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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필 Jun 28. 2023

[DC 코믹스] 배트맨: 언더 더 레드 후드 리뷰

리뷰, 제이슨 토드, 그는 누구인가? 

 <배트맨: 언더 더 레드 후드>를 읽은 계기는 넷플릭스 드라마의 <타이탄> 시청이었습니다. DC의 히어로와 빌런은 많고 세계관은 방대하죠. 영화와 드라마, 코믹스 사이에서의 연속성을 발견하는 게 어렵기도 하고요. 코믹스를 ‘오마주’하지만 배트맨에 대한 캐릭터 해석은 감독마다 다르다. 수많은 실사 영화가 나왔지만, 21세기의 DC 히어로들 중 배트맨 영화에서는 ‘로빈’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배트맨의 영원한 조수인 로빈은 늘 죽어 등장하죠. 그것도 아주 짤막하게, 이런 설정이 있었다고요? 그래서 배트맨 코믹스를 읽지 않으면 영화와 드라마에 차용된 코믹스 설정들이 머릿속에서 따로 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마다 배트맨 해석이 다른 이유도 이 때문이겠죠. <저스티스 리그>에서도 마찬가집니다. 배트 케이브의 유리관에 로빈 코스튬이 등장해요. 영화 감독들은 배트맨을 고독한 영웅으로 만들죠. 그래야만 이야기가 진행되니까? 그래야만 배트맨의 ‘고독’과 그의 자경 행위가 ‘무의미한 싸움’인 게 돋보이거나, 배트맨의 독무대를 만들 수 있어서? 하지만 배트맨만큼 대가족을 이룬 영웅도 없습니다. 이 책이 코믹스 팬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전으로 떠오르는 이유가 있죠. 정말 재밌습니다. 


 배트맨 독무대에 지친 와중에 (나온다면 거절할 생각은 없습니다.) <타이탄>을 보고 초대 로빈(딕 그레이슨)과 두 번째 로빈(제이슨 토드)에 대해 알게 됐어요. 한 에피소드만 봐도 두 명의 로빈 사이에서 미묘한 기류가 흐르죠. 이른바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기류입니다. 왜냐하면 <타이탄>에서는 초대 로빈인 딕 그레이슨이 배트맨과 고담을 떠났으니까. 새 로빈을 들인 겁니다. 장차남의 기류에 가까워 보이죠. 배트맨에게 완벽한 첫쨰 자식이자 조수, 딕 그레이슨과 둘째 자식인 제이슨 토드는 엄밀하게 다른 부류였어요. 충직한 집사는 그 사실을 알아요. 



 제이슨은 딕 그레이슨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제이슨에게 ‘못된 기질’이 있었다는 것이죠. 제이슨은 위험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로서, 주인님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셨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장면은 브루스 웨인이 소년이었을 때 겪은 비극입니다. 노소를 따지지 않고, 브루스 웨인은 언제나 웨인 부부의 죽음을 회상합니다. 한 소년의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한 ‘브루스 웨인’이 살아남는 방법으로 카울을 쓰게 만들죠. 그래야만 이 비극적인 영웅이 이야기가 되고 돈이 되니까요. DC는 그렇게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사랑해요, 디씨!)


 하지만 제이슨 토드는 브루스 웨인이 비극을 겪었던 장소에서 ‘배트맨’을 만납니다. 배트맨의 배트모빌 타이어를 ‘슬쩍할’ 계획을 세우죠. 제이슨은 배트맨을 때리며 도망칩니다. 제이슨 토드와의 첫만남은 어쩌면 브루스 웨인 스스로를 구명한 것과 같습니다. 소년이 어른이 되고, 아들이 아버지가 됩니다. 첫째인 딕 그레이슨을 입양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딕 그레이슨과는 ‘또래 친구’처럼 지냈지만, 제이슨 토드는 다르죠. 본격적으로 아들을 둔 아버지가 됩니다. 


 그렇지만 브루스 웨인이자 배트맨은 실패합니다. 배트맨으로 만났기에 제이슨 토드가 ‘로빈’ 코스튬을 입고 배트맨 옆에 자리한 이상요. 너무 완벽했던-손이 많이 가지 않는-첫째를 제이슨 토드에게 투영했던 흔적이 보입니다. 알프레드조차 브루스 웨인이 완벽한 아버지상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뒷골목의 소년을 감당하기엔 계급적인 한계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제이슨은 브루스 웨인과 자선 행사를 다니는 것보다 코스튬을 입고 배트모빌 조수석에 올라타는 걸 더 좋아했으니까요. 이 무서운 자경 활동을 ‘신나고 재밌는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멋진 히어로와 같이 악당들을 무찌를 수 있는데 내가 왜? 



 제이슨 토드의 죽음은 아주 유명합니다. <타이탄>에서도 제이슨이 죽죠. <타이탄>에서는 브루스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이라도 나가면 조커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합니다. 할 수 있어요, 브루스. 나는 이 새끼를 잡을 거라고요. 그렇지만 코믹스에서 제이슨은 다릅니다. 어머니 쉴라를 구하기 위해 제이슨은 조커를 상대했고, 그 결과는 여러 차례 등장한 장면입니다. 조커는 로빈 코스튬을 입은 소년을 무자비하게 구타하여 죽입니다. 배트맨은 로빈의 시체를 끌어안고, 많은 작화에서 이 장면은 피에타를 연상시킵니다. 배트맨은 마리아가 되고, 로빈들은 예수가 됩니다. 배트맨이 줄곧 시초이며 예수지만, 로빈을 들임으로써 그는 마리아가 됩니다. 즉 영웅들의 보호자가 되는 것이지요. 그것도 젊은 영웅들입니다. 제이슨의 부활은 다소 그로테스크한 화풍으로 그려집니다. 로빈 코스튬 대신 수의를 차려입고, 로빈 기어 하나 없이 벨트를 풀어 관에서 탈출합니다. 패사하였기에 그의 근육은 뒤틀려 있고, 뼈들은 조각 나 혈관을 타고 흐릅니다. 온전하지 않은 육체였으니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사력을 다해 무덤에서 기어나온 유령입니다.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은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하죠. 흔한 경우도 아니고요. 신묘한 우주의 힘, 그리고 슈퍼보이의 힘으로 제이슨이 돌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제이슨은 브루스 웨인과 만나지 못했고 알 굴 부녀의 훼방으로 진실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죠. 



 조커가 배트맨에게서 자신을 앗아갔는데 왜 아직도 복수를 하지 않았나? 


 소년의 복수이자 아들의 질문입니다. 



배트맨: 고담이 살아날 수 있게 일부를 죽일 거라고! 너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을 거야. 너를 실망시켰다는 건 안다. 하지만… 나는 너를 구하려고 했어. 제이슨, 나는… 나는 지금도 너를 구하려고 한다. 

레드후드: 이게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해? 당신이 날 죽게 내버려 둬서? 어느 쪽이 당신의 판단력을 더 흐리게 하는지 모르겠군. 죄책감인지, 구닥다리 도덕관념인지. 브루스, 나를 구하지 않은 건 용서해. 하지만, 대체 왜? 저놈이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거지?

조커: 드디어 파티가 시작됐군! 행복한 가족이 한자리에 다시 모였어!

레드후드: 이 이 과거에 저지른 짓들은 잊어버리더라도, 멍청하지만 눈 딱 감고, 놈에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 고통받은 수천 명의 사람들… 놈이 불구로 만든 친구들은 무시하더라도… 나는, 나를 죽인 일은- 나는 놈의 손에 고통받는 건 내가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어. 

(중략)

레드후드: 왜 쫄쫄이 입은 보이스카우트들은 언제나 그 말을 하는 거지? ‘그 선을 넘으면 돌이킬 수 없어.’ 코블팟이나 스케어크로우나 클레이페이스 얘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 리들러나 덴트 이야기도 아니고…이놈 얘기야. 이놈만 죽이면 된다고. 왜냐하면 이놈이 당신에게서 나를 앗아갔다고.



 늘 배트맨과 로빈은 범죄자를 보는 시각 차이가 있었습니다. 딕 그레이슨은 자경 활동을 ‘복수’ 대신 ‘구원’이라고 인식했으나, 그의 새 로빈(제이슨 토드)는 자경 활동을 ‘못된 범죄자들을 혼내 주는 일’로 인식하고 있었죠. 제이슨은 알고 있었어요. 배트맨이 고담의 범죄자들을 죽이지 않고, 고담의 범죄자들은 배트맨이 자기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까지. 로빈으로 들였을 때부터 늘 하고 있었던 생각일 겁니다. 브루스 웨인과 제이슨 토드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입니다. 부모를 잃은 고아는 맞지만, 브루스 웨인은 영원한 싸움에 끊임없이 끼어드는 초인과 같지만, 제이슨 토드는 다르죠. 제이슨 토드는 자신을 이루는 크라임 앨리에서 ‘신분 상승’에 성공한 고아 소년입니다. 브루스 웨인의 차를 보며 감탄하는 고아원의 아이들이 아닌, 그의 배트모빌에 올라탈 수 있는 ‘특권’을 가졌으며 웨인 저택에서 도련님이라고 불릴 수도 있으니까요. 브루스 웨인의 고통이 즉 제이슨 토드의 눈에는 신분 상승으로 보였던 겁니다. 어린 소년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죠. 


 자기를 힘들게 했던 범죄자들을 혼내 주는 거니까요.   


 아버지와 아들의 관점 차이는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자경 활동을 영웅적인 일로 인식했죠. 아버지의 목표에 대한 신중함과 신실함은 아들 대에 와서 희석됩니다. ‘멋지고 짜릿한 것’ 그렇지만 이때의 제이슨 토드는 이미 배트맨과 함께 수많은 빌런들을 상대하고 난 뒤입니다. 여전히 그는 다른 로빈들과는 달랐지만요. 배트맨의 ‘복수(Vengeance)’ 면모를 최대한으로 학습한 로빈입니다. 자기 학대는 유전되지만, 완벽한 자경 활동이 아닌 미숙했던 자아를 학대하는 면을 물려받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고뇌하며 배트맨과 대립하면서도 배트맨의 우군이 됩니다. 레드후드가 마스크를 쓰고 나서도 배트 시그널에 응하고, 고담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배트맨을 돕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배트맨이 카울을 벗을 수 없게 하고, 배트맨 스스로의 결의를 다지게 합니다. 제이슨 토드는 분노와 자기 학대로 이루어져 있는 거죠. 크라임 앨리에서 만났던 것처럼, 제이슨 토드는 배트맨과의 재회를 위해 마스크를 쓰고 나타납니다. 조커가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쓴 ‘레드후드’를 연상시키는 붉은색 마스크를 쓰고. 거의 내가 누구인지 알아달라고 시위합니다. 배트맨은 레드후드가 누구인지 짐작했지만(카울을 벗으면 안에 있는 건 아들을 잃은 아버지니까요.) 몇 주간 ‘죽음에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자들에게 수소문하죠. 그는 결국 본질을 잃지 않습니다. 카울을 쓰면 아버지가 아니라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망토 두른 십자군이 되고 말죠. 숙적인 조커를 죽이려 하는 제이슨을 막기 위해 배터랭을 던집니다. 탐정으로는 성공했지만, 아버지로는 재차 실패합니다. 제이슨 토드, 즉 레드후드는 배트맨에게서 가장 인간적인 면을 끌어냅니다. 


 상실에 대한 분노요. 

 또한 폭력으로부터 자신과 타인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얼마나 무력한지, 배트맨 패밀리가 지켜야 하는 ‘불살’이 과연 어디까지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만약 배트맨이 조커를 죽인다면 제일 당황할 사람은 제이슨 토드 본인이겠죠. 배트맨은 여러 이슈에서도 조커를 죽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살려 주려고 하지도 않죠. 불타는 잠수함에서 조커를 구출하지 않지만, 조커는 어떻게든 돌아옵니다. 조커는 결국 배트맨의 숙적이고, 고담에서의 싸움이 얼마나 끊임없이 이어질 것인지 상징하는 인물이니까요. 작가들도 조커를 쉬이 죽이지 않습니다. 배트맨은 늘 조커에게 기회를 줍니다. 악인을 ‘쉽게’ 죽인다면 배트맨에게 복수자(Avenger)라는 타이틀이 붙었겠죠. 그가 복수(Vengeance)를 자처한 건 다른 의미입니다. 악인들마저도 새 기회를 가져야 하고, 실제로 개심한 클레이페이스는 배트맨 패밀리에 합류하기도 합니다. 조커는 배트맨이 제정신으로 자경 활동을 지속할 수 없을 때도 돕습니다. 아버지의 불살 코드를 학습한 셈입니다. 레드후드 마스크를 쓰고서 ‘총’을 사용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발등을 쏘고 말죠. 하지만 레드후드와 배트맨은 영원히 화해할 수 없습니다. 재회하고 나서도 그들은 마스크와 카울만 벗었지, 여전히 레드후드와 배트맨으로 남아있으니까요. 배트맨의 사건이 되고 싶은 겁니다. 배트맨이 살리지 못한 사람으로, 가족의 모습을 하고. 그래서 배트맨에게 레드 후드, 제이슨 토드는 늘 아픈 손가락입니다. 완벽하지 못한 조수지만, 그가 살릴 수 있었음에도 살리지 못한 인물이죠. 언더 더 레드 후드 말미의 페이지에 제이슨 토드는 제이슨 토드다라고 적힙니다. 


 제이슨 토드는 에너미 타이틀로 레드 후드를 선택할지 몰라도, 그의 정체성은 제이슨 토드입니다.

 

 배트맨에게 있어 레드 후드도 완벽한 숙적이 되지 못합니다. 제이슨 토드가 늘 제이슨 토드이길 선택하는 이상, 제이슨은 배트 시그널에 응할 겁니다. 그렇지만 배트맨과 고담을 떠나 새 친구들을 만나죠. 고담에 돌아오고 나서도 저택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세이프 하우스에 들어가 삽니다. 부자로도, 동업자로도 화해할 수 없었으니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줄어들겠죠. 그게 배트맨 패밀리의 공통점입니다. 불통, 공동의 적, 그리고 화해. 우로보로스처럼 반복되며 배트맨 패밀리에 속한 인원들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저는 이 작품이 왜 고전인지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이 책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비극입니다. 또한 시초와 그의 제자 사이의 비극입니다. 가족 간 비극이면서 한 영웅의 고뇌를 고스란히 담은 이야기입니다. 배트맨이 지붕에서 떨어지는 건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그의 조수가 무덤에서 기어나오는 '상승'은 이 작품에서 처음 봅니다. (물론 놀란의 트릴로지에서도 배트맨 스스로가 감옥에서 기어나오는 '상승' 이미지가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브루스 웨인'으로의 자각이 아니라 '배트맨' 스스로의 자각이기 때문에 과감히 제외했습니다.) 배트맨 패밀리의 로빈들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면 과감하게 이 코믹스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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