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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안드레아

by 인생 탐험가


이사한 집에서 새로운 룸메이트를 맞이했다. 우연히도 그녀의 이름은 앤디의 본명과 같은 안드레아였다. 두 사람의 이름이 같다는 사실이 나에겐 운명처럼 느껴졌지만, 정작 두 사람의 성향은 놀랄 만큼 달랐다.

자유로운 영혼의 헝가리 출신 앤디. 새벽같이 일어나 비건식으로 아침을 먹고, 마음이 가는 대로 어느 날은 해변을 걷고 어느 날은 바다에 뛰어든다. 집 안에 늘 인센스와 향초를 은은히 피우고, 알록달록한 히피풍 장신구가 곳곳에 걸려 있다. 날씨 좋은 오후엔 서퍼스 파라다이스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저녁이면 주황빛 스탠드 조명 아래서 명상과 자기 계발 영상을 즐기다가 잠이 든다.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나른하고 몽환적인 음악을 하는 Cigarettes After Sex. 연애가 시작되면 별자리 궁합이나 타로점을 본다.

앤디의 집

반면 멕시코 출신의 안드레아는 전형적인 커리어우먼 스타일이다. 아침 8시가 되면 사과와 블루베리를 직접 갈아 만든 생과일주스를 들고 출근을 한다. 퇴근은 매일 저녁 5시 40분, 단축 근무를 하는 금요일은 4시 40분. 가끔 미용실이나 쇼핑을 갈 때를 제외하곤 알람 시계처럼 언제나 같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다. 모던하게 꾸민 아파트로 돌아오면 반려견 또또를 산책시키고, 냉동실에서 즉석 도시락을 꺼내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다. 이후엔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다가 10시에 잠자리에 든다.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Imagine Dragons. 연애를 시작하면 MBTI 궁합표부터 펼친다.

안드레아의 집 + 또또

성향의 차이는 생활에서도 크게 드러났다. 앤디와는 식재료가 모자라면 서로의 것을 나눠 쓰기도 했지만, 안드레아는 양파 반쪽을 빌려도 반드시 갚아주곤 했다. “양파 반쪽, 달걀 하나쯤은 괜찮다”라고 해도 빌려간 것은 작은 것이더라도 꼭 돌려주는 타입이었다. 앤디가 융통성과 즉흥성을 지녔다면, 안드레아는 철저함과 규칙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이름만 같을 뿐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 덕분에, 룸메이트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 같은 사람은 그에 따라 생활 습관도 달라졌다.

앤디와 함께 살 때 나는 주로 집에서 요리를 해 먹고, 기분에 따라 해변에 나가 일광욕을 하거나 앤디와 함께 자기 계발 영상을 보곤 했다. 반면 안드레아와 살면서는 집순이에 가까워졌다. 그녀처럼 간편식을 종종 택했고, 퇴근한 안드레아와는 가끔 외식을 하거나 함께 디즈니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두 안드레아 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모양을 달리하며 살아갔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동안 나는 여전히 앤디에게 참 고마웠다. 친한 친구가 새로운 룸메이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 누구라도 서운해질 법한데, 앤디는 단 한 번도 그런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네가 좋은 룸메이트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새로운 사람에게서 좋은 영향을 받으며 지내보는 건 정말 중요해.”

나는 더 이상 앤디와 같은 집에 살지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서 내 삶을 응원해주고 있었다.

이름은 같지만 서로 다른 안드레아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앤디도 안드레아도 둘 다 나에게는 좋은 룸메이트였다는 것이다. 그녀들은 외로운 타지 생활에서 나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혼자 살면서 모든 살림을 도맡아야 하는 지금, 가끔씩 그녀들에게서 배어 나온 버릇들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곤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전날 설거지해 둔 그릇을 건조대에서 정리하는 안드레아의 버릇, 사용 후에는 늘 개수대와 세면대의 물방울을 말끔히 닦아내던 앤디의 버릇이 그렇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의 삶을 조금씩 닮아가는 일이다. 서로 다른 안드레아였지만, 두 사람은 똑같이 내 삶에 한 조각의 습관으로 남았다. 내 습관이 바뀌지 않는 한, 두 사람은 매일같이 하루에 한 번 나에게 소중한 순간을 상기시켜 주는 존재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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