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 어때요
존 브록만 엮음, <위험한 생각들>
아마도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게만 있을 것이다. 아, 이런 생각도 편견일 수 있겠다. 동물이나 식물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질문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첫 진술을 수정해야겠다.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다.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대체로 동의할 성싶다. 우리나라 부모는 학교 갔다 온 아이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들었지.”라고 말하는 반면, 유대인 부모는 “오늘 선생님께 무얼 질문했니?”라고 말한다고 한다.
이런 우리나라 문화 탓인지, 고등학교에서 수업에서도 학생들은 질문을 많이 하지 않는다. 아니 거의 하지 않는다. 교사의 말을 잘 들으며 필요한 것을 꼼꼼하게 적는 데에 열중한다. 1970, 80년대라면 모를까(그때도 그래서는 안 될 것 같기는 하다.), 요즈음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은 이래서는 안 되지 않을까?
질문이 중요한 시대다. 요즘 대세 중의 대세라 할 수 있는 챗GPT에게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챗GPT의 대답이 달라진다고 한다. 살짝 과장하면, 질문하는 능력이 생존과 직결된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수업 중, 농담으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시대를 넘어 문자생존(問者生存)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묻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의미로.
존 브록만(John Brockman)이 엮은 이 책은 당대 최고의 석학 110명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위험한 생각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 다음, 그 석학들의 대답을 정리한 것이다. 엮은이는 <위험한 생각들(원제: What Is Your Dangerous Idea?)>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당신에게 사회적, 윤리적, 정서적으로 위험한 생각은 무엇인가? 과학적으로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적으로 올바르기 때문에 위험한 생각은 어떤 것이 있는가?
또, 책의 도입부를 쓴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모든 가치와 지식’에 대해 ‘엄밀’하게 ‘도전’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스티븐 핑커의 말을 들어보면,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욕망이 소용돌이칠 수도 있을 터이다.
이 책에는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는, 놀라운 정도로 다양한 글들이 실려 있다. 어떤 글은 아주 사색적이며, 어떤 글은 아직 인정되지 않은 위험을 다루고 있다. 인간은 실제로나 비유적으로나 우주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코페르니쿠스의 독창적이고 위험한 생각과 비슷한 글도 여럿 있다.
자, 그럼 석학들이 생각하는 110가지의 ‘위험한 생각’ 중에서 흥미롭고도 도발적으로 다가오는 몇 가지 생각들을 만나 보자. 선정 기준이 뭐냐고? 뭐, 순도 100% 나의 주관과 끌림에 바탕했음을 밝힌다. 이 책을 읽는 이마다 끌림의 정도가 다르리라. 이 책의 치명적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처음 선택한 생각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 사이에 질적인 차이는 없다.’이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연구소 연구원이며 생태학, 진화생물학, 심리학, 신경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렌느 페퍼버그(Irene Pepperberg)라는 석학의 이야기다. 뭐라고? 그렇다면 ‘나’와 박테리아가 질적으로는 똑같다는 이야기? 읽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사람 주장의 요체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는 양적인 차이는 있지만 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이 생각은 왜 위험한가? 석학의 말을 직접 듣는 것이 좋겠다.
그렇다면 내 생각은 왜 위험한가? 그것은 아마 내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과학과 비과학을 막론하고,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이 도전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싶다. 인간과 인간 이외의 존재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면, 당장 고기를 먹는 행위가 꺼려질 수 있다. 본질적으로 같으니 결국 인간이 인간을 먹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간의 이익을 위해 숲을 남벌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지구상의 공기, 토양, 물을 오염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위험한 생각일 수밖에.
두 번째로, ‘모든 물체가 마음을 가지고 있다.’를 선택했다.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이자 사이버 펑크 선구자라는 다양한 타이틀을 지닌, 루디 루커(Rudy Rucker)라는 석학의 생각이다.
이 생각을 선택한 까닭은 우리 손녀딸 때문이다. 우리 손녀딸은 모든 사물을 의인화한다. 애착 인형인 물개 인형 ‘보노’를 잘 때마다 끼고 자며 ‘보노야, 보노야’하고 부르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꽃을 보면 ‘꽃이야’, 돌멩이를 보면 ‘돌멩이야’, 숟가락을 보면 ‘숟가락이야’라고 부른다. 우리 손녀딸도 세상 모든 사물에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이 생각에 끌렸던 듯싶다.
자, 다시 책 속으로 돌아가 보자. 모든 물체에 마음이 있다고 생각을 ‘범심론(汎心論)’이라 한다. ‘범신론(汎神論)’과 발음이 비슷하니 유의하자. 한 끗 차이지만, 의미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니까. 범심론에서는 별, 언덕, 의자, 바위, 피부 박피, 분자 이들 각각은 인간과 같은 내면의 빛을 가지고 있으며, 단독적인 내적 경험과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런 생각이 위험한 까닭은 무엇일까? 앞에서와 같이 석학의 말을 직접 듣는 것이 좋겠다.
범심론은 다른 형태의 고등한 의식처럼, 일상의 거래에서는 위험하다. 만약 낡은 자동차가 새 자동차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새 차를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나라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죽은 후에도 육체에 마음이 남아 있다면, 죽음은 덜 중요한 문제가 되고, 정부는 나를 복종하도록 위협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아하, 그렇다면 ‘모든 물체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범심론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생각일 수밖에 없다. 나라 경제가 도탄에 빠질 수도 있고, 정부가 사람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되어 온 사회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겠기에 말이다. 그러나 한편, 범심론적인 생각을 가지면 검소한 삶을 살 수 있을 듯도 하고 정부가 사람을 함부로 통제할 수 없게 되니 개인이 존중되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110개에 달하는 ‘위험한 생각’ 중 겨우 두 개에 대해서만 생각을 해 보았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촉매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시간을 내서 꼭 읽어 보기를 정말로 강력히 추천한다. 생각이 깊이를 확장하고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뉴욕 타임스(New Yokr Times)의 찬사를 들으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지리라.
‘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이야말로 당신에게 가장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