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앤디와 약속을 잡았다. 함께 살 때는 집안에서 뒹굴다가 “같이 해변이나 걸을래?” 하고 즉흥적으로 하루를 정하곤 했지만, 이사를 간 이후부터는 꼭 약속을 해야만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만나면 우리는 주로 해변에서 만나 일광욕을 하고 해변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나와 앤디는 함께 식당에는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같이 요리를 하고 함께 나눠먹는 재미가 있었지만, 따로 살게 되니 한 번쯤은 식당에서 편하게 외식을 해보고 싶었다. 이에 나는 앤디에게 식당에서 만나자고 제안했고, 앤디는 반가운 듯 말했다. “값도 저렴하고 맛있는 비건 태국 식당이 있어.” 그렇게 우리는 서퍼스 파라다이스 한쪽 골목에 자리한 작은 식당으로 향했다.
번화가를 벗어난 골목 어귀에 식당이 위치해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간판의 허름한 식당이었다. 진열된 요리 몇 가지 중에서 두 가지를 고르면 밥과 함께 배식되는 시스템이었는데 1인분이 고작 만 원 남짓이었다. 호주는 최저임금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외식비가 굉장히 비싼 나라인데, 그에 비해 이 식당의 음식 가격은 무척 저렴했다. 앤디는 그린커리와 콩고기 볶음을 선택했고 우리는 마치 학생처럼 배식된 그릇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앤디, 너랑 식당에 오니까 기분이 새롭다. 우리 함께 외식을 하는 건 처음이야.”
“지, 나도 너랑 이렇게 밥 먹으니 너무 좋아.”
식사를 하며 앤디는 호주에 와서 한 번도 여유로운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앤디와 살면서 그녀에게서 가장 자주 들은 단어가 ‘struggle’이었다, 한국어로는 ‘고군분투’쯤 되려나. 앤디는 호주에 온 이후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외식이 비싼 이곳에서 맘 편히 식당에 가본 적이 거의 없던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반년 넘게 함께 살면서도 그녀가 먼저 식당 얘기를 꺼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외식을 제안해도 대개 “괜찮아, 집에서 먹자”라고 웃어넘겼다. 나는 그것이 그녀가 비건식을 시작했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경제적인 부담이 큰 탓이었다. 호주에 온 이후로는 공부를 했고, 이후 제대로 일 좀 해보려 하던 차에 코로나가 터진 탓에 앤디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울 틈이 없었다. 그러나 앤디는 단 한 번도 투정과 불만을 표한 적이 없어서, 나는 그녀가 식당에 가는 것조차 부담으로 느끼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 사실을 알게 되니 눈앞의 음식이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우리는 나름의 호사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괜히 수저를 내려놓고 앤디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사는 거니까 마음껏 먹어.”
“아냐, 오늘은 내가 사려고 했어.”
“너랑 함께 하는 첫 외식이잖아. 그래서 내가 오늘은 널 대접하고 싶어.”
맛 자체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태국 음식이었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바쁜 일상과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우리가 그리는 이상적인 삶과 꿈에 대해서. 좁고 낡은 가게에서 즐기는 소박한 한 그릇이었지만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만큼은 푸짐하고 따뜻했다.
식사를 마친 후 앤디가 나에게 말했다.
“지, 오늘은 정말 잊지 못할 하루야. 나한테는 너무 소중했어.”
고작 만 원짜리 밥 한 끼였을 뿐인 데에도 앤디는 나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앤디의 말처럼 그날은 나에게 있어서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나는 우리의 첫 외식의 순간을 기념하고 싶어 앤디의 사진을 찍었다. 앵글 속의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가 갔던 식당의 이름은 ‘Blossoming Lotus’이었다. 그곳은 값비싼 식당도, 색다른 요리를 하는 곳도 아니었지만 ‘피어나는 연꽃’이라는 그 이름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추억을 피워준 곳이었다. 별것 아닌 식사에도 감사할 줄 아는 그녀와 함께였기에, 그날의 밥상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값싸면서도 값진 외식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