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by 파란

“뭐 먹고 싶어?”


여자친구의 말에 순간 얼어붙는다.

저 말의 뜻은 무엇인가

5년째 만나는 중이지만,

아직도 내 의견을 묻는 질문에 나는 늘 머뭇거린다.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이

변화에 변화를 겪었다.

성격부터 옷차림과 전반적인 느낌까지

어째서인지 다듬어지지 않았던 나라는 원석을 잘 세공하는 그녀이지만,


가끔은 내가 그녀의 입맛에 맞게 커스터마이징 당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름하야 현실판 ‘프린세스 메이커’ 같은 느낌이랄까.


어쨌든, 내 인생에 있어서 나는 자기주장이란 걸 크게 내어본 적이 잘 없다. 시원시원하게 누군가처럼 ‘이걸 좋아해’ , ‘저걸 하고 싶어’라는 목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럴 때마다 남들의 눈치를 보게 되고, 자꾸만 내 마음의 소리가 올라올 때마다, ‘꿀꺽’ 하고 침을 삼키듯 다시 되넘기곤 했다.


그러다 보니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이 생겼다.


”난 아무거나 다 좋아. “


어..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아우성치지만

왜인지 ’ 내가 하는 주장이 저 사람에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부터 시작하여


혹시라도 ’ 내 의견이 구리면 어쩌지?‘라는 생각까지

오만 눈치를 스스로 만들어서 보고 있는 나.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비추는 거울을 만들어

자꾸만 네모난 나를 깎고 깎아 동그라미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사실 동그란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그런 마음의 먼지와 부스러기가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겠지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덩이처럼 커졌고

참을성이 극에 달 했을 때, 결국 불이 붙어버렸다.


어느 날 여자친구에게 이런 눈치를 보는 나 자신에 대해 원망 섞인 어조로 토로하자, 그녀는 놀란 듯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그냥 얘기해.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근데 그게 잘 안돼”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안 해봐서 그래”


맞다.

그래, 여태 내가 좋아하는 걸 먹고 싶은 걸 주장하는걸

난 해보지 않고 삭히기 바쁘고 숨기기 급급했다.


“해봐 오빠. 그리고 아니면 마는 거지 뭐”


단순하지만 명쾌한 해답이었다.

어쩌면 내가 하지 못한 말들을

그녀가 대신해서 모든 걸 대변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조금씩 연습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좋다고

싫어하는 건 싫다고.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김치를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된다는 거. 그거 하나만큼은 정말 만족스럽다.

여자친구가 아쉬워하는 걸 빼고 말이다.


“그래서”


문득 멍때리던 정적을 깨고 여자친구가 되묻는다.


“뭐 먹고 싶냐고 오빠”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쳐가는 돼지 한 마리

배시시 웃으며 대답한다.


“돈까스”


“에휴!”


여자친구가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내 손을 잡는다.


“가자 사줄게”


역시나, 오늘도 좋다.

돈까스도 그녀도.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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