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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 Nov 13. 2023

<토니 에드만>(2017)

늙은 개를 위한 오드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 분)의 집에는 빌리가 살았다. 빌리는 늙은 개다. 어느 날 빈프리트는 문 앞에서 쓰러져 자는 빌리를 본다. 그날 그는 마당에서 잠들었다. 빈프리트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새벽녘에는 추웠을 것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빌리가 죽어 있었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빈프리트는 빌리를 본다. 카메라는 빌리를 보고 있는 빈프리트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빈프리트는 늙은 개다.

 <토니 에드만>(2017)의 주연은 아버지 빈프리트와 그의 딸 이네스(산드라 휠러 분)다. 그것은 부녀의 이야기다. 그러나 <토니 에드만>은 부녀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곳에는 여성의 문제가 있고, 신자유주의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감독 마렌 아데에게 <토니 에드만>은 부녀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이네스는 커리어 우먼으로서 여러 문제에 직면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유럽 통합으로 신자유주의에 편입된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는 빈프리트와 이네스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공간일 뿐이다. 카메라는 부쿠레슈티에서 이네스의 집, 쇼핑 센터 등 일상적 공간만을 보여준다.


 “농담에 장난은 기본, 때론 분장까지 서슴지 않는 괴짜 아버지가 인생의 재미를 잃어버린 커리어 우먼 딸을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드라마”. <토니 에드만>의 소개 글이다. 빈프리트는 괴짜라면 괴짜다. 영화가 시작되고 택배 기사를 맞이하는 행동만 봐도 알 수 있다. 빈프리트는 틀니, 가발 등으로 변장하고 자신이 아닌 척을 한다. 그는 음악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숨기고 양로원에서 사람을 죽이는 부업을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주변 인물은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어느 날 이네스가 빈프리트가 있는 아헨에 들른다. 그녀는 유능한 경영 컨설턴트로서 부쿠레슈티에서 일하고 있다. 루마니아와 독일은 멀리 떨어져 있다. 그 거리만큼이나 빈프리트와 이네스 사이에는 정서적 거리가 느껴진다. 그날은 이네스의 생일을 미리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빈프리트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 이네스와 빈프리트가 형식적인 대화를 하는 동안 혈압계가 울린다. 빈프리트는 지병을 앓고 있다. 하지만 이네스도 그것을 모르고 있다. 그녀는 아헨에서도 업무 전화를 받느라 바쁘다. 빈프리트는 이혼한 전 아내에게 말한다. “우리가 잘못 키웠나 봐”.


 다음 날 새벽 빌리가 죽었다. 그길로 빈프리트는 이네스를 찾아간다. 부녀의 첫 번째 동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러나 이네스에게 그 동행은 달갑지 않았다. 이네스는 미국의 거대 정유회사가 루마니아 정유회사를 인수합병하는 일을 궁리하고 있었다. 빈프리트는 이렇게 저렇게 성가시게 굴었고, 이네스는 애써 참지 않았다. 빈프리트와 이네스는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빈프리트는 이네스에게 “여기선 좀 행복하니?”라고 묻는다. 그것은 “너도 인생을 좀 즐기”는 지, “뭔가 재미있는 걸 하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네스는 “행복은 거창한 말이에요”라고 답한다. 이네스에게 행복, 인생, 재미 따위는 “거창한 주제”일뿐이다. 결국 이네스는 빈프리트에게 화를 낸다. 빈프리트는 이네스에게 “그냥 네가 어찌 지내나 궁금했”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이네스는 “답이 따로 있으시잖아요”라고 반박한다. 어설프게 봉합된 빈프리트와 이네스의 관계는 다시 절개된다. 이네스는 일하다 잠든 자신을 깨우지 않은 빈프리트에게 화를 낸다. “나도 잘 모르겠다. 네가 늘 말하듯 잘 하고 있는 건지”. 빈프리트가 응수한다. “아빠가 치즈 강판 들고 와도 절 막을 수 없어요”. 이네스가 받아친다.


 빈프리트는 떠나기로 한다. 이네스는 베란다에서 택시에 짐을 싣는 빈프리트를 보고 있다. 빈프리트가 이네스 쪽을 올려다본다. 빈프리트와 이네스는 손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이네스는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그 울음은 빈프리트의 짐 정리를 돕다가 찧은 발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네스는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아쉬움은 빈프리트와 헤어졌다는 사실 때문은 아니다. 직장 동료들과의 모임에서 이네스는 빈프리트와의 동행을 “끔찍한 주말”로 묘사한 일이 있다. 그 아쉬움은 빈프리트가 떠나기를 바랐던 이네스 자신을 향한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흔한 아쉬움이다. 부모와 싸우고 방으로 들어가서는 속으로 온갖 저주를 퍼붓던 아이가 분명히 마주할 그 아쉬움. 이네스는 똥강아지다.

 이네스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난다. 사람을 만나서는 일 얘기를 한다. 스테프(루시 러셀 분)와 타티아나(헤드윅 미니스 분)를 만난 날도 그랬다. 그날 이네스는 토니 에드만과 만났다. 토니 에드만은 빈프리트다. 떠났던 빈프리트가 토니 에드만이라는 분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마렌 아데는 ‘토니 에드만’이라는 이름을 미국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의 분신인 ‘토니 클립튼’에서 빌려왔다고 밝혔다. 토니 에드만과 토니 클립튼은 겉모습도 비슷하다. 토니 에드만은 더벅머리에 틀니를 하고 있다. 그는 이네스 앞에서 너스레를 떤다. 그러나 이네스는 토니 에드만의 정체를 알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토니 에드만은 멈추지 않는다. 부녀의 두 번째 동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빈프리트의 일인극은 단순한 장난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전에도 빈프리트는 변장을 즐겨 했지만 집요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르다. 빈프리트는 토니 에드만으로서 최선을 다한다. 우리는 빈프리트가 토니 에드만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주목할 만한 장면이 있다. 토니 에드만은 어느 파티에서 이네스와 그녀의 남자친구 팀(트리스탄 퓨터 분)을 만난다. 이네스는 팀을 동료라고 소개하지만 토니 에드만은 믿지 않는다. 토니 에드만은 팀에게 다짜고짜 부모님의 직업을 묻는다. 자동차 영업소를 한다는 팀의 답을 듣자마자 토니 에드만은 “부모에게 배울 것도 꽤 많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이를테면 저도 아버지에게 치즈 강판 쓰는 법을 배웠”다고 덧붙인다. 다음은 이네스다. 토니 에드만은 이네스에게 치즈 갈기를 좋아하는지 묻는다. 이네스는 “그럴 시간이 없”다고 답한다. 사실 팀을 향한 토니 에드만의 질문도 이네스의 몫이었을 것이다. 빈프리트는 이네스의 생일 선물로 치즈 강판을 선물했었다. 토니 에드만의 입을 빌려 “치즈 강판을 제대로 쓰면 마음이 굉장히 편해”지기 때문이다. 토니 에드만은 그것을 자신의 부모에게 배웠다. 빈프리트도 이네스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치즈 강판으로 치즈를 갈 때의 행복이 있다. 그런데 빈프리트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돌아와야만 했던 것이다. 토니 에드만으로.

 마렌 아데는 빈프리트를 독일 전후 세대의 전형이라고 설명한다. 독일 전후 세대는 68세대로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1968년은 시위의 해였다. 독일의 68혁명은 과거로부터의 해방을 구가했다. “더 이상 아우슈비츠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표어는 당대 독일의 시대정신이었다. 따라서 68혁명은 나치의 탄생을 가능케 한 정신을 제거해야만 했다. 그 정신은 영국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적 다윈주의였다. 간단히 말해 세계는 다윈주의로 운행되는 경쟁의 장이라는 것. 교육만이 그 세계를 재건축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라는 명제가 교육개혁의 기본 정신이 되었다. 반권위주의 교육은 그 기본 정신의 실천이었다. 권위에 복종하는 정신, 성찰하지 않는 정신 등은 나치의 탄생을 가능케 한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의 권위의식도 일차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빈프리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네스의 자주성이 그것을 암시한다.


 우리는 빈프리트의 토로로 돌아가야 한다. 빈프리트는 이혼한 전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가 잘못 키웠나 봐.” 68세대로서 빈프리트의 교육은 실패한 듯하다. 자주적인 여성으로서 이네스는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빈프리트는 탐탁지 않다. 이네스는 행복, 인생, 재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네스의 자주성에는 공과가 있었다. 공로는 사회적인 성공이고, 과실은 삶이다. 이네스는 공로만을 보고 있고, 빈프리트는 과실까지 보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빈프리트는 내색도 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네스는 “아빠가 치즈 강판 들고 와도 절 막을 수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빈프리트는 토니 에드만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빈프리트로서의 실패를 토니 에드만으로 만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의 유용성을 따져보는 일은 무의미하다. 빈프리트에게는 시간이 없다. 그의 혈압계는 자꾸 울린다. 늙은 개 빌리의 죽음은 토니 에드만으로서의 회귀를 부추겼을 것이다. 토니 에드만의 장난은 이네스를 향한 몸부림이다. 그것은 <인생은 아름다워>(1999)의 귀도(로베르토 베니니 분)의 몸부림과 닮아 있다. 귀도의 일인극은 병정놀이였다. 귀도는 독일군에게 끌려가면서 궤짝에 숨은 아들 조슈아(조르지오 깐따리니 분)에게 눈짓을 하고 과장된 걸음걸이를 한다. 그때 그는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귀도는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전쟁으로 대변되는 세계의 폭력이 짓밟지 못하는 것이 있다. 말하자면 사랑 같은 것. 조슈아의 눈에 귀도의 걸음걸이는 우스꽝스러운 장난이지만 사실 그것은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처음 이네스의 눈에도 토니 에드만의 장난은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빈프리트는 늙은 개였다. 개는 어른스러워지지 않는다. 나이를 먹고 몸이 커져도 개는 개다. 그런데 이네스의 세계에서 늙은 개의 장난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네스에게도 시간은 없다. 그래도 늙은 개는 이네스를 졸졸 따라간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늙은 개는 자신의 발과 이네스의 팔을 묶어 두기도 하고,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한다. 늙은 개의 연주에 이네스는 미국 가수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을 노래한다. 그 가사는 68혁명의 오드다. 늙은 개는 이네스가 가장 위대한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가사를 따라 부르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네스는 잠깐 장단을 맞춰 주다가 늙은 개를 두고 떠난다. 그녀는 아직 늙은 개의 마음을 몰라준다. 이네스는 똥강아지였다.  

 사실 이네스는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그녀는 정액 묻은 케이크를 삼켰다. 팀은 이네스의 남자친구이자 직장 동료다. 어느 날 그는 직장 상사가 이네스를 두고 한 성적 농담을 전달했다. 이네스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팀은 이네스에게 유머 감각이 없다고 핀잔하고 사랑을 나누려고 했다. 이네스는 팀을 밀쳐내고 케이크에 정액을 묻혀달라는 황당한 제안을 했다. 팀은 그대로 했고, 이네스는 그대로 삼켰다. 그것은 불가해한 장난이었다. 그리고 그 장난은 분명 이네스의 세계 바깥에 있었다.


 이네스는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러 온 동료들을 나체로 맞이하기도 했다. 그날은 그녀가 생일을 구실로 동료들을 불러 모은 날이었다. 그런데 원피스 지퍼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이네스는 나체 파티를 하기로 했다. 예외는 없었다. 동료들도 옷을 벗어야만 했다. 빈프리트도 파티에 있었다. 그는 불가리아의 토속 신앙 전통 복장인 쿠케리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털복숭이 거인 츄바카를 닮아 있다. 나체인 사람들과 털복숭이 거인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빈프리트는 토니 에드만이 아닌 쿠케리로 다시 돌아왔다. 토니 에드만은 미국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의 분신인 ‘토니 클립튼’을 빌린 것이었다. 카우프만은 자신을 코미디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카우프만의 목적은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빈프리트도 그랬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싶었고, 이네스에게 특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카우프만도 대개 미움받았고 가끔 사랑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빈프리트도 마찬가지다. 그는 쿠케리로 다시 돌아왔다. 쿠케리는 토테미즘 복식이다. 그것은 현실 세계를 이탈해 있고 그래서 경쾌하다. 토테미즘 축제는 세계의 질서 바깥의 어떤 것을 향한 사람들의 사랑을 증명한다. 그러나 영원한 축제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각할 뿐이다. 빈프리트는 쿠케리로서 그 망각에 저항한다. 토니 에드만으로서 그랬던 것처럼.


 빈프리트는 파티에서 먼저 빠져나온다. 이번에는 이네스가 빈프리트를 따라간다. 이네스가 보는 것은 빈프리트의 뒷모습이다. 빈프리트는 탈진한 사람처럼 걷고 있다. 그는 공원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기도 한다. 카메라는 핸드헬드로 그 뒷모습을 보여준다. 공터에 다다랐을 즈음 이네스가 빈프리트를 부른다. 빈프리트와 이네스는 한참을 껴안는다. 그 포옹은 이전의 것과 다르게 무겁고 끈끈하다. 빈프리트는 곧장 장난을 친다. 이네스가 환하게 웃는다. 빈프리트와 이네스는 다시 헤어진다. 카메라는 뒤돌아보는 빈프리트와 이네스를 번갈아 보여준다.

 이네스는 무언가 망설이고 있다. 그 망설임이 이네스의 변화를 암시한다. <토니 에드만>의 러닝타임은 162분이다. 마렌 아데는 러닝타임을 줄이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느리고 길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세계가 그렇게 변하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이네스와 헤어진 빈프리트의 뒷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쿠케리 탈을 벗은 그의 백발이 잔뜩 헝클어져 있다. 프랑스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는 프랑스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가 찍은 뒷모습 사진에서 진실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늙은 개는 지쳐 있다.

 빈프리트의 어머니가 죽었다. 이네스가 아헨으로 돌아왔다. 빈프리트와 이네스는 각자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추억한다. 할머니의 유품이 있는 창고 뒷길에서 빈프리트는 이네스에게 말한다.


“그런데 말이다. 부쿠레슈티에서 물었지. 인생에 대해서.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냐고. 문제는 뭘 이루는 데에만 치중한다는 거야. 이것저것 하는 사이에 인생이 지나가 버려. 순간을 붙잡아 둘 순 없잖니. 가끔 앉아서 떠올리곤 해. 네가 자전거 배우던 때랑 예전에 너를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던 때를. 하지만 지나고 나서야 깨닫지. 막상 그 순간에는 깨달을 수가 없어.”

 빈프리트는 토니 에드만도, 쿠케리도 아닌 아버지로서 말했다. 이네스는 빈프리트의 틀니를 끼고 할머니의 모자를 쓴다. 그것이 그녀의 답이다. 빈프리트는 카메라를 가지러 간다. 이네스는 생각에 잠긴다. 빈프리트와 이네스는 죽음과 탄생이 있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이네스는 이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조금 더 자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똥강아지는 개가 되고, 개는 늙은 개가 된다. 빈프리트는 늙은 개가 되었다. 늙은 개의 눈에 똥강아지는 영원한 똥강아지다. 마냥 쁘고 가여운 것. 그래서 괜히 핥고 깨물어도 본다. 알려주고 싶은 것도 많을 것이다. 늙은 개는 그렇게 똥강아지를 졸졸 따라간다. 똥강아지도 늙은 개를 사랑한다. 그러나 성가실 때도 있다. 똥강아지는 어느새 개가 되었다. 그래서 늙은 개를 밀쳐내기도 한다. 늙은 개의 마음은 늙은 개가 되어서야 알 수 있다. <토니 에드만>은 늙은 개를 위한 오드다. 빈프리트는 늙은 개였다. 그는 내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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