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

by 파란

“헉.. 헉.. 헉..“


습한 공기가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타들어갈 듯한 햇볕을 피해

어둑어둑한 한밤중을 택해 뛰고 있건만

이건 이것대로 또 곤욕스럽다.


꾸준히 달린 지 10년 차가 되어간다만

여름에 뛰는 달리기는 여간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작년에는 한낮에 땀복을 입고 장거리를 뛰었다가

그만 한 달 내내 끙끙 앓았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나에게는

‘열심히’라는 저주가 강하게 걸려있다.


이 저주는 무언가 ‘열심히’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고 답답하며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지 않은 듯한 느낌을 내어

저주를 받는 피시자에게 강력한 죄책감을 일으킨다.


신기하게도 주변에 심심치 않게 이 저주에 걸린 이들을 너무나도 많이 볼 수 있다.


자기 계발부터 시작하여, 운동, 주식과 투자 등등..

도저히 휴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숨 막히는 일정들.


그리고 우린 이걸 ‘갓생’이라고 포장하여

신성불가침한 성공과 노력의 산물로

고귀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나에게 휴식이 주어졌다.

하지만 어떻게 쉬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조급해졌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나는 열심히도, 쉬는 것도 모두 뒤처지는 것 같다.


아니, 애초에 좀 뒤처지는 것에 대해

왜 나는 그리 강박을 가졌던 거지?


저주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다.

거울 속에 나는 불안과 피곤함, 그리고 초조함으로

가득한 몰골을 하고 있더이다.


달리기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주변을 살피고

가능한 멍 때리려 집중하곤 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가 넘어가게 밟아도

그 속도가 한창을 유지하면 빠른지 감이 안 온다.


여태껏 나는 액셀을 밟을 줄만 알았지

브레이크는 전혀 걸지 않고 있었다.


슬로우 슬로우

빠르게 달려왔으니 조금 속도를 줄일 타이밍이다.


이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시간이 들겠지만

난 여태껏 그래왔잖아.


언제나 그랬듯 답을 찾아 나아갈 것이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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