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고등학교에는 때때로 열풍이 불어온다
10여 년 전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지방 소도시 지역의 고등학교에 '교육과정 100대 우수학교' 열풍이 불었다. 교육활동 프로그램이 우수한 학교에 교육부가 주는 상인데, 이 상을 받는다면 학생들을 위한 교육활동 프로그램을 잘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증명될 터였다 그러니 지역 내 고등학교에서 혈안이 될 수밖에.
내가 근무하고 있던 학교도 어떻게 해서든 교육과정 우수 학교로 선정되기 위해 아주 많이 노력했다. 근무하던 교사들이 힘들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담당 부서에서 요구하는 자료가 끝도 없이 밀려왔다. 학교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다시피 했으나, 내가 근무했던 그 학교는 결국 교육과정 100대 우수학교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지역 내 인근 학교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도 대상인지 최우수상인지, 아무튼 최고 등급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듬해 최우수상을 받은 그 학교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어떤 훌륭한 교육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했기에 최우수 학교로 선정되었는지 궁금했다. 학교를 옮기면 3월 1일 자로 정식 근무가 시작되지만, 대개 2월 중에 먼저 인사를 하러 가는 게 관행이다. 인사를 하러 가서 교장실에 들렀더니 교육과정 100대 우수학교에 선정된 데에 대한 교장의 자랑이 치렁치렁했다.
특히 선진형 교과교실제와 블록타임 수업을 핵심으로 꼽았다. 선진형 교과교실제는 학생들이 수업 과목에 따라 교실을 이동하면서 수업을 듣는 것이라고 했다. 아침에 등교해서 자신의 교실에서 학급 조회를 한 다음은, 수업 시간마다 계속해서 이동한다고 했다. 블록타임 수업은, 50분 단위로 운영되는 수업을 2시간씩 묶어 100분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시간을 블록타임으로 운영하지는 않고, 과목마다 주당 한 번만 블록타임 수업을 실시한다고 했다. 블록타임 수업을 활용하여 심도 깊은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교장의 이야기만 듣고는 어떤 프로그램인지 감이 오지는 않았지만, 막연하게 꽤 괜찮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목의 특성에 맞게 꾸며진 교과교실로 이동하여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모습과 블록타임 수업 시간에 어떤 주제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학생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3월 2일 개학 첫날, 수업을 받으러 각자의 교과교실로 이동하는 학생들로 꽉 들어찬 학교 복도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좁은 복도가 학생들로 꽉 찼다. 학생들은 무거운 책가방을 이고 지고 자신이 수업을 들을 교실로 이동하느라 난리법석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학생과 내려가는 학생들의 어깨가 자주 부딪혔다. 유목민들의 대이동이 떠올랐다.
첫 수업 시간이 다가왔다. 국어 교과의 수업은 주로 4층 건물의 3층에서 이루어졌다. 교실로 이어지는 복도 위쪽에 '국어 교과 존'이라는 패찰이 달려 있었다. 복도를 통과해서 교실로 들어갔더니, 학생들이 이미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교실은 전혀 국어 교과교실의 모습이 아니었다. 여느 일반 교실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지경이면 굳이 국어 교과교실로 이동해서 국어 수업을 받을 까닭이 없었다. 도대체 어떤 점에서 '선진형 교과교실'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 학교는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로 선정된 학교 아니던가. 그것도 최우수로.
교장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또 하나가 블록타임 수업이었다. 이 수업을 통해 심도 깊은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이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려면 수업 지도안을 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담당 부장 교사에게 블록타임 수업 지도안을 보여 달라고 했다. 깜짝 놀랐다. 그 어떤 과목의 블록타임 수업 지도안에서도 심도 깊은 수업 활동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50분 수업 지도안을 단순히 100분으로 늘여놓았을 뿐이었다. 교육과정 우수학교 선정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데에는 선진형 교과교실제와 블록타임 수업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감안되었을 터이다. 그렇다 해도 교장이 그렇게 자랑한 선진형 교과교실제와 블록타임 수업의 실상을 보고 허탈한 마음뿐이었다. 어떻게 교육과정 우수학교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되었는지 암만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작년부터 우리 지역 고등학교에 또 다른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수업량 유연화 주간이라는 열풍이다. 용어부터 마음에 안 든다. 교육부가 제시한 각 과목의 수업량을 유연화한 다음 - 여기서 유연화는 줄인다는 의미 - 기말고사 끝난 뒤 일주일을 활용하여 학교 자체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교육활동이다. 그러니 학교 자체 교육과정 운영 주간이라고 해야 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학교에서 수업량 유연화 주간이라 부르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취지는 좋다. 기말고사 이후 방학 전까지, 죽어 있던 시간을 살려 내어 교육활동을 내실 있게 운영하자는 취지이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취지는 어디론지 퇴색해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교사들이 교육활동을 창의적으로 구안하여 적용할 여지는 거의 없고 담당 부서에서 계획한 틀 안에서만 교육활동을 진행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수업량 유연화 주간에서는 교과 융합, 교과 심화, 교과 보충 중 어느 하나의 형태로 수업을 운영할 수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교과 융합 형태의 수업을 권장하고 있다. 말이 권장이지, 거의 강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교과 보충 형태의 수업은 교사들이 개설하지도 않고 설령 개설했다 하더라도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이 보충이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교과 융합 또는 교과 심화 형태의 수업을 개설할 수밖에 없는 실정인데, 우리 학교는 교과 융합을 거의 강요하고 있다는 말이다. 교과 심화 형태의 수업을 개설하려면 업무 담당자와 피곤한 신경전을 벌여야만 한다. 교과 융합이면 어떻고 교과 심화면 어떠냐고? 수업만 충실히 하면 되지 않냐고?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러면 왜 교과 융합 형태의 수업을 강요하냐고? 이유가 있다. 교과 융합 형태의 수업을 하고 나면, 그 활동 내용을 개인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기록하고 교과 심화 형태의 수업을 하고 나면,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기록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교과 융합 형태의 수업을 하라고 강권하다시피 하는 실정이다.
개인별 세특은 그동안 잘 활용되지 않았던 항목이다. 학교마다 생활기록부의 특기사항란 잘 쓰기 경쟁이 붙은 상황에서, 다른 학교와 차별화를 노리던 어떤 학교에서 개인별 세특 쓰기를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게 야금야금 퍼져 이제는 전국의 거의 모든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개인별 세특 쓰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도 교과 융합 형태의 수업량 유연화 주간 수업을 강권하고 있다고 하겠다.
교사에 따라 개인차가 있어 교과 융합 형태를 선호할 수도 교과 심화 형태를 선호할 수도 있는데, 그 점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게 문제라 할 수 있다. 내 앞자리에 앉은 교사는 애당초 교과 심화 형태의 수업을 하겠다고 했다가 결국 교과 융합 형태의 수업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담당 부서 쪽에서 강요까지는 아니더라도 끈질기게 계속 이야기를 하니, 어쩔 수 없었던 듯하다.
그리하여 그 교사는 수업 유연화 주간에 '영화 속에 나타난 수학과 물리학 법칙'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실제로 어떤 형태의 융합이 수업 속에서 이루어질지 알 수 없지만, 주제만 보고서는 그 어떤 융합도 일어나지 않을 듯하다. 짐작건대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적용된 수학 법칙과 물리학 법칙을 찾아보는 수업이 이루어질 터이다. 그 어디에서 융합이 일어날 수 있을까? 최대한 긍정적으로 본다면, 수학과 물리학의 결합은 일어날 수 있겠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주제로 수업을 하고 나서 기록하는 개인별 세특이 애초에 그 교사가 설계한 교과 심화 형태의 수업을 한 다음 기록하는 과목별 세특보다 의미 있다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담당 부서에서 수합하여 보낸, 수업 유연화 주간 수업의 수업 주제들을 살펴보고 나서 과목 간 융합이 일어날 만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들은 거의 없었다. 억지춘향으로 과목과 과목을 결합해 놓았을 뿐이었다.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 학교는 기말고사 이후 이런 멋진 수업을 진행하려고 한다는 보여주기 식 교육활동에 그치고 말게 된다.
우리 학교 교사들과 이야기 나눠 보면, 수업량 유연화 주간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우리 학교 교사들의 특성상 불만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다. 구시렁대면서도 담당 부서에서 요구하는 바를 적당히 잘 맞춰 준다. 그러면 모든 게 두루뭉술하니 원만해진다. 학교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진다.
학교의 여러 교육활동들이 이렇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10년 전에 불었던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 열풍이나 지금 불고 있는 수업량 유연화 주간 열풍이나 모두 알맹이가 부족한, 겉보기에만 그럴싸해 보이는 교육활동이라 할 수 있다. 겉보기에는 덜 그럴싸해 보여도 속에서 진국이 우러날 수 있도록 교육활동을 설계하고 진행할 수 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겉보기가 그럴싸해야 학교가 돋보일 수 있고 그래야 학교 관리자들이 좋은 평가를 받아 좀 더 나은 자리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에 그러리라고 짐작할 뿐이다.
올 8월 말, 명예퇴직을 앞두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7월 중순 방학을 하면 학교에 나올 일이 없다. 8월 중순 개학 후 8월 말까지 약 2주 동안은 연가를 낼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다른 교사가 연속성을 가지고 2학기 수업을 이끌어갈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상황을 보고, 담당 부서에 뭐라고 얘기하기도 좀 그렇다. 곧 그만두는 마당에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교육활동에 초를 치려는 행동으로 보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여, 조용히 물러날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다만 앞으로 어떤 교육활동을 추진할 때, 치열한 내부 논의와 설득의 과정을 거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까지 경험한 학교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을 돌이켜볼 때, 내 바람대로 되기는 참으로 난망하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