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훈장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by 꿈강

정년 퇴임을 1년 정도 앞둔 고등학교 교사다. 앞으로 1년 동안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근무하면 퇴임할 때 나라에서 훈장을 준다. 교사로 33년 이상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 근무하면 훈장을 준다고 한다. 앞서 은퇴한 무수한 선배들도 말없이 훈장을 받고 떠났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


스멀스멀 의문이 밀려든다. 내가 훈장을 받아도 되나? 뭐, 특별히 한 게 없는데... 국어 선생답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훈장’을 어떻게 풀이하고 있는지 찾아보았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내가 훈장을 받아도 될 만하다는 근거를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검색했다.

훈장(勳章) 「명사」 『법률』 대한민국 국민이나 우방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을 위하여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그 공로를 기리고자 나라에서 주는 휘장. 나라에서 주는 포상 가운데 으뜸가는 훈격(勳格)으로, 무궁화 대훈장, 건국ㆍ국민ㆍ무공ㆍ근정ㆍ보국ㆍ수교ㆍ산업ㆍ새마을ㆍ문화ㆍ체육ㆍ과학 기술 훈장의 열두 가지가 있다.


사전의 뜻풀이를 보니, 훈장을 받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지 않는가!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뭐 내세울 만한 공적을 세운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동료 교사들은 교육장이 주는 상이나 교육감이 주는 상을 심심치 않게 받았다. 직원회의 석상에서 학교장이 그런 상들을 전달하는 경우를 종종 보며 박수를 친 경험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퇴직할 때 훈장을 받아도 마땅할지 모르겠다. 나름대로의 공적이 있을 터이므로.


그런데 나는 그런 상을 받은 적이 없다. 딱 한 차례 교육감상을 받았는데, 무슨 특별한 공적이 있어서 받은 게 아니라, 교과 연구회 활동 실적으로 받은 상이다. 엄청난 활동을 한 것이 아니다. 연구회 활동 회원 숫자를 채워야 한다고 해서 이름을 빌려주었다가 받은 상이다. 그러니 공적과 무관하게 받은 상이다.

그래서 퇴직할 때 훈장을 받지 않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를 않는다. 그런데 학교라는 조직에서 그게 또 그리 쉽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다. 훈장 안 받는 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면,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학교라는 조직이 좀 그런 면이 있다. 직접 겪은 일이다. 학교마다 연구학교라는 것을 운영한다. 모든 학교가 연구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학교 운영 신청을 한 다음, 연구학교로 지정받아야 비로소 운영할 수 있다.


연구학교를 운영하는 허다한 학교에서 근무해 보았지만, 도대체 그 효용을 알 길이 없다. 왜 하는지를 모르겠다. 담당자 몇 명이 조몰락조몰락한 다음 그럴듯한 연구학교 운영 보고서를 만들어 교육청에 보고하는 것으로 연구학교 운영이 마무리되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아 왔다.


그래서 이번 학교에서는 연구학교 운영에 동의하지 않고 연구학교 운영이 마무리된 다음, 참여자들에게 주는 연구 점수도 받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연구학교 담당자가 쪼르르 달려와서 동의를 부탁하기에, 모든 구성원이 동의하지 않아도 연구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것 아니냐니까, 그렇단다. 그럼 그렇게 하자고 부탁에 부탁을 거듭하자 그러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연구학교 운영이 끝난 뒤, 나에게도 연구 점수가 부여되었다. 담당자에게 나는 연구학교 운영을 위해 한 일이 없으니, 연구 점수 부여를 취소해 달라고 했다. 곤란해했다. 이미 절차가 마무리되었단다. 그냥 받으면 안 되겠냔다. 하도 곤란해하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냥 연구 점수를 받기로 했다.


퇴직 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나는 훈장 안 받겠다고 하고, 담당자는 왜 안 받느냐고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받으라고 실랑이가 벌어질 듯싶다. 받기 싫다고 하는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인정해 주면 좋은데, 학교에서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중뿔난 행동으로 생각하고 그런 사람이 그 학교 조직에 없었으면 하고 바라는 듯하다.


이상한 건 또 있다. 올 8월에 퇴직하는 동료가 있는데, 퇴직 훈장 신청할 때 필요한 공적 조서를 직접 쓰라고 업무담당자가 그 동료에게 말했단다. 자신의 공적을 자신이 직접 써서 훈장을 받는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른 조직에서도 이렇게 하는지 몹시 궁금하다.


학교에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왜 사람들의 생각을,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뭐,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아마도 개인보다 전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존의 관행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내가 교직을 처음 시작한, 1980년대 후반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존의 틀을 깨고 개인의 생각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가 학교 사회에 자리 잡아야 학교가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전히, 퇴직할 때 훈장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망설여진다. 주위 동료들에게 물으면 웬만하면 그냥 받으란다. 받아둬서 나쁠 게 없다고 한다. 뭐, 그걸 모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꺼려진다.


특별한 공적이 없는데 훈장을 받는 게 마땅한지에 대해 의문이 맴돈다. 또 내가 근무하는 지역에서 퇴직 훈장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는 이야기를 아직까지는 듣지 못했다. 인터넷 뉴스를 통해 어떤 대학 교수와 어느 교장이 퇴직 훈장을 거부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뿐이다. 오죽 희귀한 일이면 인터넷 뉴스에까지 실리랴!


1년 후에 닥칠 일이라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년 후, 퇴직 훈장 받으라는 업무담당자와 학교 관리자들에게 훈장 받지 않겠다는 내 생각을 전하며 그들과 실랑이하는 생각만 해도 피곤해진다.

내 생각대로 칼같이 퇴직 훈장을 거부하는 게 마땅한지, 아니면 중뿔나 보이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허허롭게 훈장을 받는 게 더 나은 길인지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정말 결정하기 어렵다.


관행에 따라 으레껏 퇴직할 때 주는 훈장, 받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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