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마이뉴스에서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정말 깜짝 놀랐다. '행복은 이성이 간여하는 영역인가?'와 같은 심오한 주제를 보고 깜짝 놀랐고 그런 심오한 주제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A4 여섯 쪽 분량으로 써낼 수 있는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수준에 놀랐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사로서 더 놀라운 사실은, 시험 채점위원으로 위촉된 고등학교 철학 교사들이 각자에게 배당된 100명의 학생 답안지를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 10일에 걸쳐 채점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에게 채점 수당이 단 한 푼도 지급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프랑스 교사들은 이러한 채점은 교사의 당연한 책무로 여긴다고 한다.
어떤 점이 그렇게 놀랄 일이냐고? 바칼로레아는 우리나라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견줄 수 있는 시험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학생의 수능 답안지를 채점위원의 집으로 가져갈 수 있을지를 상상해 보라. 만약 그랬다면 그 사람은 당장 구속될 수도 있을 터이다. 놀라는 게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는 수능 답안지는커녕 학생들의 수행평가 답안지조차도 교사가 집으로 가져가 채점할 수 없다. 우리 교육청에서 매년 학교로 내려보내는 학업성적관리 시행지침에 '지필평가와 수행평가의 답안지는 채점이나 확인 등의 이유로 학교 밖으로 유출할 수 없다.'라고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 채점을 이유로 답안지를 집으로 가져가는 순간 답안지 '유출'의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지필평가야 대개 OMR 카드나 OMR 시트의 형태로 컴퓨터로 처리해야 하기에 집으로 가져갈 필요가 없다. 문제는 수행평가 답안지이다. 일반적으로 수행평가를 실시한 다음 채점하고 성적을 매기기까지 시간이 그리 넉넉지 않다. 그러므로 필요하면 답안지를 채점 교사가 집으로 가져갈 수도 있어야 한다. 이게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 교사들이 수행평가를 설계할 때 채점이 쉬운 방향으로 설계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물론 이런 경향이 전적으로 답안지를 집으로 가져가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행평가의 본질을 제대로 살려 평가를 실시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대세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교사 편의 위주의 수행평가를 설계하고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수행평가 답안지를 집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리 없다. 그러나 제대로 된 수행평가를 방해하는 요소를 한 가지라도 없애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교사들의 대오각성이 반드시 필요한 문제이다. 수행평가가 중요하는 사실을 인식하고 각 과목의 특성에 들어맞고 학생들의 깊이 있는 사고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행평가를 설계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주로 5지선다형 문제로 치르는 지필평가를 보완하고자 하는 수행평가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그 누구도 수행평가를 어떻게 하는지에 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가 담당 부서나 학교 관리자들이나 관심을 그리 두지 않는다. 수행평가를 설계하는 사람은 해당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들이다. 명목상으로는 그 평가규정을 해당 교과협의회에서 검토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경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담당 교사들이 수행평가 규정을 만들어 교과 부장에게 보내면 교과 부장이 수합해서 평가 담당 부서로 보낸다. 평가 담당 부서에서는 교육청이 제시한 기본적인 반영 비율을 지켰는지 정도만 검토한 다음 그대로 결재를 올린다. 대개의 학교 관리자들은 잘 읽어보지도 않고 결재하는데, 그래야 자질구레한 데 얽매이지 않는 통 큰 관리자로 치부된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그 누가 제대로 된 수행평가를 설계하려 하겠는가. 교사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3년 전 다른 학교에서 평가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다. 평소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각 교과에서 제출한 수행평가 규정을 제대로 검토하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평가 담당 부장 교사와 교감에게 이야기했다. 각 교과에서 제출한 수행평가 규정을 살펴보았더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교감은 좀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교감과 평가 담담 부장 교사가 무어라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내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듯했다. 건의가 받아들여질 것 같았으면, 교감이 나에게 제출된 수행평가 규정의 문제점을 언제까지 정리해서, 언제쯤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자고 이야기를 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교감이 부르더니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냔다.
또 교과협의회에서 충분히 검토한 다음 결재를 올렸을 테니, 교과협의회의 결정을 존중하자는 말도 덧붙였다. 평가 담당 부장 교사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교과협의회에서 수행평가 규정을 검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교감도 너무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렇게 말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내 건의는 아주 가볍게 묵살되고, 수행평가는 교과협의회에서 올린 그대로 시행되었다. 그 당시 내가 생각한 가장 큰 문제점은 몇몇 과목에서 시행하는 서술형 수행평가였다. 서술형 평가가 수행평가로 실시되는 순간, 그 서술형 평가는 아무런 결재 과정 없이 시행되었다. 수행평가 규정에 서술형 수행평가를 실시하겠노라고 명시해 놓기만 하면, 나머지는 오롯이 담당 과목 교사의 재량에 의해 시행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시행하는 모든 평가는 반드시 결재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서술형 평가를 수행평가로 시행하는 순간, 그러지 않아도 된다. 서술형 평가 문제도, 채점 기준도 결재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담당 교사가 문제를 출제하여 서술형 수행평가를 실시하면 그만이다. 제대로 된 서술형 문제를 출제하여 수행평가를 실시하면 물론 아무런 문제도 없을 터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서술형 문제를 출제하지 않은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단답형이나 완성형 문제를 출제하거나 심지어 진위형 문제를 출제하는 경우도 보았다. 진위형 문제는 쉽게 말해 OX 문제라고 생각하면 된다. 5지 선다형보다 못한 수준의 문제이다. 이 모든 게 결재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결재 과정만 거치면 얼마든지 거를 수 있지 않겠는가.
또 제대로 된 서술형 문제를 출제했다 하더라도 문제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1반에서 8반까지 동일한 서술형 수행평가 문제로 평가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수행평가를 실시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럴 수가 없다. 해당 과목 시간에 수행평가를 실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전에 서술형 수행평가를 보는 반과 오후에 수행평가를 보는 반이 생긴다. 어떤 경우는, 어느 반은 오늘 수행평가를 보고 다른 반은 내일 수행평가를 보아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때 담당 교사들은, 먼저 수행평가를 본 반 학생들에게 다른 반 아이들에게 절대로 수행평가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렇다면 수업 시간표를 바꾸든지 해서, 1반에서 8반까지 동시에 서술형 수행평가를 실시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이 또한 문제가 된다. 학업성적관리 시행 지침에 '수행평가는 일제식 정기 지필평가 방법으로 실시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문제로 동일한 시간에 평가를 실시하면 '일제식 정기 지필평가 방법'으로 수행평가를 실시한 꼴이 되고 만다. 지침에 정면으로 배치되는데, 실제로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드러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지 않을 뿐이다. 또 학생들도 이렇게 이루어지는 수행평가에 거부감을 크게 가지지는 않는다. 수행평가의 본질을 살려서 실시하는 수행평가는 학생들에게 더 큰 부담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행평가를 이런 식으로 실시해서 되겠는가? 당연히 안 되지 않겠는가? 모든 평가는 공정함이 생명이다. 단 한 번이라도 위에서 이야기한 방식으로 수행평가가 이루어진다면 수행평가의 공정성은 의심받아 마땅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문제점을 모르지 않을 텐데,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나도 이젠 모르겠다.
이 학교로 옮겨 와서 학교 관리자들에게 여러 번 수행평가를 포함하여, 평가 체계에 전반에 관한 건의를 했다. 그런데 잘 고쳐지지 않는다. 그냥 관행에 따라 흘러가는 느낌이다. 학생들은 오늘도 각종 수행평가에 시달리고 있다. 어떤 학생은 수행평가 지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수행평가의 본질을 잃어버린 수행평가로 학생들의 지옥을 만드는 현실이 지금 펼쳐지고 있는 듯하여 매우 안타깝다.
수행평가 이야기가 길어졌다. 그만큼 아쉬운 점이 많다. 프랑스 교사들이 수험생 답안지를 집으로 가져가 채점하는 얘기로 돌아가 글을 마무리해 보자.
프랑스에서는 가능한데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까닭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신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에서는 일단 교사를 신뢰하는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교사를 불신하는 데서 이런 차이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런 차이가 생긴 일차적인 원인은 우선은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 탓이고 그다음은 교사들의 책임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신뢰가 정착되지 못한 사회라 할 수 있고 교사들이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신뢰를 받을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말이다.
또 프랑스 교사들이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고 100명의 답안지를 10일 동안 채점한다는 이야기는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걸 교사의 당연한 책무로 여길 대한민국 교사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만일 그런 대한민국 교사가 있다면 그 사람은 필시 다른 교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현재 교직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 수고의 대가를 받지 않고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데 깜빡 잊고 초과근무 신청을 하지 않았다면 웬만해서 초과근무를 하지 않는다. 초과근무를 신청하고 그다음날 일을 처리한다. 이런 상황이니 보수를 받지 않고 100명이나 되는 수험생 답안지를 10일 동안에 걸쳐 채점하겠다는 교사가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수행평가와 교직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 교육 체계 전반을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교육 체계를 이대로 내버려 둔다고 당장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지는 않겠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며 이끌어 나가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