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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탐험가 Jul 18. 2022

호주에서는 섣부른 장유유서를 금합니다.


해외에서 지내는 일은,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나이에 새로운 경험과 감정을 더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날씨도 환경도 완전히 다른 곳에서 말도 온전히 통하지 않고 살아온 방식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큰 즐거움을 준다.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인연들을 만나 그들이 나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채워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다지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불쾌한 경험이 뒤따르기도 한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한데, 해외로 훌쩍 떠났다고 해서 인생이 다 재밌고 멋진 이벤트로만 가득할 리는 없는 법. 이 진리를 입증이라도 하듯 어느 날 나의 골드코스트 생활에 빌런 하나가 나타났다. 물론 처음엔 빌런인 줄도 몰랐지만.


친구를 사귀는 데에 아무런 편견이 없는 나의 플랫 메이트 앤디는 20대부터 80대까지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한 다양한 친구와 지인을 두고 있다. 앤디의 많은 친구와 지인들은 종종 앤디의 집을 찾고는 했는데 그중에 60대의 우리 아버지 뻘 되시는 '데일’이라는 호주 아저씨가 있었다.


강한 호주 억양을 가진 수다스러운 이 아저씨는 앤디가 관광용 보트 티켓을 팔 때 손님으로서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앤디와 집도 가깝고, 몇십 년을 함께 산 아내와 이혼한 후 골드코스트로 갓 이사를 와서 많이 적적한 탓인지 그는 종종 앤디를 방문하여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 가곤 했다. 우리 집을 꽤나 자주 방문하다 보니 나 역시 데일 아저씨와 마주치는 일이 많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자연스럽게 아저씨와 인사를 건네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앤디, 앤디의 친구 시모나와 시모나의 친구, 그리고 나까지 네 사람이 함께 와인을 한 잔 기울이고 있었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데일 아저씨는 방충망만을 닫아둔 현관문 너머로 고개를 빼꼼하고 인사를 하더니 우리의 모임에 즉흥적으로 합류하였다. 60대 할저씨의 합류에도 전혀 불편한 기색 없이 모두가 그를 잘 받아주었고, 나 역시 와인 잔을 하나 더 가져오며 손님으로 방문한 아저씨를 맞이했다.


총 다섯 명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 어느새 모두의 와인 잔들은 빠르게 비워져 갔다. 내 친구들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에 놀러 온 손님들이다 보니 나는 호스트의 마음으로 모두의 술잔에 와인을 따라주었다. 장유유서의 원칙대로 가장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의 잔부터 채웠음은 물론이다. 이후에 다른 친구들의 잔도 모두 채워주었으나 문득 데일 아저씨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말야, 왜 자꾸 내 잔을 채워주는 거야? 그것도 가장 먼저."

"손님들 잔이 비었으니 채워주는 게 예의죠. 그리고 한국은 레이디 퍼스트가 아닌 올디스트(the oldest) 퍼스트 문화가 있거든요."


가장 연로한 본인의 잔에 술을 가장 먼저 따라 주는 게 흥미로운 문화 차이로 보였나 싶어 질문에 대답을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나. 다음날 앤디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Ji, 너 혹시 데일에게 관심이 있는 거 아니지?"

????... 앤디의 충격적인 얘기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데...

"무슨 소리야?? 그 사람은 우리 아빠뻘이라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글쎄 데일이 나한테 연락을 해서는 ’Ji 가 자신의 술잔에 술을 계속 따라주면서 나를 꼬셨다’라고 하길래 나는 따로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지."

"앤디... 나 토할 거 같아. 난 단지 한국의 늙은이 퍼스트 문화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그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네잖아!!"


로마에 갔으면 로마법이나 따르고, 호주에 갔으면 장유유서고 나발이고 가만히나 있을 것을. 괜히 돼도 안 한 친절을 베풀다가 백발노인네를 꼬시려 술을 따라준 여자 취급을 당하니 얼마나 불쾌하던지.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너무나 불쾌한 나머지 그 이후로도 데일 아저씨가 우리 집을 방문할 때마다 그를 피해 다니며 그와 말 한마디조차 섞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앤디와 내가 에어리 비치로 여행을 갔을 때 앤디가 이사 날짜 문제로 숙박을 알아봐야 하는 데일 아저씨에게 자신의 방을 빌려준 일이 있었는데, 그때 또다시 작은 사달이 났다. 우리가 여행에서 다녀온 사이에 이 할배가 글쎄 베란다 구석에 널어둔 내 속옷을 접어서 내 방에 가져다 둔 것이다. 왜 굳이 사이도 좋지 않은 나의 속옷을 직접 개켜서 내 방에 갖다 두는 것인지,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어차피 나와는 대화할 일조차 없으면서도 앤디를 방문할 때마다 그를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나의 태도에 화가 났는지 이 할배가 갑자기 우리 집에 찾아와서는 나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느냐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극심한 호주 억양의 영어로 근 15분 이상을 쉬지 않고 혼자서 우다다다- 언성을 높이며 떠들어댔다. 그리고 이 할배의 길고 긴 분노의 이야기 끝에 나에게 어떤 질문이 주어졌다. 마치 수능 외국어 영역 17번 문항, '남자의 설명을 듣고 그의 마지막 질문에 알맞은 답을 하시오'처럼 말이다. 그는 나의 답변을 기다린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고,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 문제에 당황한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 Pardon...?"


‘네... 지금까지 15분 넘게 떠드신 거 하나도 못 알아들었는데, 지금 뭐라고 하신 거죠..?’를 모두 함축하는 한 마디 영어에 그는 더더욱 화가 나서는 나의 영어 실력까지 비웃으며 비아냥 거렸다. 상당히 불쾌하지만 그래도 이럴 땐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참... 그 사람의 ‘화가 난 기운’은 오롯이 나에게 전달되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사람이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온전히 알아듣지 못해서 100% 이상으로 화가 날 것이 한 40-50% 수준의 분노로 그쳤다. 이것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원.


 일이 있은 후로 나는 내가 베푸는 친절과 예의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졌다. 타국에서의 삶은 외로움과 서바이벌을 기반으로 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도 더 타인들에게 손쉽게 친절해지는 나를 발견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노인네가 이상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나의 선의가 누군가에게  오해를 낳을  있고, 그것이 나에게 궁극적으로는 불쾌함을 남길  있다는 . 내가 베푸는 친절이 반드시 나에게 기쁨과 보람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겪고 나니, 호의와 친절은 상황을 보고 사람을  가며 아껴서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삭막한 결론이지만 때로는 이런 불쾌한 경험이  자신을 조금 메마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씁쓸하지만 삶이  나를  순간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는 못 한다. 애석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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