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결심했다. 앤디와 함께 지내는 삶은 즐겁고 행복했지만, 변화를 주고 나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앤디와 함께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좋았으나, 그 기간이 반년이 넘어가자 이제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사를 가야겠다는 판단이 섰고, 앤디에게 그 뜻을 전했다. 앤디는 다소 놀라는 듯했으나, 이내 나의 설명을 듣고는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호주 생활의 새로운 챕터를 위해 집을 찾기 시작했다. 호주에서는 큰 집에서 여러 명이 함께 사는 형태가 일반적이라, 주로 ‘플랫 메이트’라는 사이트에서 룸메이트를 찾곤 한다. 나 역시 그 사이트를 뒤지며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보기 시작했다. 룸메이트를 찾는다는 사람은 수백수천이지만, 맘에 맞는 집과 룸메이트를 구하기란 정말이지 하늘의 별따기였다.
며칠 후, 괜찮아 보이는 집 몇 곳을 직접 찾아갔다.
1번, 화가 할머니와 사는 집.
깔끔하고 조용해서 좋다. 문제는 ‘항상’ 조용해야 한다는 것. 할머니가 그림에 집중하시는 시간이 많아서 집 안에선 절대 엄숙해야만 했다. 소음 관리에 눈치가 보일 것 같아서 탈락.
2번, 한국인 부부가 사는 집.
같은 한국인이라 정서적으로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집엔 규칙이 너무 많았다. 밤 10시 이전에 귀가할 것. 늦은 밤 샤워하지 말 것. 절대로 친구를 초대하지 말 것. 까다로워 보이는 그들과 나는 맞지 않을 것 같아서 탈락.
3번, 4-5명의 사람이 모여 사는 2층 집.
저렴한 임대료와 널찍한 부엌과 거실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다 보니 집이 상당히 어수선했다. 결국 혼자 있는 시간보다는 여러 사람과 마주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을 거 같아서 탈락.
막상 몇 군데를 둘러보고 오니, 앤디만 한 룸메이트가 없고 앤디네 집만 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그냥 이사 결심을 철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쯤, 플랫 메이트 웹사이트에서 온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호텔형 주상복합에 사는 멕시코 출신 안드레아라는 여자가 보낸 것이었다. 메시지를 통해 본 그녀의 집은 깔끔함이 돋보였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건 발코니에서 보이는 해 질 녘의 강변이었다. 오랜 시간 1층 집에서 지내 와서 그런 걸까, 탁 트인 강변뷰를 보자마자 그 집으로 마음이 확 하고 꽂혀버렸다.
안드레아가 보낸 룸메이트 제안에 나는 곧장 그 집을 방문하였고,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이 집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게다가 그녀는 8to5의 사무직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 나 홀로 오롯이 시간을 보내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발랄한 포메라니안 강아지가 한 마리 있다는 것. 나는 평소 개를 무서워하기에 그 점이 다소 우려스러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안드레아와 나는 서로를 마음에 들어 했고, 최종적으로 나는 그녀의 집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신이 나서 앤디에게 말했다.
“앤디, 오늘 본 집 맘에 들었어. 집에서 보는 강변뷰가 진짜 멋지더라.”
“맘에 드는 집을 찾았다니 다행이네.”
“아, 그리고 룸메이트 이름이 안드레아야. 너랑 이름이 같아. 나는 안드레아들이랑 살 운명인가 봐!”
잔뜩 들떠 있는 나를 보며 앤디는 잘 됐다며 축하해 주었지만 문득 그녀의 얼굴에 스치는 아쉬움을 보았다.
며칠 후, 이사 날이 되었다. 앤디는 흔쾌히 짐을 나르는 걸 도와주었다. 처음 왔을 때보다 부쩍 늘어난 짐을 보며, 내가 이 집에서 보낸 시간이 짧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짐을 다 옮기고 마침내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앤디는 나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지, 행복하게 잘 지내. ‘bye’라고 하려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새 집에 간다는 설레임에 나도 모르게 앤디가 느낄 공허함을 놓치고 있었다. 나는 뒤늦게라도 그녀의 허전함을 채워주려 있는 힘껏 그녀를 안아주었다.
“앤디, 정말 고마워. 우리 영영 안 보는 거 아니잖아. 자주 만나자!”
그리고, 곧 돌아서 가는 앤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는 함께 외출을 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함께 집으로 돌아가곤 했으니까.
그날 밤, 새로운 집의 침대에 몸에 뉘었다. 27층의 고층 건물,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통유리창 너머로 야경이 펼쳐졌다. 창밖에서 스며든 달빛은 방 안을 밝혀주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서도 달을 볼 수가 있네...’
멍하니 창밖의 달을 바라보고 있던 나. 그때 내 마음이 묘한 감정으로 물들고 있었다. 정든 집을 떠나왔다는 쓸쓸함이 밀려온 것이다. 함께 사는 동안 나와 앤디는 친구를 넘어 어느새 가족이 되고 있었나 보다. 나는 이불을 머리맡까지 끌어올렸다. 통창 너머의 달빛으로도 달래 지지 않는 그 무엇을 숨기려 이불속에 파고들어 애써 잠을 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