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코스트의 유명 관광 상품 중 하나는 바로 고래 투어이다. 골드코스트의 겨울은 바다에서 험프백 고래를 직접 볼 수 있는 계절로서, 즐길 거리가 없는 겨울 시즌을 빛내주는 꽤나 값진 관광 상품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골드코스트를 방문하기 전에 아는 분으로부터 호주에 가면 꼭 한 번 험프백 고래를 보라는 추천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분은 많은 여행을 다니셨던 분인데, 많은 여행 경험 중에서도 험프백 고래를 직접 본 일은 손에 꼽는 인상 깊은 일이었다며 나에게 호주에 가면 꼭 고래를 보러 갈 것을 강력히 추천하셨다. 이러한 추천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 역시도 거대한 해양 동물을 자연에서 직접 마주하고픈 마음에 호주에 가면 꼭 한 번은 고래를 보러 가리라 다짐을 하고 있었다.
겨울이 가기 전 어느 날, 앤디는 자신의 지인인 카를로스에게 그의 보트를 타고 고래를 보러 가자고 부탁했다며 나에게 동행을 제안하였다. 사실, 나는 고래의 이동 경로를 알고 있는 고래 투어 전문 회사의 티켓을 구매하여 고래를 볼 생각이었지만, 직접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 역시 흥미로운 경험일 수 있겠다 생각하여 앤디의 제안에 동참하였다.
“그런데 카를로스 아저씨는 고래가 어디서 나타나는지는 알고 있는 거야?”
“글쎄, 요즘엔 바다에 고래가 자주 나타나니까, 일단 바다 멀리 나가면 볼 수 있을 거야.”
나는 바다에서 뛰노는 고래를 볼 생각에 출발 전부터 두근두근대며, 뱃멀미를 할까 봐 약까지 챙겨 먹고 원정의 채비를 마치고 승선하였다. ‘아마’ 고래를 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걸고 모인 고래 원정대. 그렇게 카를로스 아저씨의 작은 보트가 출렁이는 파도 결을 해치며 먼바다를 향해 출항을 알렸는데...
하지만 출항을 한 이후로 1시간이 넘게 기다려도 고래는커녕 물고기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그날따라 거셌던 파도 때문인지 나는 고래고 나발이고 속이 울렁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앤디, 우리 고래를 볼 수나 있을까. 나 지금 토할 거 같아.”
“지, 지평선을 바라봐. 먼바다를 바라봐야 멀미가 나지 않아.”
고래를 볼 거라는 설렘은 온 데 간 데 없고 난 뒤집어진 속을 달래기 위해 멀고 먼 지평선을 끊임없이 바라보기만 하였다. 하지만 지평선 바라보기는 정말이지 내 멀미 완화에 아무 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결국 난 그토록 바라던 고래가 아닌 내 몸 깊은 곳에서부터 쏟아져 나오는 위액만을 조우할 수밖에 없었다. 내 몸속의 모든 것을 쏟아낸 이후로는 고래가 나타나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못 한 채 갑판 한 구석에 말 그대로 실신해 있다가 아무런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고래를 보러 갔다가 고생만 하고 온 나의 결론. 역시나 약은 약사에게 고래는 고래 투어 전문가에게 맡기자는 것. 결국 나는 ‘간편하고 손쉬운 선택’으로 다시 한번 더 고래 투어를 떠났다. 커다란 투어 보트에 몸을 싣고 수십 명의 사람들과 떠나는 고래 관광 투어. 투어 회사에서는 ‘고래를 못 보게 될 경우 환불 보장’을 내 걸었을 정도로 고래 관람을 장담했지만, 한 번의 쓴 맛을 경험해서인지 고래는 보지 못 하고 돈만 돌려받는 그 재수 없는 사람이 내가 될까 봐 얼마나 초조하던지. 과연 내가 이번엔 진짜로 고래를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꽤나 먼바다로 나간 후 얼마 되지 않아 드디어 꼬리를 살짝씩 내보이며 관람객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험프백 고래. (역시 돈을 쓰길 잘했어!) 사람들은 고래의 꼬리가 보이기만 해도 흥분을 하며 모두가 갑판으로 모여들었고 고래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 어디 금괴라도 묻힌 듯 고래가 나타났다는 곳을 집중해서 바라보던 그 순간, 드디어 험프백 고래 하나가 보트 바로 앞에서 거대한 몸집을 드러내며 수면 위로 뛰어올랐다!
나의 눈 앞에서 뛰어 오른 후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사라진 험프백 고래. 그 찰나의 황홀한 순간에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함성을 내지르는 자동 버튼이라도 눌린 듯 다 같이 탄성을 터뜨렸다. 고래가 나타난 아주 짧은 몇 초의 순간이 뭐라고 그렇게나 큰 감동을 주는지, 모든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기뻐하였고, 나 역시 마음이 들떠서는 우연히 포착한 동영상 속 고래의 모습을 수십 번이고 재생하며 그 몇 초의 감동을 쉴 새 없이 복기하였다.
나에게 고래란 무슨 의미였을까? 개인적으로는 동물원에 있는 동물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신병이 들어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작은 공간에 갇혀 무기력함에 누워있는 동물들을 보면 그 삶의 답답함이 느껴져 동물을 보는 것이 마냥 즐겁지가 않다. 하지만 대자연 속에서 고래를 보는 것은 달랐다. 거대한 해양에서 자유로이 유영하는 고래. 거창한 의미 따위 필요 없이, 고래를 만난 경험은 단지 그 거대하고 멋진 생물이 이 넓은 바닷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걸 내 눈으로 봤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신비롭고 대단한 즐거움이었고, 감동이었다.
가끔은 살면서 대단한 이유 없이 좋은 것들이 있지 않은가. 나에게 험프백 고래 투어는 그런 것과 같았다.
"고래가 참 거대하고, 멋졌다. 그래서 좋았다.
그리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