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 살아도 또 다른 바닷가로 여행을 가고 싶은 건 참 신기한 일이다. 골드코스트라는 유명 관광지가 어느새 내가 사는 동네가 되어버리면서, 이 멋진 해변도 그저 집 앞바다가 되어 버렸다. 여행지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골드코스트에 겨울이 찾아오기 시작할 즈음, 나와 앤디는 따뜻한 북쪽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가 향한 곳은 조용한 바닷가 마을, 에어리비치였다.
에어리비치는 1시간 남짓 걸으면 마을 전체를 다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작고 아담하다.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보트를 타고 작은 만에서 헤엄치는 것이 여행자가 즐길 수 있는 거의 전부인, 평화롭고 고요한 마을이다. 마음 정화의 시간이 필요했던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여행지였다.
이번 여행이 특별했던 이유는 우리가 호텔 같은 숙소가 아닌 보트에서 숙박을 했기 때문이다. 앤디는 예전에 에어리 비치에서도 지낸 적이 있었고, 그때 일했던 보트의 선장이었던 크레이그 아저씨와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앤디의 방문 소식에 아저씨는 흔쾌히 우리에게 숙박을 허락했다. 우리가 머문 보트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파티를 즐기는 호화 요트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작은 공간 안에 없는 게 없었다. 두 개의 선실, 부엌, 거실, 심지어 화장실도 두 개나 있었다. 물론 폐소 공포증이 있으면 차마 들어갈 수 없는 크기였지만 말이다. 이 보트는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실제로 아저씨가 생활하는 집이었다.
처음에는 해본 적 없는 경험에 들떠 있었지만, 일주일간의 보트 생활은 흥미와 불편을 동시에 수반한다. 가장 큰 불편은 물 사용의 제약이었다.
“지, 이곳에선 절대적으로 물을 아껴 써야 해.”
보트 생활에 익숙한 앤디가 창문을 벽에 능숙하게 고정하며 말했다. 보트에서는 물탱크에 한정된 물을 채워 쓰는 구조라 샤워는 불가했고, 설거지 역시 최소한의 물로만 해야 했다. 뽀득뽀득하게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성에 안 차는 나도 이곳에서만큼은 개미 눈물만큼의 물로 설거지를 해야 했다. 샤워를 위해서는 정박지 근처의 샤워장으로 긴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평소엔 그다지 깔끔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데에 오면 어찌나 깔끔을 떨고 싶어 지는지, 매일 밤 부지런히 샤워 도구들을 들고 그 먼 곳을 하루도 빠짐없이 다녀오곤 했다.
그럼에도 바다 위에서의 생활은 그만의 낭만이 있었다.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식사 후에는 햇살이 내리쬐는 갑판 위에 올라가 몸을 뉘었다. 구름이 고요히 흘러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파도에 맞춰 흔들리는 배의 움직임이 마치 요람 같아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다양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깨어나면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고, 햇볕에 달아오른 몸을 바닷물에 담가 식히기도 했다. 밤이 찾아오면 평온한 시간은 정점을 찍었다. 선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란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면 작은 창문이 있었다. 창문을 열자, 밤하늘에 꿰어 놓은 듯한 별빛이 내 눈으로 쏟아져 내렸다. 밤이 되어 별이 떠올랐다기보다는, 별이 있는 곳에 밤이 찾아온 느낌이랄까.
“지, 내가 왜 보트 생활을 사랑하는지 이제 알겠지?”
내 옆에 누워 별을 바라보던 앤디가, 별빛에 감탄사를 흘리던 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아마 이 보트의 주인인 크레이그 아저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낭만에 빠져 보트 생활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보트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나 과시용 사치품이 아니다. 그들에게 보트는 집이자 삶의 일부이다. 그래서 보트의 선장들은 마치 사람처럼 보트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내가 머문 보트의 이름은 ‘Indi’였다. 인디는 아저씨와 함께 평생을 바다 위에서 보내고 있었다. 보트 곳곳에서 그들의 세월을 엿볼 수 있었다. 색 바랜 가족사진, 초록빛 물이끼가 낀 레이밴 선글라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보이는 낡은 소파 쿠션까지. 모두 인디와 아저씨가 함께해 온 시간의 기록이었다. 보트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크레이그 아저씨가 직접 손으로 설계하고 제작했고, 고장이 나면 두 손에 기름때를 묻혀가며 고쳐온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내가 머물던 때에도 보트의 일부가 크게 망가져 있었는데, 아저씨는 어린 자식이 아픈 듯 이웃 선장들과 티타임을 가지며 인디를 수리할 방법을 의논했다. 인디는 그의 분신이자 삶의 동반자였다.
보트에서의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는 건, 단순히 낭만적인 경험 때문이 아니었다. 무생물이 마치 생물처럼 인간과 교류하며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크레이그 아저씨의 인생이 오롯이 담겨 있는, 아저씨의 깊어진 주름처럼 곳곳에 물이끼가 끼어가며 멋지게 낡아가는 보트 인디. 질리면 쉽게 버리고, 고장 나면 새것으로 교체하는 시대에, 한 대의 보트와 한 사람이 세월을 나누며 함께 늙어가는 모습이 어찌 특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여행을 다녀온 것이 아니라, 한 인생을 보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바다 위에서, 어느 노년의 남자와 낡은 보트 한 대가 함께 깊어져 가는 인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