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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탐험가 Jul 24. 2022

‘축배’가 없는 이란의 無음주가무 파티



음주가무의 민족 한국인. 술을 한 잔 마시고 술기운이 올라온다 싶으면 신나게 노래도 부르고 춤을 춰야 모름지기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는 법. 개인적으로는 음주가무보다는 음주 위주의 유흥을 더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가무에 있어서도 어디 가서 딱히 엄청 빼는 스타일도 아닌데. 이런 나를 당황하게 만든 모임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이란인들의 파티 모임이었다.


음식점에서 직원과 손님으로 만난 후 나와 아주 절친한 사이가 된 파티마는 종종 그녀의 친구들 모임에 나를 초대하곤 하였다. 파티마가 이란 출신이다 보니 아무래도 이란 친구들과의 모임이 잦을 수밖에 없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파티마의 이란 친구들과도 안면을 익혀가기 시작했다. 그중, 나와 동갑내기인 자라라는 친구가 호주 이주 1년 만에 영주권을 취득하게 되어 그녀의 친구들을 모두 불러 파티를 열었다.


각자 먹을 음식은 알아서 갖고 오라는 정나미 없는 서양식 파티 문화와 달리, 한국의 잔치집처럼 먹거리가 가득하고 흥겨운 이란의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던 자라의 영주권 파티.


‘역시 이란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처럼 정이 넘쳐.

은근 이란 문화가 한국 문화랑 비슷한 데가 있다니까.’


잔칫집에 가면 가득 차려진 잔칫밥을 배 터지게 먹고, 잔칫집 주인을 듬뿍 축하해주고 오면 되는 것이 우리의 문화 아니던가. 나는 자라에게 진심 어린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맛있는 이란 음식들을 접시에 가득 담아 와인 한 잔과 함께 구석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손님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자 나는 ‘식사’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과 이란의 문화가 비슷하다는 나의 생각은 여기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파티가 무르익고 많은 손님들이 모이자 그들은 음식은 간단히만 즐기고 이내 특유의 구성진 가락이 돋보이는 이란의 노래에 맞춰서 거실 중앙에 모여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이른 시각에 도착한 탓에 처음엔 소수의 몇 명만이 모여서 춤을 추고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고 서른 명도 넘는 사람들이 모이자 그들은 말 그대로 술은 ‘목을 축이는 정도’로만 들이켠 후 음악에 맞춰서 신나게 춤을 추었다. 선 음주 후 가무가 익숙한 한국인에게 이것은 도무지 적응하기 힘든 분위기인데...


파티는 6시에 시작했고 아직 7시도 되지 않았는데, 다들 이렇게 만취한 사람처럼 신나게 춤을 출 수가 있다니. 그리고 그중에 가장 신나서 흥판을 벌인 사람은 나의 친구 파티마였다. 어린 아들을 키우느라 파티 따위에 갈 수 없는 흥녀 파티마는 그 누구보다 신나게 몸을 흔들며 나에게 다가왔다.


“언니, 렛츠 댄스!” (*파티마는 나를 언니라 부른다)

파티마...  너처럼 을 추려면 술이 아주 많이 필요해.   취해야 한다고.”


내가 어디 가서 춤추고 노래하라면 멋쩍어서 그렇지 아주 내빼는 스타일은 아닌데... 살짝 흔들어대는 것이 아닌  정신에 저렇게까지 열정을 다 하는 춤은  익숙하지 않은 탓에, 나는 빨리 취해버리기 위해 술을 마시는 속도를 높였다.


술이  편도 아닌데, 이런 날은   이렇게 취하지를 않는 거니...’


급기야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이들이 맨 정신의 광란의 댄스를 추는 지경에 이르자 이제는 모르는 사람까지 나에게 와서 ‘한 판 땡기시라’며 재촉을 했고, 아직 취기가 춤을 출 만큼 오르지 않은 내 마음만이 바빠지고 있었다. 그러나 음주가무 민족의 기개를 펼치지 못하고 이렇게 쭈그려 앉아있을 수는 없는 법. 결국 대충 취했다 치고 춤판에 어울려 보았지만, 역시나 술이 아닌 분위기에 취해 신나게 즐기는 이란 사람들의 흥을 완전히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취해서가 아니라 신이 나서 춤을 추는 사람들


술 없이도 이렇게까지 이들이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비결은 도대체 뭘까? 사실 이란에서는 술을 파는 것도 사는 것도 불법이다. 그러면 이란에선 술을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냐는 나의 질문에 자라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그래서 사람들이 집에서 몰래 술을 빚어 마시기는 해.”


물론 술을 직접 빚어서 마시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란인들은 흥청망청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음주가무’의 문화가 불가능한 것이다. 대신 그들은 마시지 않은 술만큼 그들 내면의 흥을 더더욱 돋워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이란의 음악이 한국의 뽕짝 트로트만큼이나 구성지고 신나는 가락을 지닌 것도 어쩌면 사람들이 술에 취하지 않고도 흥에 겨워 춤을 출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술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술 없이도 신나게 놀 수 있는 방법이 발달한 이란의 파티 문화. 물론 그날 파티에 모인 이란 사람들은 이미 호주로 이주를 했기 때문에 히잡도 벗어던지고 술도 마시며 그들의 새로운 환경에서의 삶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지만, 술에 취하지 않고도 흥겨움을 표할 수 있는 이란인들 특유의 건강한 성질은 여전히 지니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날 파티가 끝난 후. 모두들 운동을 한 듯 신나게 땀을 빼고 건강하게 집에 돌아갔는데 그 무리에 껴있던 유일한 한국인 한 명만이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그래, 술 없이도 신나게 잔치를 즐기고 흥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나의 기쁨을 오롯이 몸으로 표현하고 나의 즐거운 기분을 맑은 정신으로 만끽하는 것, 사실 그거 참 괜찮은 방법인데. 나 역시 ‘축배’를 들지 않더라도 나의 순간들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땀이 날 때까지 신나게 춤을 출 수 있는 이란인들의 건강하고 흥겨운 방식이 아주 좋은 예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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