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그럴 거면 회의는 왜 하나?
아침 출근길에 연구부장을 맡고 있는 교사를 중앙 현관 앞에서 만났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월요일 아침이다. 지난 금요일에 치른 국어 교과 언어와 매체 과목에서 정답이 3개인 문항과 2개인 문항이 각각 하나씩 나왔다고 한다. 담당 교사가 출제를 할 때 실수를 한 것이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기에, 교과협의회를 열어 논의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알았단다. 점심시간 직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연구부장 교사를 다시 만났다. 아침에 말한, 언어와 매체 건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는다. 교과협의회에서 논의할 예정 아니냐고 했더니, 시간이 없어서 국어 교과 선생님들에게 일일이 의견을 묻는다고 했다.
그래서 복수 정답으로 인정하여 처리하면 좋겠다고 대답하고 내 교무실로 올라왔다. 얼마 후 학업성적관리위원회가 열리니, 해당 교사들은 참석해 달라는 담당 교사의 메시지가 왔다. 나는 학업성적관리위원이 아니므로 거기에 큰 관심은 없었고 기말고사 후 통상적으로 열리는 성적관리위원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성적관리위원회는 언어와 매체 시험 문제와 관련하여 특별히 열린 것이었다. 그 성적관리위원회에 참석했던 교사의 전언을 듣고 맨 처음 든 생각은 '그럴 거면 회의는 왜 하나?'였다. 그 교사가 전한 성적관리위원회의 회의 과정은 이랬다.
우선 참석한 모든 위원의 의견을 물어보았다고 한다. 의견이라고 해보았자, 딱 두 가지이다. 하나는 복수 정답으로 인정하여 처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잘못 출제된 두 문항을 다시 출제하여 재시험을 보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문제의 소지는 있다. 복수 정답으로 인정하여 처리하면, 정답률이 대폭 상승하여 그 문항의 변별력이 없어지게 된다. 재시험을 보면 재시험 문항의 난이도를 잘못 출제된 문항의 난이도와 비슷하게 맞추는 게 쉽지 않고 또 잘못 출제된 문항을 맞힌 학생들이 재시험 문항은 틀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아무튼, 참석 위원의 의견을 모두 다 들어본 결과 70% 정도의 위원들이 복수 정답으로 인정하여 처리하자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논의 과정을 다 들어본 교장이, 불쑥 재시험을 보는 게 낫겠다고 했다고 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런 경우는 재시험을 보아야 하니, 재시험을 보는 것으로 결정한다.'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그것으로 회의가 끝났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복수 정답으로 처리할 수도, 재시험을 보는 것으로 결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결정 과정이다. 교장은 이미 재시험을 보는 것으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면서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소집했다. 왜 그랬을까? 회의에 참석한 대다수 위원의 의견을 아랑곳하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결론을 내리는 회의를 굳이 왜 소집했을까?
답은 너무 뻔하다. 민주적 절차를 거쳤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 아닐까? 복수 정답으로 처리하는 게 옳은지, 재시험을 보는 게 마땅하지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교육청에서 보내준 학업성적관리지침에도 어떻게 처리하라는 명시적인 규정은 없다. 단위 학교에서 논의를 거쳐서 민주적으로 결정하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학업성적관리위원회 결과 보고'라는 내부결재 문서를 열어 보니, 아주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 이 사안이 처리된 것처럼 보인다. 실상은 70% 정도 되는 위원들의 의견을 뒤집어 엎고, 교장이 결정한 사안인데 말이다. 내부결재 문서 어디를 뒤져보아도, 사안이 교장 독단으로 처리되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지 않다. 아니 적시할 수 없었고, 적시해서는 안 되었을 터이다. 민주적 절차를 거쳤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니 말이다.
이번 건의 경우, 교장은 이미 재시험을 보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 결론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학업성적관리위원회에서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를 설명하고 위원들에게 동의를 얻어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위원들의 의견을 실컷 듣고 나서, 대다수 위원들의 의견과 동떨어진 결론을 내렸다. 학교의 의사결정 과정이 대부분 이렇다. 35년 동안의 교직 생활 동안 교장의 생각에 반하는 방향으로 일이 추진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교장들이 늘 절대적으로 옳은 결정을 하는 혜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이 문제이랴. 그러나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교장도 당연히 그냥 보통의 인간이다. 실수를 저지르고 잘못된 판단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데 학교에서의 의사결정 과정만을 보면, 교장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힘을 지닌, 결코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는 완벽한 존재인 듯 여겨진다. 교장 한마디에 모든 갑론을박이 일시에 정리되고 갑자기 교장이 제시한 일의 처리 방향이 절대적으로 옳은 방향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무수히 목격했다.
교장들이 그럴 때마다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하긴 교직 생활 초기에는 그러기도 했다. 교장의 결정에, 학교의 결정에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자주 물었다.
그랬더니 어느덧 나에게는 말이 많고 불평불만이 많은 교사라는 낙인이 찍혔다. 학교를 옮길 때가 되었을 때 내가 가고 싶은 학교의 교장이 까칠한 교사를 받기지 않으니 다른 학교로 가라는 선배 교사의 권고를 받고 그렇게 한 적도 있다.
1989년에 시작한 교직 생활을 2023년에 바야흐로 마무리하려 한다. 그동안 학교는 조금씩 변화해 왔다. 변하지 않은 것 중 하나가 교장의 막강한 힘이다. 교직 생활 초기에는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적 절차도 거치지 않고 교장의 생각대로 학교 일이 처리되었지만 이제는 형식적인 민주적 절차는 갖추려고는 하니 약간은 변화했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민주적 절차를 가장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박수를 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러가는 마당에 뾰족한 방법은 없고 우리나라 모든 교장들이 지혜로운 철인이기를 빌어본다. 이렇게 쓰고 나니, 씁쓸함이 더해진다. 마치 커다란 바위를 쪼개고 나와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피어나기를 바라는 듯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