이 상황이 우리나라 공교육을 어떻게 살릴지를 고민하는 계기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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