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한 마리와 친구가 되는 과정

난 어려서부터 개를 참 무서워했다. 개를 언제부터 무서워했는지 그 기억은 불분명한데, 몇 년 전 초등학생 때 적은 일기를 통해 그 트라우마의 기원을 알 수 있었다.

10살 즈음, 길에서 마주친 개 한 마리가 빵을 먹고 있던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호랑이에게 가진 떡을 야금야금 나눠주듯 그 개에게 먹던 빵을 조금씩 나눠주었다. 그러다 결국 가진 빵이 모두 떨어졌고 빈손이 되자 개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울면서 도망갔다는 것으로 그날의 일기가 마무리되었다. 일기를 읽고 나니 어렴풋이 기억이 되살아나긴 했지만, 사실 꼭 그 기억 때문이 아니더라도 반가움의 표시인지 공격의 표시인지 모를 개들의 행동은 나로 하여금 개에 대한 공포심을 갖게 만들었다. 아주 어릴 적 우리 집 마당에서 개를 키운 적이 두 번이나 있었지만, 우리 집 개조차도 무서워했던 나였으니, 나에게는 개라는 동물과 유대를 쌓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내가 남의 집 개와 함께 살게 되었다. 나의 새로운 룸메이트 안드레아에게는 세 살 난 수컷 포메라니안, 또또가 있었기 때문이다. 집을 보러 온 사람 중에 ‘또또가 가장 좋아한 인물’이라는 이유로 내가 안드레아의 새로운 플랫 메이트로 낙점이 되었는데, 개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 나를 또또가 가장 반가워하며 좋아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아이러니했다. 개들은 주로 내가 그들을 무서워하는 걸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나를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심도 없는 왕세자의 눈에 들어 아무 생각 없이 궁궐에 입성한 무수리가 왕세자와 사랑에 빠지듯, 나는 관심은커녕 공포의 존재였던 개 한 마리의 눈에 들어 생각지도 않은 애견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개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보니 잘은 모르지만, 애견인이 아닌 일반인으로서 주워들은 소문에 따르면 포메라니안은 귀여운 생김새와는 달리 꽤나 예민하고 사나운 성격을 지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사자처럼 풍성한 황톳빛 털을 자랑하는 또또도 꽤나 매서운 녀석이 아닐지 걱정이 앞섰다. 또또의 주인인 안드레아는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6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기 때문에, 사실상 나의 진정한 룸메이트는 안드레아가 아닌 또또였다. 안드레아 앞에서야 얌전하고 착한 척해도, 나와 단둘이 있을 때 이 녀석도 다른 개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를 만만하게 보며 짖고 괴롭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주인이 떠난 후 집안에 단둘이 남겨진 또또와 나. 그러나 또또는 내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또또는 내가 그를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아는 듯했으나 전혀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이 나를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걸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조용히 다가와 발등을 핥고, 방에서 나올 때마다 빙글빙글 몸을 돌며 반가움을 드러내고, 걸핏하면 약 먹은 바퀴벌레처럼 배를 깔고 누워 나를 안심시켰다. 보통은 인간이 동물에게 ‘난 널 공격하지 않아’라는 신호를 보내며 그들을 안심시키는데, 우리는 그 반대의 케이스였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면 내 방문 앞에 앉아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또또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외출할 때면 문틈 사이로 코가 찡기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얼굴을 들이밀며 문이 닫힐 때까지 배웅했고, 내가 집으로 돌아오면 신이 나서 달려드는 건 물론이고 온 집안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나를 반겼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땐 그 기운을 고스란히 느끼는지 하루 종일 내 곁을 지키며 위로해 주었고, 내가 바쁠 때면 장난감을 물고 와 구석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렸다. 내가 해주는 거라곤 가끔 안드레아 대신 산책을 시켜주는 게 다였는데, 또또는 단지 내가 그의 시간과 공간을 함께한다는 이유로 이렇게 많은 사랑을 표현했다.

그리고 이 착하고 순한 개 한 마리의 무조건적인 애정은 나를 변화시켰다. 개에게 물릴까 봐 개를 만질 때면 그들의 머리 위를 손가락 하나로 겨우 건드리곤 하던 나였는데, 어느 순간부턴 개털이 옷에 붙거나 말거나 나는 또또를 끌어안고 다녔다. 밥을 주고, 똥을 치우고, 급기야 오렌지를 좋아하는 또또를 위해 얇은 껍질을 손으로 일일이 벗겨 순수한 과육만 발라주기까지 했다. 당시 나는 나 스스로의 변화에 놀랐다. 내 어린 조카에게도 해준 적 없는 ‘오렌지 과육 발라주기’를 공포의 대상이었던 개에게 해주고 있다니.

인형을 갖고 놀아달라는 또또

또또와 부쩍 가까워지고 있던 어느 날, 앤디가 이사 간 나의 집에 놀러 왔다. 앤디가 나에게 친근한 사람인 것을 알아챈 것인지 또또는 앤디를 향해 짖기는커녕 꼬리를 흔들며 집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앤디 역시 자신을 반기는 또또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날 오후, 우리는 베란다에 있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또또는 앤디와 나의 무릎 위를 오가며 조용히 누워있었다. 그날의 따뜻하고 평화로운 시간 속에서 나는 문득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내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두 친구’라는 것을. 친구가 꼭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또또는 내가 앤디 못지않게 의지했던 존재였고, 앤디와 또또는 나에게 다를 바 없는 소중한 친구였다. 그 둘과 함께 했던 그날의 오후가 그토록 충만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아마도 두 친구가 만들어낸 안락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길을 걷다 강아지와 눈이 마주치면, 예전처럼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먼저 인사를 건넨다. ‘일루 와-’ 그 한마디에 풍성한 꼬리를 흔들어대던 또또를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또또의 사진들로 가득 찬 지난날의 사진첩을 뒤적여본다.

천만 애견인 시대라는 오늘날, 나는 아무래도 1천만 1번째 애견인이 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