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넷플 <러브 앤 아나키> 리뷰

이케아의 나라 스웨덴 눈도 즐겁고 생각할 것도 많은 드라마

by CHO

이케아의 나라 스웨덴, 그곳에서 만든 드라마는 어떨까? 나는 넷플릭스에서 미국 시리즈물도 좋지만 유럽이나 우리에게는 낯선 곳의 드라마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나라의 문화나 사회를 간접적으로 체험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현지인 추천 맛집과 관광객 추천 맛집을 보는 차이랄까? 이방인의 눈으로 배경만 다양한 국가인 것도 좋지만, 다양한 나라에서 직접 제작한 드라마, 영화들을 볼 수가 있는 점에서 넷플릭스가 좋은 이유이다.

다운로드.jpg 출판사 경영 컨설턴트로 첫 부임한 여자 주인공 '소피' 야무진 똥머리와 금색 테 안경이 인상적이었다.


<러브 앤 아나키>를 본 사람들의 평은 대부분 어리고 잘생긴 남자 주인공에 대한 것이다. 코로나가 풀리면 가장 가고 싶은 국가가 스웨덴일 정도로. 나도 그 부분은 격하게 공감한다. 하지만 그 밖에도 이 드라마가 좋은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전번적으로 시리즈의 각각의 에피가 통통 튀고 헉스러운것도 많다. 상큼한 로맨스에 불륜 한 방울 끼얹는 느낌. 한편으로는 민폐를 끼치는 행동들을 해서 일부 사람들에게는 고구마를 먹은듯한 답답함이 밀려올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전반적으로 각각의 에피에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 같아 보는 내내 몰입할 수 있었다.




# 1. 이케아의 나라로 북유럽의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인테리어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자 주인공의 집은 전형적인 아이가 있는 4인 가족이고, 남자 주인공의 집은 친구 3명이서 방 한 개씩을 쓰는 셰어하우스이다. 셰어하우스에는 친구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방을 보여준다.

여자 주인공의 집. 집의 색감, 작은 소품, 가구의 구성 등을 보는 재미가 있다.



# 2. 북유럽 회사의 워라벨을 위한 다양한 제도와 조직 문화를 볼 수 있다. 주로 등장하는 배경이 여주인공이 컨설팅을 맡게 된 출판사이다. 여주인공이 이 회사의 경영 컨설팅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처음 부임할 때 CEO는 두 명의 중요한 사람을 소개해준다. 나이 든 고지식한 남자 편집장과 젊은 영업/홍보 여자 팀장. 원고를 보고 출판을 최종 의사 결정할 때 이 셋이 모두 합의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변화하고 있지만 수직적인 조직문화와는 다르게 수평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이 상징적이고 재밌게 느껴졌다.

그리고 대사 중에 종종 '가족 돌봄 휴가', '재택근무' 이런 게 많이 나온다. CEO도 컨디션이 안 좋다고 중요한 회의를 화상으로 참여한다. 또한 여주인공은 일과 가정을 모두 챙기는 데에 바쁜데 이런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어있음에도 워킹맘이란 어렵구나 생각이 든다.




cap2.jpg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라테는~' 편집장


# 3. 변해가는 것과 변화를 맞이하는 사람들. 기성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상충되면서 오는 갈등이 영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후반부에 나이 든 편집장이 젊은 세대와 겪는 갈등, 기성 디자이너와 신진 디자이너의 갈등이 나온다. 우리나라도 요즘 '라테는~', '90년대생이 온다'가 유행하면서 세대 간의 갈등이 뜨거운 감자이다. 존댓말과 유교사상이 없는 유럽도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니 사람 사는 곳도 다 똑같은가 보다.

소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뒤쳐지는 것 중 하나가 출판업계이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등장으로 인해 출판업계가 기울고, 영화의 대부분의 배경이 되는 출판사도 재정난에 허덕인다. 오디오북을 출간하고,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나 콘텐츠가 제작되는 등 디지털화가 큰 파도처럼 업계에 밀려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출판업에 종사했던 분도 이 시리즈를 공감하면서 보았다고 했다.

추가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도 있다. 여주의 아버지의 대사 중 현금으로 결제를 막고 카드로만 하게 되니깐 내가 어디서 무엇을 샀는지가 데이터화 되면서 마케팅 정보로 팔려나가고 있다는 것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편리함에 가려진 불편한 현실을 보지 못하거나 마주하기 싫어하는데, 나도 이 대사를 듣고 띵했다.


# 4. 반복되고 정해진 일상에서 미친 짓을 하며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때로는 가족 같은 너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지속적으로 받아온 상처들은 나도 모르게 나를 잠식하는 경우도 있다. 이 드라마는 그런 것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공통점 없는 두 주인공이 친해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가득 받은 날에 가끔씩 미친 척하고 싶은 날이 있지 않나. 조금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내 안의 상처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치유하는 과정이 나오면서 엉뚱하지만 주인공이 대신해줘서 속 시원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 추가 : 'Hej'(헤이)가 스웨덴어로 Hi라고 이케아에서 보았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이 인사말로 헤이 헤이! 하는 게 좀 귀엽다.







!!! 밑에는 스포일 수도 있음!!!






+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 나이 든 편집장의 에피 중에 '환각 체험'이다.

SNS가 발달하면서 '~체험', '~원데이 클래스' 같은 게 많이 나온다. 성인을 위한 체험형 콘텐츠가 많이 쏟아지고 있는데 그게 마약까지 간다는 게 웃프다. 나도 자아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템플스테이, 웰니스 프로그램, 마음 챙김 등에 관심도 많고 참여도 많이 했다. 아마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돈을 해결하고 난 뒤에 오는 자아 찾기가 아닐까 싶다. 어찌 보면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며 온갖 체험과 사상이 SNS를 통해 유행하듯 퍼지고 그럴싸한 단어와 외형으로 포장해 내는 시장이 있다는 게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도 든다.


+ 여주 남편의 열등감과 부부 갈등

이 부분이 되게 현실적이라고 느껴지는 게 겉으로 봐서는 남부럽지 않게 부유한 중산층 전문직 부부이지만 그 내면에는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와이프가 자기보다 잘되니깐 열등감을 갖는 것 등 요즘 넷플에서 자주 나오는 이슈인 것 같다. 그만큼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높아지면서 가정에서의 역할 등에 균열이 오고 전통적인 관념과의 차이로 오는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 남주 가족과의 에피

남주의 엄마가 재혼해서 사는 곳에 생일을 가면서, 오래전부터 겪은 갈등을 보여준다. 부모에게 오랜 시절 받아온 상처는 커서도 치유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게 어느 순간 익숙해지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남주가 나체로 나와서 가족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엄청나게 통쾌한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시즌 2를 매우 매우 기대하는 작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